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권고 결국 수용한 스페인, 노동개혁은 정치문제 아니다

김기찬 입력 2016. 10. 27. 01:02 수정 2016. 10. 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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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막았던 스페인 한꺼번에 무너져뒤늦게 구조개혁 착수한 뒤 살아나한국도 2000년대 초부터 권고 받아작년 대타협 이뤘지만 정치에 막혀

노동개혁 현장을 가다 <하>
2007년 3월 스페인 마드리드 코트라(KOTRA) 무역관은 한 보고서를 한국으로 보냈다. ‘2006년 스페인 경제성적, ‘수’’였다. 그해 경제성장률은 3.9%였다. 투자는 6.3%나 증가했다. 당시 유로존(Eurozone)의 평균 GDP성장률은 2.7%에 불과했다. 55만 개의 새 일자리가 생겼다. 스페인의 경제 성장은 10년간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생각은 달랐다. 2006년 11월 30일 OECD는 경제의 기초가 튼튼해서 성장을 한 게 아니라 나랏돈을 투입해서 이룬 성장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스페인 경제 보고서를 냈다. OECD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동시장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개혁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스페인은 “전적으로 수긍하기 힘들다”며 무시했다.

OECD의 경고는 틀리지 않았다. 스페인은 이듬해 하반기 금융위기가 닥치자 한꺼번에 무너졌다. 급기야 2008년엔 전체 실업률이 11.3%로 치솟았다. 2006년에 비해 3%포인트 가량 늘었다. 산업생산지수는 마이너스(-7.1%)로 돌아섰다. 손을 쓸 수도 없었다. 경제를 받치고 있는 구조가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한번 무너지더니 가속도가 붙었다. 2009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3.6%)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20%대를 찍었다.

스페인은 그제야 OECD의 권고를 다시 들췄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착수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줄이고, 단체협약을 기업별로 하도록 현장 자율을 강화하는 쪽이었다. 늦은 감이 있었지만 효과는 서서히 스페인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 야권은 노동법 통과를 저지하려 강하게 반발했다.
이런 과정이 한국과 흡사하다. OECD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줄기차게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주문했다. 2년 마다 내는 한국경제보고서에 노동개혁 권고가 빠지는 적이 없었다. 내용은 늘 비슷했다. ▶작업장 내 전환 배치는 물론 해고하기 무척 어려운 경직된 정규직에 대한 보호조치 완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이중구조 완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개편 등이다.

한국은 이런 주문을 외면했다. 그러다 2014년 들어서야 노동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9·15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정치권에 막히고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사실상 좌초국면으로 가고 있다. 그 사이 경제는 0%대의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지난해 실업률이 오른 국가는 5개국 뿐이었다. 한국이 그 명단에 올랐다.

스페인 고용사회부 로잘리 세라노 벨라스코 고용정책실장은 “스페인은 호황에 취해 있다가 경제위기가 와서야 부랴부랴 노동시장을 개혁했다”며 “그 뼈아픈 경험을 한국이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OECD는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마크 키스 고용노동정책분석실장은 “노동개혁은 정치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의 노동개혁이 정치문제로 변질돼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데 대한 지적이다. 그는 “저생산성 경제에서 고성장성 경제로 이전하려면 노동개혁은 필수”라고 말했다. 경제 체질개선을 위해선 노동개혁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그는 “정규직의 경직성이 높고 비정규직 보호가 약한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근로자를 해고하고 고용하기 쉬운 방향으로 EPL(고용보호법제)을 확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일단 고용하면 해고하기 어려운 정규직 대신 해고와 채용이 쉬운 비정규직을 선호하게 돼 이중구조가 갈수록 심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게 사회불안을 가져오고, 경제를 나락으로 몰아간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키스 실장은 “한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너무 심해 분절현상이 나타나고, 청년실업을 악화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중소기업의 근무환경과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고 권고했다.

파리=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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