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막판 또 고집부리면 북핵 고도화 시간만 벌어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남은 1년간 또 고집을 부린다면 북한에 핵능력을 고도화하는 시간만 벌어주게 된다”고 비판했다. 특히 “예전에 100억 달러로 해결할 수 있었던 걸 이제는 동그라미(0)가 몇 개 더 붙었다. 1000억 달러, 1조 달러까지 올랐을 거다. 북핵 해결 비용 대다수는 우리 국민이 물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10월 19일 서울 서초동 평화협력원에서 한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미 대북정책 방향을 틀 기미를 보이고 있다”며 “붕괴론 같은 데 사로잡혀 압박만 하다가는 북한의 핵능력만 더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두 갈래 진단이 깔려 있다. 한·미의 대북 봉쇄 압박정책이 사실상 실패했다는 점과 반면교사 삼아 미국이 다시 북한과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핵보유로 반대급부 그만큼 커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두 차례 통일부 수장을 지낸 정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 박근혜 정부의 동조,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가 북핵문제를 키웠다”며 “해결비용을 키운 데 대해 이명박, 박근혜, 오바마가 책임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정 전 장관은 “2009년 새 오바마 정부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평화협정 체결과 북한 비핵화를 바꾸자고 세 번이나 얘기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노(No)!’ 했다. 5월 핵실험 후 아세안지역포럼(ARF)에서 힐러리가 또 얘기했지만 한국 정부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밝혔다.
정 전 장관은 “2~5차 핵실험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실시했다. 제재·압박으로 풀 수 있다면서 북한 핵·미사일 능력 제고를 방치한 더 큰 책임은 보수정권에 있다”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9월 18일 미 외교협회(CFR) 토론에서 전략적 인내는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며 “이어 존 케리 국무장관이 9월 23일 유엔에서 북핵문제를 풀기 위해서 대화와 협상 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핵동결부터 하라는 얘기는 큰 변화다”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올해 5월 제7차 노동당대회에서 김정은의 연설을 보면 핵보유국으로서 확산 방지 의무를 언급했다. 이미 핵은 가졌으니 비확산에만 노력하겠다는 뜻 같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완전한 비핵화까지 북한이 동의하려면 미국이 북·미수교 같은 확실한 대북 안전보장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군사위협이 없다면 핵개발에 쓸 돈을 국민 경제에 투자할 생각이 들도록 하고, 종국에는 비핵화로 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핵문제 해결에 중국, 러시아의 협력이 필수적인데도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8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 회의차 갔더니 러시아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북핵문제를 우리보고 해결해달라고 하고, 나진·핫산 프로젝트에 한국기업 참여는 왜 끊느냐.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푸틴에게 대북제재에 동참해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더라”고 전했다.
정 전 장관은 “결국 북핵문제를 풀려면 9·19 공동성명으로 돌아가고 6자회담을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 전 장관은 “앞으로 고위 당국자 선에서는 대화해 합의에 이르더라도 또 실무협상에서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는 것”이라며 험난한 과정을 우려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 논란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한다고 인권문제가 풀린다는 건 궤변이다. 인도적 지원을 제도화하면서 차츰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유럽연합(EU)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여건이 나아지지 않는데도 인권 개선 요구를 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서구 역사나 우리의 1980년대 민주화에서 보듯 등 따뜻하고 배 부르면 인권이 개선되게 돼 있다”고 말했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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