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권력가진 사람이 (승마협회 맡으라고) 시키는데 삼성이 어떡하냐"

이혜리·최미랑·박광연 기자 2016. 10. 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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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60)의 딸 정유라씨(20)를 지원하기 위해 ‘권력자’가 삼성그룹에 대한승마협회를 맡으라고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지난해 대한승마협회가 추진했던 승마 선수 지원 프로젝트도 삼성이 주도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 승마계 인사는 25일 경향신문에 “승마협회 책임자급 관계자가 ‘권력 가진 사람이 시키는데 (삼성이) 어떡하냐’고 했다”고 밝혔다. 이 승마계 인사는 “(삼성이) 아직 승계구도가 복잡하고 언론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니 그냥 협조해주자는 차원이었던 것”이라며 “삼성이 승마협회를 맡을 이유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승마협회를 잘 아는 다른 승마계 인사도 “삼성이 (오래전) 승마단도 내팽겨쳤는데 승마협회를 한다는 게 이상했다”며 “청와대와 교감이 있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하기 위해 ‘실세권력’이 삼성 측에 승마협회를 맡으라고 ‘강요’했을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앞서 정씨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용했다는 독일 승마장 대표 프란츠 예거씨는 JTBC 인터뷰에서 “삼성이 2000만 유로(200억원)를 투자한다고 했다”며 “다른 선수들도 (독일로) 더 올 거라고 했지만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씨가 자신의 국제승마협회 선수정보에 소속을 ‘삼성팀(Team Samsung: Korea)’이라고 기재해 놓은 것으로 드러나 삼성이 정씨 지원에 앞장섰다는 의혹이 계속 증폭되는 상황이다. 또다른 승마계 인사는 “정유라는 그런 부분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삼성 측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승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아끼는 스포츠로 삼성전자는 1988년 6월 국내 최초로 실업 승마단을 창단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989년 아시아승마선수권 장애물 단체전에서 준우승 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삼성은 1995년부터 2010년까지 대한승마협회 회장사였다.

이후 삼성은 승마에서 사실상 손을 뗐다. 2010년 선수단을 해쳈고 일부 재활승마 관련 지원만 해왔다. 한 승마계 인사는 “이재용 부회장 아들이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만 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런 삼성이 승마협회에 다시 들어온 것은 2014년 12월이다. 정씨가 그해 9월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지 얼마 안된 시점이다. 당시 한화생명 대표이사였던 차남규 회장은 임기를 2년여 남기고 승마협회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대신 이영국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 상무가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2010년 승마단을 해체한 삼성이 다시 승마협회 임원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승마계 안팎에선 많은 의문이 나왔다. 또 승마협회의 회장사가 한화에서 삼성으로 넘어가던 시기는 삼성이 삼성테크윈·삼성토탈·삼성종합화학 등 계열사를 한화에 매각하는 시점과 묘하게 맞물렸다.

2015년 3월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 승마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승마협회에 대한 본격적인 삼성 지배가 시작된다. 삼성 인사들이 주요 이사진에 배치됐다. 삼성 계열사 중에서도 자금 조달이 용이한 삼성전자가 승마협회를 맡았다.

특히 지난해 승마협회가 수백억원을 들여 승마선수를 뽑아 독일에 보내 훈련을 시키는 프로그램의 주도자도 삼성 측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승마계 인사는 “지난해 (10월) 전국체전 즈음에 삼성에서 2020년 올림픽을 대비해 장애물 선수 4명을 뽑아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독일 현지에서 활동하는 모든 경비를 다 지원해주며 월급은 주지 않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프로젝트는 전체 승마선수에게 공지를 하지 않고 특정 선수들에게만 개별적으로 연락을 해 참여 의사를 물어봤다. 한 유명 승마 코치는 “나한테도 개인적으로 연락이 왔었다”며 “선수로 오겠냐는 제안이었는데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나는 이제 은퇴할 나이인데 왜 나한테 제안을 하냐고 웃고 말았다”고 덧붙였다. 승마협회 내부에서 이 프로젝트의 실효성과 특정 선수에 대한 특혜라는 문제제기가 나오자 이 프로젝트는 결국 철회됐다.

공교롭게도 이 프로젝트가 무산된 직후인 지난해 10월 미르재단이 설립되고, 이듬해 1월엔 K스포츠재단이 만들어졌다. 애초 삼성이 승마협회를 통해 정유라씨에게 직접 지원을 하려고 했으나 재단을 통해 우회 지원하는 것으로 바뀐 것 아닌지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같은 시기 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 행사에 영향력이 있는 아시아승마협회 회장에 대한승마협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선출됐다. 이 과정에서 승마협회 박모 전 전무이사가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전 전무이사는 최순실씨와 가까운 사이로 독일에 왕래하며 하며 최씨의 업무도 도운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최근 들어 삼성의 승마협회 운영에 대한 잡음도 나오고 있다. 한 승마계 인사는 “솔직히 처음에 삼성이 맡는다고 했을 때 기대를 많이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다른 승마계 인사도 “승마계 사람들에게 삼성이 승마협회를 맡는 것에 대해 물어보면 80%는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 또다른 승마계 인사는 “이번 사건으로 삼성에겐 승마협회가 계륵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삼성 측은 “삼성이 승마협회에 공식적으로 후원하는 것은 10억원 정도”라며 “특정인에게 후원을 하지는 않는다”라고 밝혔다.

<이혜리·최미랑·박광연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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