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판결]세월호수습 중 자살한 공무원 '공무상 재해'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진도경찰서 소속 김모 경감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현장 한복판에 있었다. 주된 업무는 실종자 수색과 유실물 수습, 시신의 신원확인 등이었다. 인근지역 소상공인과 어민의 민원 처리 및 피해 대책 수립 업무도 했다. 일이 많아서 제때 퇴근하는 날이 없었다. 현장에 투입된 이래 70여일 동안 퇴근한 날은 나흘이 안 됐다. 현장 근무는 그해 6월26일 김 경감의 투신 자살로 끝이 났다.
김 경감은 현장 근무 이후로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서 우울증에 걸렸고 숨지기 전 주변에 괴로움을 호소했다. 가족들에게 “희생자 시신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울었고, 동료들에게는 “세월호 가족들에게 너무 깊숙히 빠져 들었다. 나를 꺼내달라”는 말을 남겼다.
사고 당일 술을 마시시고 집으로 들어가던 김 경감은 진도대교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현장근무의 괴로움에 더해서 바로 전날 승진에서 누락해 상심한 것도 원인이었다. 경찰은 김 경감을 경위에서 한 계급 특진을 추서하고 순직 처리했다. 유족은 유족보상금을 청구했으나 공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자 소송을 냈다.
23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유진현)는 지난 6월 고(故) 김 경감(사망 당시 49세)의 유족이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고인은 세월호 사고 발생 당일 사고 장소에 출동해 수많은 죽음과 슬픔, 상실감에 노출돼 일반 업무를 수행하면서 겪는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됐다”며 “극심한 과로와 스트레스로 고인에게 급성 우울증이 발병한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했다.
이어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발병·악화해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정신적 억제력이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살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공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데일리와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선정하는 이달의 판결 자문위원 나현채(44·사법연수원 36기) 변호사는 “세월호 사고의 트라우마가 희생자와 유족뿐 아니라 사고 수습을 담당한 인력에게도 미치고 있다”며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치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 사건은 공단의 항소로 현재 서울고법에서 심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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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욱 (imfew@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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