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에 중독된 경제, 부동산에 의존한 경제..전문가들 "땜질처방 멈춰야"

김종일 기자 입력 2016. 10. 25. 11:31 수정 2016. 10. 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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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지금 불안불안하다. 경제가 부동산에 의존해 있다. 건설 과열은 가계부채를 바탕으로 한다. 오래 갈 수 없는 구조다. 구조개혁 등 성장잠재력 향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

이진희 디자이너

"경제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경제주체 모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땜질처방을 멈추고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는데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 경제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수출이 이끌었던 한국 경제가 이제는 정부 재정과 건설투자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민간 부문의 활력이 정체되면서 정부 발주 사업 등이 경제성장률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성장률 하락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인데, '땜질식 경기부양' 정책이 반복되면서 경제 체질이 더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부동산으로 지탱하는 경제는 오래 지속할 수 없다”면서 “생산성 향상과 함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구조 개혁에 나서야 정부 재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성장률 떠받친 건설투자…"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 터질 수도"

'0.7%' 올해 3분기 한국 경제의 성적표다. 4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기록해 저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사실 그리 나쁜 성적표는 아니다. 전년동기대비로 하면 2.7%의 성장률이다. 한국 경제가 처한 대내외적 불확실성과 어려움을 생각하면 준수하다는 평가도 많다.

문제는 우리의 경제 체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무엇보다 건설투자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해지고 있다. 한국 경제를 떠받쳤던 수출과 소비라는 두 엔진이 빠르게 식어가면서 급한 불을 끄기 위한 정부의 재정 투입도 일상화 되는 모습이다.

25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 3분기 경제성장은 건설투자가 이끌었다. 건설투자는 2분기에 견줘 3.9% 늘면서 GDP의 지출 부문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3분기 건설투자는 작년 동기와 비교하면 11.9%나 늘었다. 건설투자 증가율은 올해 1분기 6.8%, 2분기 3.1%를 기록하며 고공비행 중이다.

실제로 건설투자의 경제활동별 성장기여도는 0.6%포인트로 2015년 1분기(0.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정규일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건설투자가 3분기 성장을 견인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GDP 증가율이 0.7%인데 기여도가 0.6%포인트니까 2분기(0.5%포인트)보다 그 폭이 더 늘었다"고 설명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발간한 경제동향 자료에서 현재 경기를 이끌어가는 분야는 건설투자가 사실상 유일하다고 분석했다. 건설업체가 시공한 건설 실적을 의미하는 건설기성지표는 지난 8월에 전년 동월 대비 23.6% 증가했다. 건설 수주는 전년 동월 대비 무려 54.6% 증가했다.

반면 소매판매 등 다른 지표들은 한 자릿수 성장에 그쳤고, 수출은 감소하기까지 했다. KDI는 "건설투자가 높은 증가율을 지속적으로 보이며 내수 회복을 주도하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데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의 변화와 가계부채 그리고 그 위험성' 보고서를 통해 "금리인상이 본격화되면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리 인상→주택가격 하락→자산가치 하락→가계부채 증가→하우스푸어 양산→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닥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재정 중독에 빠진 한국 경제…'정부 진통제'로 성장률 끌어올려

3분기 성장률 0.7% 달성에는 정부의 재정 투입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부 소비의 증가율은 2분기 0.1%에서 3분기 1.4%로 크게 높아졌다. 2분기 -0.3%포인트에 머물렀던 정부 지출의 성장 기여도도 3분기 들어 0.2%포인트로 올라갔다.

정부의 추경 편성 등 재정지출이 없었더라면 성장률이 사실상 반토막 났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은은 정부가 직접 집행하는 8조6000억원 가운데 80%가 3분기인 9월에 쓰였다고 밝혔다.

한국 경제가 재정에 의존하는 경향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2011년에는 성장률이 3.7%였는데, 재정기여도는 0%포인트였다. 정부의 조력 없이 가계·기업의 힘만으로 3.7% 성장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후로는 재정 기여도의 비중이 2012년 0.4%포인트, 2013년 0.6%포인트 등으로 점차 높아졌다. 지난해에는 0.8%포인트에 달했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가 '재정 중독(中毒)'에 빠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KDI가 지난 7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경제 성장률 2.6% 중에서 재정의 기여도가 3분의 1에 가까운 0.8%포인트에 달했다. 공무원 월급 등으로 지출한 정부 소비가 기여한 부분이 0.5%포인트, 도로·철도 공사와 같은 정부 투자가 보탠 부분이 0.3%포인트로 집계됐다. 기업과 가계 등 민간 부문의 힘으로는 1.8%밖에 성장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KDI는 특히 올해 1분기 성장률(전기 대비) 0.5%의 경우, 민간의 기여도는 제로(0)였고 재정 기여도가 0.5%포인트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가계·기업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오로지 정부 지출에 의존해 성장했다는 설명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경제 체질 개선 없이 윗돌을 빼 아랫돌을 괴는 식의 땜질식 처방으로 지난 몇 년간 경제 성장을 관리한 것이 한국 경제의 재정의존도를 심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하기 위해 상반기 재정을 조기 집행하는 게 일상화 되다 보니 하반기 '재정절벽' 우려가 커지고, 이를 막기 위해 추경 등 재정 보강에 나서는 악순환이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경제는 정부 돈으로 경제 성장을 사는 '재정 중독'에 빠져버렸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2013년 17조3000억원, 지난해 11조5000억원의 추경을 편성한 데 이어 올해도 11조원이 편성됐다. 정부는 하반기 10조원 규모의 미니 부양책도 내놓았다. 조 교수는 "구조개혁으로 민간의 투자를 늘려 고용을 확대하지 않은 채 추경과 같은 '진통제'만 주입하면 민간이 정부에 의존하는 타성만 키울 뿐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없다"고 꼬집었다.

◆ 불황의 터널에서 나오느냐 빠져드느냐 기로에

이진희 디자이너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초가 한국 경제의 갈림길이 될 것이라고 본다. 저성장의 고착화 구조에서 탈피하느냐 빠져드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에 올 4분기 지표가 주목받는다. 한은 관계자는 "4분기 부진은 이듬해 상반기 지표도 끌어내린다"고 했다. 연말에 충분히 성장하지 못하면 내년 경제의 출발선도 후퇴시킨다는 의미다.

문제는 불확실한 변수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올해 말 미국의 금리 인상이 유력하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정책 수단은 더 줄어든다. 더 큰 걱정은 내부 요인이다. 성장률을 그나마 떠받쳤던 정부의 재정 투입과 건설 투자가 꺾일 것이라는 우려다.

한은은 최근 경제 전망에서 "부동산 경기의 선행지표인 주택 착공, 아파트 분양 물량이 작년 하반기에 꺾였다"며 "내년엔 토목 공사도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줄어들면서 부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제조업과 설비투자는 물론 민간소비가 활력을 잃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빠져 있는 셈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 듯 한은은 최근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내년 성장률 전망치 2.8%를 점검했다. 이주열 총재는 갤럭시노트 7 단종 사태 등 대내외 여건 변화를 정확히 반영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확실한 성장 전략을 아래 그에 맞는 콘트롤타워 세우고 과감하게 장기 전략을 집행해 나갈 것을 주문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지금 필요한 건 장기 성장플랜"이라면서 "기업한테 투자해 성장하는 기본 전략은 그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 인구를 늘리거나 생산성을 늘려야 하는데, 인구를 늘리기는 쉽지 않으니 노동의 생산성을 키울 수 있는데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현 성균관대 교수는 "정부도 언론도 단기 정책이 아닌 중장기 이슈를 잡고 과감히 가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짠 계획을 제대로,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 저출산·고령화 문제, 앞으로 한국 기업들이 먹고 살 신산업 발굴 등이 한국 경제가 처한 3대 위기"라면서 "공통적인 문제는 정부 내에 이를 진두지휘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총체적인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젊은 세대"라면서 "청년들의 부동산, 일자리 문제 등을 풀어나가면 경제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경제 성장과 고용의 위축과 가계부채 문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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