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살대사' 연습으로 극복.. 박보검의 '구르미' 정복기

강은영 2016. 10. 26.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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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들지 않으면 재촬영 자처.. 마지막 회 때 눈물 날 뻔"
박보검은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며 “‘구르미 그린 달빛’을 무사히 잘 견뎌준 저 자신에게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최재명 인턴기자

“그런 경험을 처음 해봐서 너무 놀랍고 신기했어요.” 26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보검(23)은 놀란 토끼 눈을 하고는 인터뷰를 시작했다. 하루 전날 필리핀 세부에서의 ‘포상휴가’를 마치고 돌아왔다는 그는 “필리핀 현지 분들이 알아봐주셔서 깜짝 놀랐다”며 지난 18일 종방한 KBS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구르미’)의 인기를 전했다. 필리핀에서 KBS 월드 채널을 통해 방송되고 있다는 ‘구르미’는 현지시간 오후 10시에 만날 수 있더란다. “실제로 너무 많은 분들이 몰려서 제대로 인사를 할 수가 없어 죄송할 따름이었죠. 한국 관광객들께선 ‘쉬러 왔구나’하는 마음이셨는지 휴대폰 카메라도 끄시더라고요. 그런 마음이 무척 고마웠습니다.”

들뜬 그의 목소리에서 아직 ‘구르미’의 세자 이영이 가시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1주일 전 경복궁에서 진행된 팬 사인회까지 돌아보며 “드라마 촬영이 끝났던 시점이라 마음이 허했었는데 팬 사인회에 와주신 분들 덕분에 감사했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 1월 tvN드라마 ‘응답하라 1988’ 종방 후 10개월 만에 만난 박보검은 표정이나 말투에서 여유로움이 부쩍 묻어났다. 묵묵하게 사랑을 지켜나간 바둑기사 최택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그는 ‘응답하라’ 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배우는 슬럼프에 빠진다는 ‘응답하라의 저주’를 씻어낸 듯 보였다. 물론 10개월 전에도 “그런 저주는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고 싱겁게 웃어 보였던 그이지만.

그럴 만도 했다. 박보검은 ‘구르미’로 첫 주연을 하게 된 터라 ‘응답하라의 저주’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가장 먼저 캐스팅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만 해도 기대와 설렘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천호진 김승수 전미선 박철민 등 대선배들의 이름이 더해지면서 드라마를 꾸릴 진용이 완성되어가자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나 역할에 대한 중심이 잡히지”않았다. 첫 주연작인데다 사극이라곤 영화 ‘명량’밖에 없었기에 긴장이 점점 옥죄었을 것이다. 그는 조선 세자 이영이라는 인물이 영 와 닿지 않았다고 했다. 이영이 하는 달달한 대사도 입에 붙질 않는 게 당연했다. 스스로 특단의 조치를 찾아내야 했다. 김성윤 PD와 김민정 작가에게 매달렸다.

박보검은 KBS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세자 이영을 연기하며 남장내시 홍라온(김유정)과의 달콤한 로맨스를 그렸다. KBS 제공
KBS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라온(김유정)과 사랑을 속삭이던 이영(박보검)은 정치의 희생양이 되는 운명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KBS 제공

“기존 사극에서 보여진 세자들과는 다른 매력이어서 ‘구르미’를 시작했지만, 이영 캐릭터를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김 PD, 김 작가님과 함께 대본을 정독하면서 공부했어요. 입에 붙지 않는 대사는 두 분 앞에서 녹음을 해서 여러 번 돌려 들으며 제 것으로 만들었고요.”

그렇게 탄생한 대사가 바로 “불허한다. 내 사람이다” “반갑다, 멍멍아!” 등 자칫하면 손발이 오그라들 말들이다. 박보검은 “대본은 설렜는데 이를 어떻게 살려야 할 지 몰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인기 사극 ‘성균관 스캔들’(KBS)과 ‘해를 품은 달’(MBC)을 직접 보며 참고도 했다. “극 초반(1,2회)에는 시간적으로 조금 여유가 있어서 김 PD님과 상의해 재촬영 한 장면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재촬영 장면은 1회에서 이영과 남장 내시 홍라온(김유정)이 만나 국밥을 먹으러 가는 대목이다. “재촬영을 한 뒤 구덩이에 빠진 장면을 찍을 때는 진짜 이영이 된 듯했다. 혼자 구덩이를 빠져 나온 홍라온에게 ‘국밥 새끼야!’하는 애드리브도 자연스럽게 나왔던 거 같다”고 귀띔했다.

동명원작 소설 속 이영은 초지일관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다. 드라마로 변주되면서 밝고 맑고 여린 복잡한 내면의 이영으로 바뀌어 박보검의 고충도 늘어났다. 그러다 마지막 회에 붉은 용포를 입고 왕이 된 이영의 모습을 연기할 때는 “뭉클한 그 무엇이 올라오더라”고 말하며 물기 어린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극중에서 ‘주상전하 납시오’라는 말이 나올 때는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았죠. 내시 역할을 한 (이)준혁 형도 다 키운 아들을 보내는 거 같다며 뭉클해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희 둘 다 울지 않았어요. 꾹꾹 참았어요. 하하.”

박보검이 26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재명 인턴기자

박보검의 남다른 노력이 시청률 20% 중 반 이상은 담당하지 않았을까. 그의 ‘인복’도 작용한 게 분명하다. 아버지 역할의 김승수는 박보검의 선생님을 자처했다. 대본을 함께 읽으며 대사의 톤을 잡아주고,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는 박보검에게 따뜻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고. 같은 소속사(블러썸엔터테인먼트) 선배인 임주환도 ‘구르미’를 일일이 모니터하며 후배를 도왔다. 세자의 의상이 단정치 못한 장면을 휴대폰으로 보내주는 등 세심하게 챙겨줬다고 한다.

첫 주연작을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류 스타로까지 거론되는 박보검. 더 바랄 게 있을까. “한복을 입고 꼭 한번 연기하고 싶다는 꿈은 이뤘어요. 얼마 전 대만영화 ‘나의 소녀시대’를 보고 다시 교복이 입고 싶어졌어요. 풋풋하고 따뜻한 감성을 그린 작품을 하고 싶어요. 아, 이번에 OST 작업에 참여하면서 음악을 다룬 작품도 해 보고 싶더라고요.”

‘공부’를 통한 박보검의 진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KBS ‘내일도 칸타빌레’에 출연해 첼로와 지휘를 배우고, KBS ‘참 좋은 시절’에선 사투리 연기를 배웠다. 그리고 ‘응팔’을 통해 바둑을 처음 접했고 ‘구르미’로 승마와 거문고, 액션연기를 배웠다고 했다. “배우는 항상 무언가를 배우는 직업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또 다른 멋진 도전을 기대해본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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