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탈당' '탄핵' '하야' 까지 거론되자 전격 사과

김형섭 2016. 10. 2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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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에 대한 연설문 유출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사과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2016.10.2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에 대한 연설문 유출 의혹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다. 2016.10.2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김형섭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비선실세' 의혹이 제기된 최순실씨에게 각종 연설문이 사전 유출된 사태와 관련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언론 보도를 통해 문제 제기가 이뤄진지 불과 하루만에 신속히 이뤄진 대국민사과였다.

이는 이번 사태가 미르·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최씨 개인의 비리 의혹을 넘어 국정농단과 국기문란 사태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만큼 이대로 넘어갔다가는 정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세월호 참사나 기초연금 공약 후퇴 논란 등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한 적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 등의 형식이 아닌 오직 대국민사과만을 위한 기자회견을 연 것은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사태를 박 대통령이 얼마나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전날 언론보도가 있고 나서 불과 20시간 만에 사과에 나섰다는 것도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정윤회 문건유출' 파동 때는 첫 보도가 있은지 각각 18일, 45일이 지난 뒤에야 대국민사과에 나섰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취임 후 있었던 그 어떤 악재보다도 정권의 명운을 뒤흔들 초대형 사건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당초 최씨의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개입 관련 의혹이 불거졌을 때만 해도 청와대는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운 개인 비리로 선을 그었지만 이번 의혹은 박 대통령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걸려 있다는 점에서 대국민사과라는 정공법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파장이 일파만파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그대로 사태를 방치했다가는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전날 정국 주도권 확보를 위해 박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꺼내든 개헌 카드까지 최씨 의혹에 완전히 덮혀버린 가운데 국정동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임기말 누수현상(레임덕)이 보다 앞당겨질 것이란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는 '탄핵'과 '하야'가 계속해서 올라오며 성난 민심을 드러냈다. 최근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 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었던 박 대통령으로서는 '식물정권'까지 걱정해야만 할 상황이었다.

여야의 반응도 박 대통령을 고립무원으로 내몰았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역풍을 의식해서인지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야당 일부 의원들은 그동안 금기시됐던 탄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며 여론전에 나섰다. 박 대통령을 비호해왔던 새누리당에서조차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더해 여야를 막론하고 최씨 의혹 수사를 위한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 주장이 나오면서 코너에 몰린 박 대통령은 대국민사과 카드를 꺼내들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란 제목의 대국민사과문에서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 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날 대국민사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가 쉽사리 가라 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과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했고, 향후 최씨 문제를 어떻게 풀겠다는 의지 표명도 없었다. 때문에 야권에서는 진정성 없는 사과라고 일제히 폄하했다. 때문에 1년 4개월의 임기를 남기고 있는 박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에 암운이 더욱 드리워진 상황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 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며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면서 연설문 유출 의혹을 시인했다.

이와 관련해 최씨에게 연설문을 비롯한 각종 청와대 자료가 유출된 시점은 2012년 12월부터 2014년 3월까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이 2013년 2월25일 취임 이후 1년 가량이나 최씨에게 각종 자료가 넘어갔다는 얘기인데 이 때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조각(組閣)을 위한 인사가 활발히 이뤄졌던 시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최씨가 박근혜정부의 인사에도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실제 최씨는 2013년 8월 허태열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 대거 교체 내용을 미리 받아보기도 했다.

또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면서도 언제까지 최씨의 조언을 구했는지나 왜 청와대의 보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게다가 연설문 유출에 핵심 측근이 개입돼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상황에서 야당의 내각 총사퇴 주장이나 여당 일각에서 제기된 청와대 참모진 개편 등을 비롯한 인적쇄신에 대한 응답도 없었다.

최씨의 도움을 받아온 게 누군가의 개입이 아닌 본인 의사였다는 점을 시인하면서 참모진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게 됐다는 점도 박 대통령이 인적쇄신에 뜻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 연설물 유출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나 공무상비밀누설 위반에 해당될 수 있지만 재임 중인 대통령은 형사면책특권이 있기 때문에 처벌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 사과 이후인 이날 저녁에도 종편 등 일부 언론은 박 대통령과 최씨와의 관계를 추가 폭로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최씨가 박 대통령의 순방 의상 등을 결정했다는 것 외에도 외교 안보 정책까지 관여했다는 것이다. 사실로 드러날 경우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처럼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의혹들이 남아 있고 인적쇄신 요구도 외면함에 따라 박 대통령의 레임덕에는 가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ephite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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