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커지는 한전 협력업체 선정 입찰 조작 의혹

2016. 10. 2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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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시간 간격으로 ‘낙찰 예정가격’ 달라지면서 낙찰자 바뀌어 ‘혼선’

-입찰 참여업체, “미리 낙찰자 정해 놓고 형식적으로 입찰” 의혹 제기

-한전측, “조사결과 단순 전산 오류로 입찰 비리 의혹 전혀 없다” 해명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 입찰 전산 시스템에 잇따라 이상한 일이 생겼다. 입찰 결과가 몇 시간 만에 바뀌어 입찰에 참가 업체들 사이에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한전은 단순히 전산 오류에 따라 생긴 일이라고 설명하지만, 일각에선 지난해 있었던 대규모 한전 전기공사 입찰비리 사건이 다시 재현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한다.

지난 17일 200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네이버 카페 ‘입찰분석동호회’에는 ‘한국전력 전자입찰에서 우리는 들러리인가?’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지난 9월 20일 한전 부산울산지역본부에서 발주한 11억원 규모의 ‘지장철탑이설공사’의 입찰결과가 몇 시간 만에 바뀌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내용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복잡한 한전 전자입찰 시스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전은 공사할 일이 생기면 ‘적격심사제’ 방식으로 업체를 뽑는다. 모든 과정은 한전 자체 전자조달시스템(http://srm.kepco.net)에서 진행된다. 

[사진=한전 나주 본사 모습.]

■“몇시간만에 달라진 입찰 결과”

먼저 공사 발주부서 책임자가 해당 공사에 대한 적정 비용을 파악해 ‘예비가격 기초금액’을 결정해 공고를 낸다. 그러면 전자조달시스템은 입찰 마감 전 이 금액의 92~100% 범위에서 생성 가능한 천여개의 예비가격 중 15개를 무작위로 선택해 각각 자동으로 추첨번호를 부여한다. 입찰자는 입찰금액을 입력하면서, 15개 추첨번호 중 4개를 선택한다. 시스템은 입찰자들이 선택한 예비가격 추첨번호 중 가장 많이 선택한 상위 4개의 번호에 대응하는 4개 ‘예비가격’을 확정한다. 시스템은 이를 평균해 ‘낙찰 예정가격’을 산출하고, 여기에 공사 규모 등을 고려해 발주처가 정한 일정 비율(투찰률)을 곱한 금액이 ‘낙찰하한가’가 된다. 낙찰업체는 여기에 가장 근접한 입찰금액으로 입찰한 업체가 선정된다.

부산울산지역본부에서 발주한 ‘지장철탑이용공사’ 입찰에서 문제가 된 건 4개 예비가격 선정과 이를 평균한 ‘낙찰 예정가격’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이 입찰에는 4210개 업체가 참여했다. 개찰결과 15개 예비가격중 추첨번호가 가장 많이 선택된 ①10억9198만2194원 ②11억1228만3446원 ③10억5559만6270원 ④11억90만3048원이 확정됐다. 따라서 낙찰 예정가격은 이 가격들의 평균인 10억9019만1239이 예정가격이 돼야 한다. 그런데 전산 시스템엔 이상하게 10억7108만4515원이 예정가격으로 표시돼 있었다.

입찰에 참여한 몇몇 업체들은 한전에 예정가격이 잘못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전 측에서는 확인을 한다고 하더니, 몇 시간 후 전산 시스템엔 낙찰 예정가격 10억7108만4515원은 변함이 없는데, 15개의 예정가격이 모두 바뀐 것으로 표시됐다.

입찰에 참가한 한 업체는 “낙찰 예정가격이 잘못돼 문제를 제기했더니 몇 시간 후 15개의 예비가격이 모두 바뀌어져 있었다”며 “처음부터 낙찰 예정가격을 정해 놓고, 예비가격을 맞추려고 한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일은 이달에도 또 벌어졌다. 한전 충북지역본부에서 발주한 기초금액 22억9786만9629원짜리 ‘154kV 증평 S/S GIS화 공사’ 입찰에서다. 모두 2048개 업체가 참여한 이 공사 입찰 결과는 이달 13일 11시에 나왔는데, 2시간여가 지난 후 역시 결과가 달라졌다.

개찰 결과가 전자조달시스템에 처음 발표된 때 낙찰 사정율(낙찰 예정가격을 기초금액으로 나눈 값)은 95.7%로 나왔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시스템엔 이 사정률이 97.3%로 1.6%포인트 높아져 있었다. 시스템 오류로 15개의 예비가격을 잘못 산출해 낙찰 예정가격이 잘못 나온 것이라고 한전측은 설명했다. 낙찰 예정가격이 달라지고, 사정률이 변했으니 낙찰업체도 바뀌었다.

이 입찰에 참여한 한 업체는 “누군가 예정가격 등 입찰 결과를 조작하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한전, “개찰 과정에서 전산 오류에 따른 것” 해명

한전은 잇따라 일어난 입찰 사건에 대해 단순 전산 오류에 따른 것으로 설명한다. 입찰 시스템에서 입찰자가 입찰을 마치면 개찰을 위해 한전의 업무 담당자가 ‘개찰’을 클릭하도록 돼 있다. 그러면 자동으로 15개의 예비가격이 산출되고, 입찰업체들이 선택한 숫자에 대응하는 4개의 예비가격이 만들어지는 절차가 자동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입찰자가 많으면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예비가격 산출 결과 화면이 늦게 뜨는 일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오류 발생을 우려한 업무 담당자가 ‘개찰’ 클릭을 몇 번씩 반복 클릭해, 첫 번째 클릭했을 때와 이후 클릭했을 때의 예비가격 결과가 달라진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는 게 한전측의 설명이다.

한전 자재처 담당자는 “여러 번 개찰 클릭을 하다 보니, 연속으로 낙찰결과가 뜨면서 처음 결과가 이후에 바뀐 것처럼 표시된 것”이라며 “시간 순서상 첫 번째 개찰을 한 업체가 낙찰자가 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법률적 검토를 거쳐 낙찰자를 통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전은 문의하는 업체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있지만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들의 의혹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광주·전남에 기반을 둔 전기공사업체 대표 200여명은 한전 부산울산지역본부에 “입찰 조작 흔적을 발견했다”면서 공개질의에 나섰다.

한전 충북지역본부에서 발주한 공사에서 낙찰업체로 선정된 줄 알았다가 결과가 뒤바뀐 업체는 한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한전 상대 소송 움직임도

입찰에 참가한 업체 관계자는 “발주처에서는 전산 오류라고 설명했지만 납득하기 힘들다”면서 “만약 정말로 전산이 잘못된 것이라면 재입찰을 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 아니냐”고 반문했다.

한전 담당자는 “앞으로 입찰 시스템에서 한번 ‘개찰’ 클릭을 하면, 화면에 ‘개찰’ 버튼이 사라지도록 시스템을 개선했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전은 다음달 4일 전국 단위로 1조원 규모의 대규모 협력업체 선정 입찰을 앞두고 있어 업체들 사이에 ‘입찰 조작’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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