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일상 톡톡] "요즘 애들은 열정과 패기가 없다고?"

김현주 입력 2016. 10. 24.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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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현실, 숱한 미생들 '마음의 병' 깊어져
청년실업률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이른바 '취업장수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오랜 취업 준비로 인해 우울증이나 불면증과 같은 정서적 고통은 물론, 부모에게 의존해야 하는 등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장기간 취업 준비를 하면서 불안감이 계속 쌓일 경우 정신병적 증세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 피해망상이나 조현병(정신분열증) 등으로 악화될 수도 있는데요. 실제 신경정신과를 찾는 20~30대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한 통계를 보면 2014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20~29세 청년들은 4만9975명이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취업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의 병'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거듭된 취업 실패로 "아무리 일을 하고 싶어도 나를 받아주는 회사가 한 군데도 없구나"하는 자괴감에 깊이 빠져드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높고도 험한 '취업 장벽' 앞에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것은 물론, 이 수준을 넘어 우울증 및 공황장애까지 겪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열악한 현실 속에서 숱한 '미생(未生)'들이 신입사원이라는 타이틀을 따내기 위한 전쟁을 치르는 사이 ‘마음의 병’이 깊어만 가고 있는 것이다.

◆청년층 취업 전쟁 치르면서 '마음의 병' 깊어져

실제 최근 한 취업포털이 취업준비생 46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4.5%가 '취업을 준비하며 우울증을 겪었다'고 답했다. 우울증의 주된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37.8%로 가장 높았다. 뒤이어 △계속되는 탈락(31.2%) △취업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어서(18.7%)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게 힘들어서(17.4%) △취업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17%) 등의 순이었다.

또 우울증의 증상으로는 무기력증이 생겼다는 응답이 41.5%를 차지했으며, 짜증이 늘고(31.3%), 사람 만나는 것이 싫어졌다(28.9%) 등의 대답도 다수를 차지했다.

이처럼 취업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단순히 '우울한 기분'을 넘어 병원 치료나 약물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심각한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취업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청년들은 정신건강 검진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단순 우울한 기분 넘어 병원 치료 받아야 하는 경우도

최근 김의태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청년기는 성인으로 성장하는 단계지만 신체적으로는 뇌 건강이 취약한 미완의 시기"라며 "새로운 생활의 시작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정신 건강의 이상 신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청년기는 조현병이나 우울증 등의 질환이 빈번하게 발병하는 시기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이나 우울증, 기억력·집중력 장애로 인해 학업 성적의 저하 및 수면 장애 등이 나타날 경우 면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청년기에 나타나는 이상 징후는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정신 질환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며 "신경영상학, 심리 검사 등의 정밀 검사를 통해 조기 진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에 조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언어가 세태를 반영하듯 빠르게 등장하는 신조어를 보면 그 사회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이 취업시장 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신조어를 발표해 눈길을 끈다.

과거 토익과 학점만으로도 취업이 어렵지 않았던 취업 호황기의 세대가 '오스트랄로스펙쿠스'라면, 요즘 세대 구직자들은 각종 스펙을 쌓고도 정규직 채용이 되지 않아 인턴만 반복하는 '호모인턴스'에 이르렀다.

또 경쟁 과열로 취업에 필요한 스펙도 점점 늘고 있다. 과거 학벌·학점·토익점수를 '취업 3종세트'로 꼽았지만 최근 여기에 자격증·어학연수가 추가되어 '취업 5종세트'로 업그레이드됐다.

◆속칭 '백' 있어야 할 수 있는 인턴 vs 허드렛일 등 단순 노동만 하는 인턴

급기야 공모전 입상이나 인턴경험을 비롯 봉사활동·성형수술까지 해야 하는 '취업 9종세트'도 등장했다.

기업체 인턴 경험이 필수 스펙으로 자리 잡으면서 인턴과 관련한 신조어도 쏟아지고 있다. '부장인턴'은 인턴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기업체 부장만큼 풍부한 경험을 쌓은 인턴을 뜻한다.

금수저·흙수저처럼 '금턴'과 '흙턴'은 인턴 자리의 양극화 현상을 보여준다. 금턴은 인맥 등 속칭 '백'이 없으면 갈 수 없는 양질의 인턴 자리, 흙턴은 일을 잘 배우지도 못하고 허드렛일이나 단순 노동만 하는 인턴을 의미한다.

시대적 흐름이 변화함에 따라 대학가 문화도 달라졌다. '동아리 고시'는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인기 동아리의 경쟁률이 고시 경쟁률이 버금가는 현상을 반영한 말이다.

합격 전까지 졸업을 미루느라 학교를 벗어나지 않는 '화석선배'들은 고시 장수생을 연상시킨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느라 시간을 뺏기지 않도록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혼밥족’도 등장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날 공부한 내용을 점검하고 정보를 나누는 '밥터디'도 생겨났다.

◆'서류가즘' '대2병'…청년들의 극심한 취업 스트레스 보여주는 신조어

극심한 취업난을 대변하는 표현의 대상 연령층은 더 낮아졌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삼일절'(31세가 되면 절망한다)과 같은 표현에 '대2병', '사망년'까지 등장했다. 대2병은 자신감/자존감이 넘쳐흐르는 '중2병'과 정반대의 증상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방황하는 대학교 2학년 시기를 빗대어 나온 표현이다. 사망년은 스펙을 준비하느라 고통받는 3학년을 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신감을 잃은 청년들의 심리적 불안감을 드러내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자기소개서 공포증에 시달리는 '자소서포비아', 서류 합격만으로 기쁨을 느끼는 '서류가즘' 등은 서류 통과조차 쉽지 않은 청년들의 취업 스트레스를 보여줘 씁쓸함을 자아내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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