잊을만하면 터지는 '노예 사건'..장애인 인권개선 요원
일회성 대책들 실효성 의문…"의식 개선하고 실질대책 내놔야"
(장성=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또다시 힘없는 장애인을 노예처럼 부린 인권 유린 사건이 발생했다.
장애인 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당국의 대책은 쏟아지지만 이들의 인권 개선은 요원하기만 하다.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조사와 대책 마련, 재발 방지를 위한 처벌 강화, 사회적인 관심과 인권 의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남 장성경찰서는 자신의 농장에서 10년간 지적장애인 A(66)씨를 착취한 혐의(준사기)로 전직 도의원 오모(6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오씨는 지인을 통해 알게된 A씨를 2006년 자신의 농장으로 데려와 농장 일을 시키고 임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A씨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가로채고 암 치료비 명목으로 논을 팔게 해 판매대금을 챙기기도 했다.
A씨는 농장의 낡은 숙소에서 홀로 지내며 착취에 시달리다가 식도암과 폐렴까지 걸렸다.
지난 7월 충북 청주에서도 60대 부부가 지적장애인 남성을 데려다가 19년간 반감금 상태에서 무임금 강제노역을 시킨 '축사노예' 사건이 드러나 공분이 일었다.
이 사건의 피해자(47·지적장애 2급)도 축사 창고에 딸린 쪽방에서 생활하며 소 40∼100여마리를 관리하고 밭일을 하며 노동을 했지만 임금 한 푼 받지 못했다.
밀린 품삯은 무려 1억8천여만원에 달했고 상습적으로 폭력에 시달린 사실도 드러났다.
6월 충북 청주에서는 타이어 수리점을 운영하는 변모(64)씨가 1996년부터 10년간 지적장애인(42)에게 무임금 강제노역을 시키고 상습 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2014년 전남 신안에서는 장애인 92명이 염전에서 일을 하고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임금이 떼인 '염전 노예' 사건이 있었다.
이들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이다.
가해자들은 상대적으로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 장애인을 유인해 노동력을 착취했으면서도 "소외된 사람들을 돌본 것이었다"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하고 가족이나 친지 등의 도움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피해 의식조차 없이 착취에 시달려야만 했다.
이들을 지켜보는 우리 사회도 약자인 이들에 대한 인권 유린과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에 무심하기만 했다.
정부는 장애인 인권유린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지자체, 경찰, 사회단체 등과 함께 대대적인 실태점검과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이 같은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들고 있다.
이들에 대한 실태 조사나 대책 마련이 보여주기식이 아닌 체계적이고 장기·정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또 가해자들이 피해자와 합의했고 관행이었다는 이유로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상황을 들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9년 청주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던 지적장애인을 데려다가 31년간 임금도 주지 않고 농사일을 시킨 '차고 노예' 나 '염전 노예' 사건의 가해자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전남장애인인권센터 관계자는 "장애인 인권유린을 근절하려면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대응과 함께 인권 의식을 높이기 위한 사회 전반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다시 사회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 자립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장성경찰서 김상욱 여성청소년계장은 "우월적 지위나 신분을 이용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착취하는 행위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행정기관과 복지·사회단체와 연계해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이들의 비참한 실태를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cbebo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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