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는 대체 왜 그랬을까

박은하 기자 2016. 10. 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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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순실씨 딸 특혜 의혹에 최경희 전 총장 끝내 사임… 한국 대학들 ‘새 출발’ 계기 삼아야

끝이 아니라 시작. 최경희 전 총장의 사임을 둘러싼 이화여대 안팎의 시선이다. 교육부 추진 사업에 대한 반발로 시작됐던 이화여대 학내 갈등은 ‘권학(權學)유착’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로 확대되고 있다.

지난 8월 3일 이화여대가 미래라이프단과대학 신설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하자 본부에서 농성하던 학생들은 반가워하면서도 술렁였다. 대학 본부가 학생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철회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미래라이프대 신설은 교육부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던 일이었다. 이화여대에서 학생 시위로 총장이 물러난 전례는 없었다. 학생들은 밤샘토론 끝에 최 총장이 물러날 때까지 농성 유지를 결정했다. 학교 측이 7월 30일 학내 시위에 경찰 1600명을 부르고 학생들을 수사 의뢰한 점, 경찰의 강제해산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한 일 등을 묵과할 수 없다는 여론이 컸다. 농성에 참여한 한 학생은 “미래라이프대 사업의 경우 학생들의 의견이 관철됐지만 학교 측은 프라임·코어 사업, 학군단(ROTC) 사업, 이화 파빌리온(기념품 매장) 설치 등을 학생들의 반대를 누르고 강행해 왔다. 밖에서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미 신뢰를 잃어서 관련자들을 더 이상 학교의 총장으로, 교육자로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 당시만 해도 ‘총장 퇴진’은 목표였다.

최경희 총장 사퇴 소식이 전해진 10월 19일 오후 이화여대 학생들이 교내를 행진하고 있다./김정근 기자

“의혹 확인되면 법적·도의적 책임 물어야” 10월 19일 최 총장이 사임했다. 미래라이프대 신설로 촉발된 학생들의 농성 82일, 교수들의 총장 퇴진 요구 시위 하루 만이다. 이번 총장 퇴진을 두고 ‘사건이 일단락됐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거의 없다. 학생과 교수들이 모두 나서 박근혜 정권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씨(60)의 딸 정유라씨(20·체육과학부 휴학)의 입학과정과 부실 학사관리에 대한 유착의혹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화여대 교수협의회는 10월 13일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교수들은 최 총장 사퇴 직후 성명서를 통해 “(정유라씨 특혜의혹에) 최경희 총장이 연관된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이화정신에 위배되는 정도가 아니라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범죄적 행위라고 여겨진다”고 밝혔다.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철학과)은 “최근 불거진 의혹에 대해 사실 확인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법적·도의적 책임이 가려져야 한다”며 “교수협의회 3대 요구사항인 총장 사퇴, 재단 개혁, 농성학생 안위 보장 중 하나만 해결됐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10월 21일 농성은 풀었지만 11월 3일에는 대규모 학내 집회를 예고했다. 이화여대는 새 총장 선출을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최 전 총장은 정유라씨에 대한 입시비리와 특혜의혹을 전면 부정하고 있다. 최 전 총장은 사임하면서 배포한 ‘이화의 구성원께 드리는 글’에서 “이화의 구성원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안타깝고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최근 체육특기자(정유라씨)와 관련해, 입시와 학사관리에 있어서 특혜가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음을 분명히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이화여대는 학사관리 부실은 인정했다.

정씨는 2015년도 이화여대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했다. 서류전형 마감일은 2014년 9월 16일이었다. 승마 국가대표였던 정씨는 서류 제출 후인 9월 20일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종목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땄다. 면접은 10월 18일에 진행됐다. 서류통과자 21명이 응시했으며 정씨는 승마 국가대표 단복을 입고 왔다. 남궁곤 입학처장(정치외교학과)은 정씨의 응시 사실을 최 총장에게 보고했다. 유명인사의 경우 지원 단계부터 화제가 되지만 개별 학생의 응시가 총장에게까지 보고되는 일은 이례적이다. 특이한 합격생이 있는 경우에도 보통 최종 합격자가 밝혀진 다음에 보고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대학의 룰이다.

남궁 처장은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정씨가 정윤회씨(최순실씨의 전 남편)의 딸이라는 게 알려지자 네티즌들 사이에서 ‘승마 귀족’이니 하며 크게 화제가 됐었다”며 “그런데 입학처 직원이 내게 ‘그 학생이 고3이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 지원했을 수 있다’고 보고를 했다. 확인해보니 진짜 했더라”고 말했다. ‘승마계에서는 논란이 됐다’는 것이 남궁 처장의 해명 요지다. 정유라씨가 “돈도 실력이다. 부모를 원망하라”고 SNS에 남긴 글도 국가대표 선발 및 이화여대 지원 후 승마계 내에서 벌어진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씨는 해당 글에서 “나는 말 타는 애들하고 별로 안 친하다”고도 남겼다.

정유라씨 서류전형 응시 사실 보고받아 보고를 받은 최 총장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고 남궁 처장은 밝혔다. 남궁 처장은 “보고를 하니까 최 총장이 내게 ‘정윤회가 누구냐’고 물어봐서 좀 놀랐었다“며 ”설명을 해줬더니 최 총장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했고, 난 ‘다른 것 없다. 원래대로 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최 총장도 ‘그럼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게 전부다”라고 해명했다. 최 총장은 ‘정윤회’가 누구인 줄도 몰랐으며, 승마계 내에서 논란이 되니 참고만 했을 뿐 입시 자체는 ‘원래대로’ 진행됐다는 의미다. 그러나 청와대 ‘비선실세’의 딸이 응시했을 때 총장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물었다는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정씨를 포함,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 3명이 모두 합격했다. 아시안게임 메달 실적은 면접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됐다. 남궁 처장은 “서류제출 마감 이후라도 국제대회 입상까지 한 학생들은 감안을 해줘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관리위원들은 지원 기간 후의 경력이기 때문에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평가는 어디까지나 관리위원들의 영역이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안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학생 3명이 전부 합격했다”고 밝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면접 자리에 국가대표 단복을 입고 온 것 자체가 특혜”라고 지적했다.

승마 종목은 2014년까지는 이화여대 체육특기생 입시 종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화여대는 학칙을 개정해 특기생 종목을 기존 11개에서 23개로 확대하고 2015년도 입시부터 적용했다. 공교롭게도 정씨가 딱 대학생이 될 때와 일치한다. 한국승마협회에 2014년 등록된 선수는 총 251명이다. 이 가운데 서울지역 여자 고교생은 단 4명이다. 승마선수 개개인의 인적사항과 진로는 승마계 내부에서는 거의 파악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이화여대는 학칙개정 역시 협의과정을 거친 것으로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정씨는 체육과학부(스포츠과학·글로벌스포츠산업) 2015학번으로 입학한다. 체육과학부는 이듬해 기존 의류산업학과, 국제사무학과, 식품영양학과, 융합보건학과 및 신설 융합콘텐츠학과와 통합돼 ‘신산업융합대학’으로 재편됐다. 신산업융합대학 신설계획은 대외적으로는 2015년 2월에 공고됐다. 이화여대 측은 “신산업융합대학 설립을 통해 미래 경제를 주도할 신산업분야 인재를 양성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학내에서는 거센 반발이 일었다. ‘스포츠’, ‘의류’, ‘보건’, ‘영양’ 등 성격이 전혀 다른 학과를 통·폐합했으며, 논의과정은 불과 몇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학생들과의 협의는 전혀 없었다고 당시 학생 중앙운영위원회는 주장했다.

신산업융합대학 설립은 정부의 대학 지원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우수 대학에 300억원을 지원하는 프라임사업(이공계 중심 대학 재정지원사업) 선정 기준으로 융복합학과 신설 등을 내세웠다. 올해 문제가 된 미래라이프대 신설은 신산업융합대학 신설과정과 복사판이다. 정부 지원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단과대 신설, 특정 분야 맞춤형 과, 성격이 전혀 다른 과의 모집, 단기간 내 일방 추진, 격렬한 학내 반발이 공통점이다.

10월 19일 오후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이 담화문을 발표하는 동안 본관을 점거중이던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김정근 기자

정부 지원금 위해 성격 다른 학과 통폐합 공교롭게도 정씨는 신산업융합대학 소속으로 원래는 큰 인연이 없었던 의류산업학과 교수들과 인연을 맺는다. 학사관리 특혜의혹의 중심에 있는 이인성 교수와 유진영 교수다.

정씨는 2015년 수업에 거의 출석하지 않았다. 2015년 1학기 성적이 0.11점이었다. 지도교수로서 정씨와 두 차례 면담하고 재적 가능성을 경고했던 함정혜 체육과학부 교수는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씨가 면담 이후 전화로 ‘교수 같지도 않은 게’라고 폭언했다”고 밝혔다. 함 교수는 지도교수에서 교체됐다. 2학기는 휴학했다. 신산업융합대학으로 통합된 뒤 2016년 1학기에는 총 6개 과목(14학점)을 수강했다. 전공선택 과목으로 ‘퍼스널트레이닝’과 ‘글로벌체육봉사’를 들었다. 정씨는 별도의 출석 인정 및 성적 부여 근거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씨는 이 과목에서 각각 C학점과 C+학점을 인정받았다. 유진영 교수가 맡은 컬러플래닝과 디자인(의류산업학과) 수업에서는 출석도 거의 하지 않고 과제 제출도 하지 않았지만 B를 받았다. 유 교수는 수업 중 정씨의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하며 “정유라는 F를 줄 것”이라고 수업 중 말했다는 사실이 한 의류학과 학생의 대자보를 통해 폭로됐다.

정씨의 출석은 올해에도 부실했다. 정씨가 다른 과목에서 출석 인정을 받기 위해 학교 측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5월 20일 덴마크 올보르그에서 열린 대회를 시작으로 9월 23일까지 총 15건의 대회에 출전했다. 별도의 훈련 증빙자료는 제출하지 않았다. 이 기간 중의 수업은 출석 대신 리포트로 대체했다. 운동생리학 수업에서는 본인의 전공인 마장마술의 기술을 설명하는 리포트에서 ‘망할 새끼’ 등 비문과 욕설이 포함된 리포트를 제출했으며, 2011년 게시된 한 블로그 게시물을 그대로 베낀 것이 드러났으나 B학점 이상을 받았다. 담담 교수는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라고 격려했고, 손수 리포트 첨삭도 했다. 이 교수는 국회에 보낸 답변서에서 “4월 중 정씨와 어머니가 방문해 면담을 실시할 때 독일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훈련에 대한 공문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해 받아 놓은 훈련 증빙자료는 없다”고 했다.

수업 출석 현황과 과제물이 모두 부실했는데도 정씨가 학점을 이수할 수 있었던 근거는 정씨가 입학하기 전인 이화여대가 실기 우수학생들의 최종 성적을 최소 B학점 이상 주는 내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 이화여대 졸업생은 “이화여대는 학점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학교다.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바라도록 한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있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이화여대 학생은 ‘어디선가 말을 타고 있는 너에게’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여 정씨와 특혜를 준 교수들을 비판했다.

대학당국 전체가 스무 살 학생 정씨의 편의에 동원되는 모양새를 보인 것이다. 이화여대는 정씨와 관련해서는 교수의 재량과 학칙 개정을 모두 동원했다. 이화여대가 얻은 것은 대체 뭘까. 정씨가 속한 단과대의 태생 자체가 정부 재정지원 사업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정씨에게 특혜를 준 의혹이 있는 교수들은 그 중에서도 보직을 맡고 있거나, 보직을 맡은 사람들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다.

이인성 교수는 평생교육단과대학 사업을 주도한 이화여대 핵심 인사로 문화예술교육원장,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장 등 2개의 보직을 맡고 있어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의 측근으로도 분류된다. 이 교수는 또 지난해 7월부터 현재까지 총 3건의 정부 지원 연구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려 정씨에게 특혜를 제공한 대신 정부 연구를 수주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해당 프로젝트는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적용한 고기능성 작업용도별 화재진압용·구조용·조사용·구급용 장갑 및 방화두건의 개발(1년 연구비 25억원씩 2건 수주), 여성신산업융합인재양성사업(연구비 5억원) 등이다. 연구비 총액만 55억원에 이른다. 이 교수가 1995년 3월 이화여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 따낸 총 9건의 정부 지원 연구 중 3분의 1이 최근 1년여 사이에 확보된 것이다.

이대 산학협력단 미르 재단 사업과 연관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은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주요 대외사업인 미르재단의 ‘K-밀(meal)’ 사업과도 연관돼 있다. K-밀 사업은 박 대통령이 지난 6월 아프리카 3개국(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 순방 당시 벌였던 한국형 개발협력 모델 ‘코리아에이드’ 중 음식사업 명칭이다. 쌀 크래커와 파우더 등 가공식품과 비빔밥 등 한식을 제공해 해당국의 기아문제를 해결하고 한식도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의 사업으로, 이화여대 산학협력단이 2014년 K-밀 개발을 맡았다. 지난해 설립된 미르재단이 이 사업의 홍보를 맡고 있다. 코리아에이드는 현지인들의 필요와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졸속으로 추진된다는 점에서 시민단체와 개발원조 전문가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이화여대에도 국제전문가 과정이 있으나 산학협력은 별개로 돌아가고 있다.

정씨 입학 이후 최순실씨와 관련된 인물이 이화여대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이화여대 발전기금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장모인 (주)삼남개발 김장자 회장이 이화여대에 1억원을 기부했다. 김 회장은 당시 이화여대 여성최고지도자과정(alps) 회장을 역임한 인연으로 이화여대 발전기금을 후원했다고 밝히고 있다. 최순실씨와의 친분으로 문화체육부의 주요 사업을 도맡아 따낸 CF 감독 차은택씨와 연관이 깊은 시공테크도 기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박기석 시공테크 회장은 지난 1월 7일 1억원을 기탁했다. 박 회장은 “예전 최경희 총장님이 교수였던 시절에 함께 과학교육에 관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그때 완벽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시는 모습에 저희 직원들 모두가 감동하고 존경하게 됐다”며 소감을 밝혔다. 시공테크는 한국관광공사와 62억1580만원에 2015 밀라노 엑스포 한국관 전시 영상 계약을 체결했는데, 주무부처가 산자부에서 문체부로 바뀌면서 제작감독을 차씨로 급작스럽게 교체했다.

권력, 산업, 대학이 얽혀 있는 것이다. 산학협력·기부금·정부용역 사업 등이 모두 ‘정유라 효과’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화여대라는 130년 전통 4년제 종합 사립대학이 수많은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는 사실이 정유라 의혹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정부 지원을 얻기 위해 설립한 단과대학이 정씨에게 조직적으로 특혜를 주고, 이화여대는 ‘공교롭게도’ 정부의 연구용역 사업에 참여하고, 정권 실세로 꼽히는 사람들로부터 기부금을 받고 있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한국대학학회장)는 “이화여대 문제는 대학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심각하고 전환적인 사태”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정부가 재정지원사업으로 대학을 길들여온 것은 오래됐으나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총장 직선제를 유지하고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려 하는 등 대학 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노력이 있었다. 보수정부 들어 국립대의 경우 정권이 총장 선출에 개입하고 사립학교의 경우 비리재단의 복귀를 방관하는 등 대학 내부적 메커니즘이 크게 후퇴했다”며 “대학의 조직 자체를 망가뜨려 갔고, 대학이 망가진 수준이 임계치를 넘어 학생들이 직접 큰 피해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대학의 민주주의 후퇴가 권력 실세의 ‘농단’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교수협의회도 총장 선출방식의 변경과 재단 개혁을 근본적 과제로 꼽고 있다. 윤 교수는 “이번 사태를 불러온 것에는 대학 자체와 특히 교수들의 책임도 크다. 프라임·코어 사업 등은 마지못해 한다 하더라도 결국 교수들이 지원서를 쓰고 추진해 왔다”며 “교수 사회는 전반적으로 크게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10월 이화여대에서 최 전 총장의 사퇴는 최종 목표가 아니다.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불이익과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단과대 사업 철회와 총장 퇴진을 거친 ‘목표’는 정권의 심장을 향하고 있다. 최경희 전 총장의 사퇴는 대학의 권학유착을 흔드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까.

<“총장선출 근본 문제부터 바꿔라”> 학교법인 이화학당은 10월 21일 이사회를 열고 최경희 전 총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차기 총장 선출절차에 돌입했다.

이화여대는 이사장이 총장 선출의 최종 권한을 갖고 있다. ‘총장 후보 추천에 관한 규정’을 제정해 총장후보추천위원회(총추위) 구성과 총장 선출방식을 정한다. 지난 15대 때는 후보로 등록한 인사 가운데 총추위가 3명을 선정하면 이들 가운데 한 명을 이사회가 총장으로 선출했다. 이사회가 총장 선출의 최종 권한을 가졌다. 현재 이사장은 <한국일보> 사장을 역임한 장명수씨다. 장 이사장은 이화여대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학교법인 이화학당의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정유라씨의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고 있던 10월 10일 이사회에서 “최 총장이 사퇴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는 규정의 대폭 개정 요구가 거세다. 이화여대 교수협의회가 중심이 된 비상대책위원회는 10월 19일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재단의 비민주적인 지배구조에 있다”며 “합리적인 총장 선출제도를 마련하고 재단 이사회를 비롯한 이화 지배구조의 개선을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학생들은 민주적 총장 선출을 요구하고 있다. 교수들도 최소 총추위 구성 단계부터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화학당 설립자인 스크랜턴 선교사가 감리교회 소속이었던 만큼 이화여대는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유관기관으로 운영돼 왔지만 1975년부터는 독립적으로 선출됐다. 이화여대는 미 선교부에서 학교재단을 넘겨받고 감리교단에서 파송하는 이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재 법인 이사회 구성을 보면 8명의 이사와 2명의 감사 중 목회자나 신학자, 교단 관계자 등 교계와 관련된 인사는 없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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