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정부, 북핵 방치로 비용만 키웠다

전병역 기자 2016. 10. 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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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압박·제재 정책이 오히려 해결비용만 키워… 이대로는 ‘통일 대박’ 아니라 ‘쪽박’날 수도

‘다시 대화 테이블에 마주 앉을 수 있을까.’ 이는 앞으로의 북·미관계에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신뢰가 깨지거나 금이 간 마당이다. 심각하게 싸우고 틀어진 뒤에나 제대로 대화로 풀거나, 아예 갈라설 수 있게 된다. 남북관계의 현주소도 이와 비슷하다.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대화와 협상을 방치한 사이에 북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됐다. 미국도 더 이상 방치할 수만은 없다. ‘그냥 내버려두고 보자(전략적 인내)’는 방법은 철저히 실패작으로 끝나고 있다. 북한이 미국을 직접 공격할 능력을 갖춰간다는 것도 문제이고, 특히 핵·미사일을 이슬람 테러단체 등 제3자에게 넘길까 봐 노심초사해야 할 판이다. 미국 내 기류는 서서히 바뀌는 것 같다. 때리거나 대화하거나….

북한 핵·미사일 능력은 가공할 수준에 가까워졌다. 수년 안에 수소탄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무기화할 단계로 평가된다. 북한은 2012년 헌법을 개정해 ‘핵보유국’임을 명시하고 틈만 나면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 한다. 예전 수준의 당근책으로는 북한이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최근 무수단 미사일 발사가 잇따라 실패한 것을 두고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무수단은 실전 배치가 된 것인데, 성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나 사정거리를 늘리기 위한 테스트용 같다”고 말했다.

‘비핵화’ 아닌 ‘비확산’에 무게중심 옮길까 대화와 협상에 나서더라도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지위를 인정받고 시작하겠다는 태도를 취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2000년대 북·미, 남북 대화 때와는 출밤점이 달라졌다. 이런 현실을 인정할지부터가 한·미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물론 한·미는 절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치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 중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지는 확신키 어렵다.

분명한 것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2008년 북·미대화 이래 사실상 방치돼온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급속도로 진전됐다는 사실이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비난과 봉쇄, 압박을 해왔으나 돌아온 것은 가공할 핵·미사일 능력뿐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한·미 당국 소원대로 일찍 죽었지만 북한 체제는 붕괴되지 않았다. 김정일 건강 이상은 ‘전략적 인내’의 주요 동기였다. 오히려 뒷배를 봐주는 ‘큰형님’ 중국이 G2로 급성장해 한·미가 쓸 카드는 더 줄었다.

북한이 핵을 진짜로 포기할 의사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그동안의 행태를 반추해보면 ‘체제 안전보장 및 경제지원’과 맞바꿀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이마저도 아니라면 전면전을 감당하거나, 이 상태로 만날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야 한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 하는 것은 왜 핵을 개발하려느냐와 같은 질문이다. 체제 보장을 위한 억지수단인데, 그럴 필요가 해소되면 핵을 가질 필요도 없어진다”고 말했다.

북한이 실제로 핵을 포기하려면 예전보다 더 힘든 과정이 필요해졌다. 칼을 갈고 있을 때와 가공할 칼을 손에 쥐었을 때는 입장이 판이하다. 핵개발 단계에서 대북협상은 대체로 ‘핵개발 동결→국제기구 사찰→핵시설 불능화 및 핵물질 폐기’ 단계를 추구했다. 일단 핵을 개발했다는 전제가 되면 적어도 마지막 단계는 ‘핵무기 폐기’로 바꿔야 한다. 훨씬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핵시설을 폭격하는 것도 어렵다. 갖은 위험을 무릅쓰고 정밀타격을 한다손치더라도 핵무기까지 없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결국 남는 건 좋으나 싫으나 대화·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일이다. 보수론자인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동국대 석좌교수)도 “국민 보호 차원에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같은 군사 억제 노력을 하는 동시에 비핵화 대화로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북핵 해결은 장기적으로 노력할 과제”라고 말했다. 다만 “대화 중에도 제재를 풀면 안 된다. 상대가 총을 가졌는데, 방탄복을 벗을 수는 없는 거 아니냐”고 덧붙였다. 김연철 교수는 “늘 제재와 압박을 해왔으나 해결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지 않았느냐”며 “이란과 핵협상으로 타결했듯 북핵도 해결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북한은 믿지 못할 존재”라는 회의론이 팽배해 있다고 알려졌다. 미국 입장에서는 1994년 제네바 합의나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합의, 2012년 2·29 합의 등이 잇따라 무산됐기 때문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핵문제는 북한이 개발해서 생긴 것으로 북한이 포기할 때만 해결되는 문제다. 북한이 주도권을 쥔 사안으로, 북한이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위원은 “북한 입장에세는 2·29 합의가 이행되지 않자 협상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불신하게 된다. 더구나 ‘선 핵포기’를 조건으로 하면 북한과 대화가 안 된다”며 “그 결과는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다. 대화를 통합 합의가 곧 북한 핵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이라고 말했다.

압박·제재 효과도 의문스럽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대북 압박의 ‘채찍’은 중국이, 대화용 ‘당근’은 미국이 들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며 “대북 식량·원유 지원을 하는 중국을 끌어들여야 효과가 있는데도 지난 수년 동안은 모순된 정책을 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아시아 회귀정책이라며 중국 포위전략과 북한 압박을 병행했고, 한국은 중국 협조를 요구하면서 사드 배치를 추진한다.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는 수밖에 없다. 양 교수는 “압박과 대화 모두 중요한 수단이다. 지금 같은 압박·제재 일변도에서 물밑접촉으로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그러다가 수면 위로 올려 압박은 줄이고 대화와 교류를 늘리면 비핵화에 진전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다운 대화를 제대로 해본 게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김연철 교수는 “이란 핵협상은 총 7~8년, 집중적으로도 3년은 걸려 성과를 냈다”며 “제네바 합의는 겨우 1년, 9·19 성명도 1년 정도에 불과했다. 협상다운 협상을 해봤느냐”고 말했다.

‘핵무기 폐기’까지는 훨씬 큰 대가 대화는 시간이 걸리지만 회담 중에는 핵활동 동결조치로 북핵 능력 증진 속도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패착은 바로 이 대목이다. 대결·압박 시기에 오히려 핵능력이 고도화됐다. 2006년 1차 핵실험 후 2~5차 핵실험은 보수정권 때 이뤄졌다. 그 결과 치러야 할 대가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다. “핵물질 보유량을 고려할 때 2020년까지 북한은 최대 79개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다”고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외교안보분과 공개세미나에서 발표했다.

북핵 동결에 이어 시설 불능화, 해체까지 가더라도 마지막 핵무기 폐기까지는 쉽잖을 수도 있다. 핵능력 증대와 제3자로의 전파를 막기 위해서라도 동결 및 불능화는 의미가 크다. 다만 장용석 서울대평화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김정은 정권 하에서 동결·불능화까지는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핵무기 제거는 김정은 정권에서는 불가능할 수도 있다”며 “이란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문제 해결 배경에는 정권교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장 박사는 “완전한 비핵화는 단기간에 어려운 과제이며, 중장기적인 북한의 사회·정치환경 변화를 염두에 두는 전략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성장을 통한 사회·문화의 다원화, 경제권력 분산과 인권 개선, 개혁·개방 등을 포괄하는 장기 숙제와 함께 핵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미국 내 분위기 변화도 중요한 관전거리다. 백학순 위원은 “최근 리언 시걸 미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국장을 만났더니 헨리 키신저나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 같은 외부 전문가들이 북한과 대화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다고 전하더라”고 밝혔다. 그동안 전략적 인내 정책의 실패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북한 비핵화를 못 시키면 언제까지 한국, 일본을 통제할 수 있겠느냐. 이대로 가면 동아시아가 핵 경쟁으로 위험해진다’는 인식도 커지는 중이라고 한다.

자체 핵무장을 강조하고 나선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은 수소탄, ICBM 완성을 위해 계속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 뒤 협상국면에 가더라도 ‘비핵화’가 아니라 추가 생산을 안 하겠다는 ‘핵동결’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도 핵무기의 외부 확산을 막기 위해 타협할 수도 있다. 시간이 갈수록 핵능력 고도화로 미국이 직·간접 위험에 처해지는 건 자명해서다.

장거리로켓 광명성 4호가 올해 2월 7일 북한 서해 위성발사기지에서 발사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

결정적 열쇠는 ‘핸들 잡은’ 한국 정부 결정적 열쇠를 쥔 쪽은 남한이다. 1994년 1차 핵위기 당시 폭격까지 고려한 페리 장관이 협상으로 돌아선 것은 전쟁 위험과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같은 인사들의 영향이 컸다. 장용석 박사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자신은 조수석에 앉을 테니 김 전 대통령이 운전석에 앉으라고 한 뜻이 뭐겠느냐. 미국은 남북문제를 우리한테 맡길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거꾸로 미국이 국익에 따라 대화를 하려고 해도 한국이 극구 반대하면 불가능하다. 오바마 정부가 2·29 합의까지 도출하며 대화에 나섰으나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게 일례다.

만약 힐러리 클린턴이 차기 정부의 주인이 되더라도 남한 정부의 태도에 달렸다. 초기 1년 동안 박근혜 정부가 북한 붕괴론에 근거해 잘못 이끈다면 미국 새 정부도 대북정책에서 첫단추를 잘못 꿸 가능성이 있다. 당연히 북한도 남한과 미국에 ‘믿을 만한 상대’라는 신뢰를 주지 못하면 원하는 걸 얻기 힘든다.

차기 미국 정부에서 북·미협상에 들어가더라도 암초는 곳곳에 널렸다. 하나는 은폐된 핵·군사시설 검증을 놓고 끝없는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제네바 합의가 깨진 것도 숨겨진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단서 때문이었다. 또 북한은 적어도 장거리 미사일 기술은 인공위성 기술이라고 강조하며 계속 개발에 매진할 가능성도 크다. 북한 국가우주개발국 대변인은 9월 20일 담화를 통해 “국가우주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주체위성들을 더 많이 쏘아올리며 광활한 우주정복을 위한 힘찬 진군을 다그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차기 미국 정부까지 겨냥한 장기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북핵 위험 관리비를 대느라 ‘쪽박’ 날 수도 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기 힘든 꼴이 됐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다. ‘통일은 민족의 염원’은커녕, 그냥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답하는 국민이 늘어나는 이유다. 혹시나 가능하다면 말이다.

<선제타격은 22년 전 ‘지나간 버스’>

‘외과적인 수술.’ 아픈 곳만 칼로 싹 도려내기다. 지금 한·미 전문가 중에 ‘외과적 정밀타격’을 거론하는 이들이 적잖다. 문제되는 곳, 즉 영변 핵시설이나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등이 1차 타격 대상이 된다. 성공한다는 보장만 있다면 미국에 이만큼 확실한 카드도 없다. 대북 선제타격이 가능할까.

요즘 거론되는 선제타격은 두 가지 개념이 혼재돼 있다. 하나는 북한이 남한이나 미국을 향해 핵·미사일 등을 발사하려는 움직임이 확실시될 때다. 이는 사실상 전면전을 상정한 것이다. 전쟁 발발과 동시에 북한이 핵을 쓸지는 명확지 않지만 핵무기를 이용한다는 건 곧 전면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당연히 불가피한 조치다.

둘째는 예방적 조치로서 선제타격(예방타격)이다. 직접 전쟁 상황을 상정하지 않은 채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군사조치다. 이는 앞서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 거론된 사안이기도 하다. 전면전 위험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보수파들 가운데는 94년 북핵 제거가 기회였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현재 상황만 놓고 보자면 차라리 그때 영변 핵시설 등을 정밀타격했더라면 북핵 위험이 제거됐을 수 있다. YS(김영삼 당시 대통령)가 우유부단했다”고 말했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는 한 북핵만 없애는 정밀타격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설사 한다고 해도 지하에 은폐돼 있거나 이동식인 전략무기를 정확히 찾아내 모조리 타격한다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김태우 전 원장도 “94년에 비해 중국이 강해졌기 때문에 이제 북한 선제타격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선택”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드러나지 않은 핵·군사시설에 주목한다. 영변 핵시설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예컨대 우라늄 원심분리기는 한 차원 높은 문제다. 작고 이동이 가능하며 은폐도 어렵잖아 대형 원자로와는 다르다. 핵시설 폭격의 효과가 제한되는 이유다. 미사일도 이미 이동식발사대(TEL)에 실어 움직인다. 한마디로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를 판이 됐다. 국제법 상으로 북한 선제타격은 침략행위로 간주돼 중국, 러시아의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일부 언론과 정치인이 부추기는 선제타격론은 지지층을 달래기 위한 국내 정치용 선전에 가깝다.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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