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머리가 아니라 마음의 언어였다

2016. 10. 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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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르포] 40대 아재 기자의 코딩 도전기

엔트리로만든게임프로그램. 분홍다람쥐가공중을나는초록도깨비를피해1초간무작위로나타나는사과를먹어야한다.만드는데30분이걸리지않았다.

▶ 내년부터 점진적으로 초등학교와 중·고교에서 소프트웨어 수업을 의무적으로 실시합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 등 각국 정상이 직접 나서서 “디지털 시대의 필수어인 코딩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언론에서는 영국 초등학생은 게임을 만들고 있는데 우리나라 초등학생은 게임에 빠져 있다고도 개탄합니다. 이미 강남에는 고가의 코딩학원이 성업중이라고 합니다. 코딩이 뭐길래? 국문과 출신의 48살 권은중 기자가 ‘그 쉽다’는 코딩에 도전해봤습니다. 코딩이 정말 초딩도 배울 수 있을 만큼 쉬웠을까요?

국문과 출신 수포자인 내가 코딩?
스크래치·엔트리 프로그램 덕에
첫날부터 게임·그림책이 척척
어렵단 생각 접고 홈피·로봇 도전
인터넷 무료 강좌로 독학 나서

‘웹 가나다’ 격인 HTML서 막혀
속보 쓰는 로봇기자 시도도 못해
폭탄주 감별기는 19금이라 좌절
그래도 4줄짜리 내 첫 홈피 구축
코딩 ‘넘사벽’ 아니란 자신감 얻어

난 국문과 출신이다. 국문과를 졸업하면 저절로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는 줄 알고 지원했다. 어릴 때 꿈은 생물학자였지만 수학이란 진입장벽을 넘지 못했다. 대신 내 글을 교내 백일장에서 뽑아주신 학창 시절 선생님들의 안목만 믿고 국문과에 진학했고,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처음부터 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논리나 수학과 거리가 멀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런 내가 지난 10일부터 갑자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뜻하는 코딩을 배워야 했다. 물론 이름도 생소한 코딩에 갑자기 관심이 생겨서는 아니다. 솔직히, 코딩이 세상을 바꾼다고 떠드는 요란한 세태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코딩천국, 게임지옥”을 외치는 세상을 향해 ‘정말 맞아?’ 하는 심정으로 검증해보려던 기자 본능이 발동한 거다.

이런 일에 두팔을 걷어붙인 것은 2년 전쯤 코딩을 배워보려다 실패했던 경험도 한몫했다. 그때 즉흥적인 도전에 나선 건 미국 오바마 대통령 덕분이다. 2014년 그는 미국의 코딩교육 도입을 계기로 “게임을 하지 말고 게임을 만들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의 대외정책이나 대기업정책이 모두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헬’이란 접두사가 익숙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보면 그는 나름 근사한 지도자임에는 틀림없다. 오바마의 낮은 중저음 톤의 연설을 듣고 코딩에 대한 호기심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던 기억이 난다.

‘코딩천국?’ 검증하려다 입문

코딩이 애들 장난은 아닐 텐데란 의심이 들면서도 일단 오바마를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C언어를 비롯한 여러가지 컴퓨터 언어는 내게 너무 어려웠다. 서점에서 여러 종류의 책을 찾아봤지만 초보자가 볼만한 책들은 그때만 해도 드물었다. 3일도 안 돼 깨끗이 접었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 ‘코딩천국’ 주장은 사교육을 조장하는 구호쯤이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이미 한달에 100만원짜리 코딩학원이 생겨난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는 터였다.

하지만 2년 만에 다시 취재를 해보니 그사이 세상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코딩을 내년도 초등학교 교과목으로 채택할 만큼 내용도 잘 갖추어졌다. 특히 스크래치를 접하고는 놀랐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에서 만든 이 스크래치는 레고처럼 블록을 쌓아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독특한 특징을 지녔다. 한국어 지원도 됐다. C언어처럼 복잡한 컴퓨터 언어를 전혀 몰라도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었다.

스크래치를 가르쳐주는 동영상도 주변에서 쉽게 눈에 띈다. 온라인 소프트웨어 교육 사이트(koreasw.org)를 비롯해 많은 누리집에 관련 강의가 있었다. 이 누리집은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 등이 운영하는 초·중등생 대상 온라인 교육시스템이다.

코딩에 도전한 지 이틀째인 11일부터 일단 이 누리집의 강의를 통해 독학으로 기초 중의 기초라고 하는 스크래치를 배웠다. ‘독학’이란 단어를 쓰기 무색할 정도로 쉬웠다. 스크래치의 주인공은 ‘스프라이트’로 불리는 고양이다. 코딩으로 이 고양이가 움직이고 말하고 그림 그리게 만들 수 있다. 고양이를 내가 원하는 캐릭터로 바꿀 수도 있었다. 아이들 취향 저격용으로 딱이었다. 게다가 스크래치의 최대 장점은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작품(프로젝트)의 소스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준 높은 다른 사람의 코딩을 토대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다음으로 시작한 엔트리(playentry.org/)는 한국판 스크래치다. 한국형인 만큼 미국에서 만든 스크래치보다 접근하기 쉽고 교재도 다양하다. 또 최신 언어인 만큼 그래픽이 뛰어나고 사용하기 편리했다. 다만 국내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아직은 스크래치만큼 수준 높은 공유 작품이 적다는 게 단점이다.

색채감이 맘에 들어 엔트리 강의를 따라해 봤다. 초등 3학년과 7살인 조카를 염두에 뒀다. 내년부터 코딩이 의무교육이라는데 교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짓바람’도 작용했다. 엔트리는 스크래치만큼이나 쉬웠다. 강의를 따라하면서 1시간도 안 돼 게임과 그림책을 뚝딱 만들어냈다.

그림책은 얼마 전 집에 놀러 온 조카들과 함께 그리고 놀았던 ‘외눈박이 이모와 피의 침대’를 토대로 만들었다. 초등 3학년인 큰조카는 올여름부터 세계명작을 떼고 추리소설과 괴기물을 탐독하고 있었다. 게임 역시 조카들을 고려해 만들었다. 도깨비 동굴에서 분홍다람쥐가 사과를 먹는 내용이었다. 도깨비는 무한 움직이게 했고 사과는 화면에서 무작위로 1초간 나타나도록 했다. 다람쥐가 사과를 먹으면 0.5초 동안 ‘냠냠’이란 말이 나오게 했다.

초등3학년인친조카가쓴동화를토대로만든그림책(아래). 조카는자신이종이에그린그림이스마트폰으로재생되는것을보고코딩에큰흥미를보였다.

만든 작품을 카톡으로 처제에게 보내줬다. 조카들이 커다란 눈망울을 반짝이며 아파트가 떠나갈 듯 환호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 두 프로젝트만으로 ‘아빠 제외 남자 인기순위 1위’ 자리를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킬 수 있을 거 같았다. “게임을 하지 말고 게임을 만들라”던 오바마의 말이 틀린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우쭐해졌다.

그래서 코딩을 배운 지 하루 만에 기사 방향을 ‘코딩천국 허풍인가’에서 ‘아재가 도전한 코딩’으로 급히 바꿨다. 그리고 이 기회에 내가 평소 품었던 목표에 한번 도전해보자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목표는 딱 3가지였다. 내 홈페이지 구축 기사를 써주는 로봇기자 폭탄주 감별기.

하지만 내 목표가 정치인의 대선공약만큼이나 매우 허황된 것임을 아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먼저 피지컬 컴퓨팅을 이용한 폭탄주 감별기 단계에서부터 제동이 걸렸다. 피지컬 컴퓨팅은 감지센서·모터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블록을 조립해 장치(하드웨어)를 만들고, 이를 아두이노 같은 제어 기능을 하는 휴대용 컨트롤러에 연결해 작동시키는 작업이다. 10여년 전쯤에 유행하던 과학상자를 연상하면 된다. 색깔을 감별하고 미로를 찾는 복잡한 연산이 가능한 로봇 등을 만들 수 있다.

“쉽다 쉽다” 하지만 솔직히 복잡

다소 황당한 ‘프로젝트’를 추진한 까닭은, 내 딴엔 코딩은 청소년용이라고 생각하는 기자 선후배들의 관심을 끌어보자는 심산 때문이었다. 실제 사람마다 좋아하는 폭탄주의 맛은 조금씩 다르다. 누구는 좀 독하게, 누구는 좀 순하게 마신다. 센서를 통해 알코올 도수를 정확하게 알려주거나 정확한 맛을 기억하는 하드웨어를 만들어보려는 게 나의 의도였다. 한마디로 술자리를 즐겁게 할 ‘스마트 술잔’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거다.

그러나 엔트리가 초·중등학생을 대상으로 소프트웨어를 강의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간과한 건 어처구니없는 나의 실수다. 나의 제안은 19금에 해당됐다. 엔트리에서 교육상 폭탄주 감별기 프로젝트가 어렵다는 전갈을 받은 뒤, 소개받은 다른 업체의 문도 두드려봤으나 그들 역시 똑같은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다.

로봇기자도 마찬가지였다. 로봇기자를 만드는 이유는 단순했다. 지진이 일어나거나 야구경기가 끝나면 빛의 속도로 1보를 쏠 수 있는 속보경쟁을 하려면 인간보다 로봇이 적합하다. “경주 3.5 지진(1보)” “LG, 넥센 꺾고 포스트시즌 진출(1보)” 이렇게 기사가 인터넷이나 모바일에 나가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생각보다 쉽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도전해본 건데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자바스크립트 100줄 정도면 만들 수 있다는 이 프로그램을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업체나 전문가를 1주일 만에 구하기는 어려웠다.

‘그까짓것 내가 만들지’라며 호기롭게 도전해봤다. 자바스크립트는 웹브라우저를 제어하는 컴퓨터 언어다. 하지만 이를 알려면 일단 ‘웹의 가나다’로 통하는 HTML을 배워야 했다. 자바스크립트가 히말라야의 준봉이라면 HTML은 거길 가는 베이스캠프 격이다. 산 넘어 산이었다. 그나마 HTML은 어렵지 않다는 말에 14일부터 독학 모드에 돌입했다.

HTML을 배울 수 있는 곳을 탐문해본 결과 오픈튜토리얼스 생활코딩(opentutorials.org/course/1)을 추천받았다. 이곳은 일반인들에게 프로그래밍을 무료로 학습시켜주는 사이트였다. 컴퓨터 언어는 물론 서버 관리까지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었다. 운영자인 이고잉(아이디)씨가 국문과 출신이라는 점도 맘에 들었다.

독학으로HTML을이용해만든권은중기자의첫홈피.지금은단4줄에불과하지만앞으로더살을붙여아마존에서버등록을할계획이다.

HTML 출발은 나름 산뜻했다. 내 컴퓨터에 서버를 설치하기 위해 서버 구축 프로그램인 ‘아파치’를 깔고 바로 홈피를 만들었다. 생활코딩에서 강의하는 실습용 홈피의 제목은 ‘자바스크립트’였지만 나는 ‘권은중 홈피’를 병행해 만들었다. 초보자 주제에 홈피를 2개씩 만든 것이다. 어떻게든 1주일 안에 독자들에게 결과물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주말인 16일 텍스트 정보 위주인 HTML에 색깔과 선을 입히는 CSS를 독학하면서 내가 1주일 만에 HTML을 떼고 자바스크립트로 직접 로봇기자를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홈피. 인터넷주소(URL)를 갖기 위해 1년간 무료로 서버를 제공한다는 아마존을 기웃거렸다가 복잡한 등록 과정에 질려 포기했다. 무료지만 카드결제도 해야 했다. 내 뇌가 과부하를 호소한 지 오래였다. 나중에 개발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줬더니 대부분 웃었다. 구구단을 막 뗀 초등학생이 미분·적분에 달려드는 꼴이라고 했다.

자바스크립트보다 중요한 건 ‘의지’

코딩은 쉬운 건가 어려운 건가? 1주일간 좌충우돌하면서도 풀지 못했던 화두는 17일 코딩을 통한 공익활동을 해온 코딩포서울의 활동가를 만나면서 조금 풀렸다. 이들은 2014년부터 도시와 국가의 문제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통신 재능으로 해결하고자 모인 시민운동단체다.

지난해에는 ‘지켜보고 있다 대한민국 재정’(Where Does My Money Go?)이란 국가재정 분석 프로젝트를 만들었고 올해는 서울시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 가운데 대학생이나 임산부처럼 특정 대상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알뜰서울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인 홍영택(40) 커먼워커스 공동대표는 “코딩 환경이 좋아져 누구든 원하면 과거 슈퍼컴퓨터가 했을 법한 일들을 할 수 있다”면서도 “코딩에 대한 전문지식보다 코딩을 통해 뭔가를 구현하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 은평구의 각종 통계 정보를 이용한 공공정보를 ‘코딩포은평’이란 누리집을 통해 제공하고 있었다. 그는 외국의 오픈소스(공개된 코딩)를 이용하면 코딩이나 그래픽을 일일이 만들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환규 부산대 교수(컴퓨터공학)는 어려운 코딩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논리적 사고라고 말했다. 자신이 개선하고 싶은 문제를 분석해 이를 알고리즘을 통해 해결하려면 논리력과 인내가 우선이라는 이야기였다. 조 교수는 “논리적 사고에 대한 교육 없이 산업역군 운운하면서 어려운 코딩 언어를 청소년에게 마치 입시처럼 외우라고 가르치면 코딩 교육의 효과는 없다”고 말했다.

논리적 사고력도 전문지식도 부족한 나에게 코딩은 가파른 암벽임에는 틀림없다(벌써 HTML을 싹 잊어버린 듯하다). 하지만 아등바등 암벽에 붙어 있으려고 애썼던 1주일 동안 나는 코딩이 좀 어렵지만 아래한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충분히 배울 수 있는 대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말만 하면 전화를 걸어주는 애플의 인공지능 ‘시리’처럼, 말만 하면 홈피를 만들어주는 꿈의 프로세서 출시를 기다리지 않고 부지런히 보잘것없는 4줄짜리 나의 홈피를 좀더 풍성하게 만들어보겠다는 다짐을 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내 홈피가 정식 주소(URL)를 가지고 내가 취재해온 것들이 클릭 한번으로 서비스될 때쯤, 불발됐던 폭탄주 감별기도 완성해 그 잔으로 축배를 들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권은중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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