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나팔수' 역할하는 어산지, 왜?

2016. 10. 26.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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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의 아이콘서 클린턴 저격수로

[동아일보]
 “진보 진영의 등대가 트럼프 골수 지지자가 됐다. 위키리크스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4일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44)의 ‘이념적 표변’에 관한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어산지는 2010년 미군 아파치 헬기의 민간인 사살 영상,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밀문서, 수십만 건의 미 국무부 외교 전문 등을 잇달아 폭로하며 진보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런 그가 이번 대선에선 진보 색채를 찾기 힘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위키리크스는 올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골드만삭스 고액 강연 원고는 물론이고 민주당전국위원회(DNC)와 클린턴 선대본부장 존 포데스타의 해킹당한 e메일 수만 개를 공개해 클린턴 진영을 곤경에 빠뜨렸다. “미국 대선은 없다. 조작된 경선, 조작된 언론뿐이다”라는 21일 위키리크스 트위터 글은 트럼프가 대필한 게 아니냐고 생각될 정도로 트럼프에게 치우쳐 있다.

 권위주의 성향의 트럼프를 지지하는 어산지의 모습은 권력기관의 투명성을 강조하고 성역 없이 정부의 비도덕성을 비판한다는 평가를 받아 2010년 타임지의 ‘독자가 뽑은 올해의 인물’은 물론 프랑스 일간 르몽드의 ‘올해의 인물’로도 꼽힌 사람답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어산지가 클린턴 저격수를 자처하고 나선 배경엔 무엇보다 미 주류 정치계의 ‘위선’에서 비롯된 반미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구 민주주의 사회는 겉으로만 시민의 자유를 외치고 실제론 소수 권력자들이 밀실에서 개인을 통제하고 권력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는 게 어산지의 생각이다. 그에게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트럼프보다는 주류 정치인의 대명사인 클린턴이 더 적합한 공격 목표라는 것이다.

 어산지는 2006년 쓴 에세이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을 모두 “음모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음모 집단 특유의 “비밀주의와 강경한 외교정책”을 고수하는 클린턴은 “(어산지의) 반미 제국주의 세계관의 대척점에 있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오히려 “일관성 없고 허무주의적이며 이념이 없는 트럼프와 마음이 맞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산지와 러시아의 연계설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된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 부소장 알리나 폴랴코바는 최근 가디언 인터뷰에서 “어산지가 ‘투명성’을 강조하다 ‘내 적의 적은 내 친구’라는 아이러니에 빠져 (러시아 등) 인권을 부정하는 국가와 같은 편에 서기에 이르렀다”고 꼬집었다.

 어산지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해석도 있다. 칼럼니스트 인디라 라크슈마난은 지난달 15일 보스턴글로브에 “위키리크스의 외교 전문 공개를 비난한 것은 다름 아닌 국무장관 시절의 클린턴이었으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어산지를 간첩 행위로 잡아들일 생각까지 했었다”며 “어산지의 반(反)클린턴 운동은 자신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어산지의 지인도 내년이면 어산지에게 망명을 허용한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 임기가 끝난다며 “(어산지는) 트럼프가 자신에게 잘해 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단지 절박해서 그런 거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가디언에 밝혔다. 호주인인 어산지는 2012년 성폭행 혐의로 스웨덴 송환 위기에 처한 뒤 주영 에콰도르대사관에 피신해 지금까지 칩거하고 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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