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성추문 근원은 '제도화된 권력'

2016. 10. 2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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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미술계 밖에선 무용지물인 권력 악용" "말로만 페미니스트 자처하며 실제 변화에는 주저" 지적도

"문단·미술계 밖에선 무용지물인 권력 악용"

"말로만 페미니스트 자처하며 실제 변화에는 주저"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문단에서 촉발된 성추문 폭로가 미술과 영화 등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몇몇 문인과 큐레이터의 실명이 SNS에서 언급되자 해당 인사의 지인들은 대개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만큼 성희롱 또는 성폭력이 문화예술계에 만연해 있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낭만주의적 타성에 젖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윤리의 경계를 오가는 작품세계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거나, 예술가로서 가지는 '아우라'의 가면을 성폭력에 악용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여성 팬 등을 소설 속 주인공인 '은교'라고 불렀다는 박범신 소설가, "나랑 자서 네 시가 좋아진다면 나랑 잘래?"라며 시 강좌 수강생을 희롱했다는 L시인이 대표적 사례다.

지금까지 드러난 성추문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시각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분야에 비해 문화예술계에 성차별적 인식이 두드러지게 팽배하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작품활동 등으로 얻은 예술계 내부의 상징권력이 출판·등단심사·전시기획과 맞물리며 제도화한 탓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절대 다수의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문화예술계 성추문 역시 소설가와 편집자, 시인과 작가 지망생, 큐레이터와 예술대학생 사이에서 불거졌기 때문이다.

작품활동을 하는 '본격' 예술가도 아닌 큐레이터들의 성추문이 잇따라 불거져 나온 점도 이번 파문이 문화예술계의 속성보다는 제도 내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문제임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일민미술관 함영준 책임큐레이터에 이어 25일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한 큐레이터가 전시 개최 기회를 제공한다는 빌미로 작가를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김남시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교수는 "큐레이터는 작가를 선발하고 작가의 전시를 열어주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작가에게는 실질적인 권력인 셈이다. 아우라가 제도 속에 편입되면 권력의 문제가 결부된다"고 말했다.

이들이 가지는 권력은 그러나 제도 바깥으로 조금만 나가면 사실상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이런 구조적 특성 때문에 문화예술계에서 폭로가 잇따른다는 시각도 있다. 문단이나 미술계는 떠나면 그만이다. 실제로 L시인의 언어 성폭력을 폭로한 트위터 이용자는 작가 지망생이었지만 피해를 당한 이후 시에 대한 애정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한 출판 편집자는 "문단 권력이라는 게 외부에 나가면 동네 문화센터 강사 정도밖에 안 된다. 일단 문단에서 벗어나면 불이익을 두려워할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폭로가 계속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 전반으로 넓혀보면 이번 파문은 최근 1∼2년 사이 급속히 성장한 페미니즘의 성과로도 읽힌다. 페미니스트들의 온라인상 '미러링' 전술과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불붙은 여혐-남혐 논쟁을 계기로 페미니즘이 사회 전면에 급부상하며 성폭력을 폭로할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이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으로 여겨지면서 함영준 큐레이터처럼 페미니스트를 적극 자처한 인사들의 '위선'이 폭로됐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교수(여성철학)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지칭하는 것은 '언제든지 연대할 수 있으니 나를 적대시하지 말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은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여성혐오가 아니라면서 제도적·물질적 변화에는 똑같이 주저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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