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김칫국부터 마셨던 전략자산 순환배치 '무리수'

박수찬 2016. 10. 2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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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미 워싱턴에서 열린 안보협의회(SCM)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국방부 제공
한미 국방부가 21일 미 워싱턴에서 열린 제48차 안보협의회의(SCM)에서 군사적 압박 강도를 높이는 등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 억제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전날 열린 외교국방장관(2+2)회의에서는 확장억제 공약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2개의 협의채널을 신설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국이 동맹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핵심인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 방안은 검토하는 선에서 정리돼 논란이 일고 있다.

SCM 회의 전날까지만 해도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에 양측이 합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20일 미 워싱턴 소재 국무부에서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를 마치고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과 함께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해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21일 개최되는 한미 국방장관 회의에서 협의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국방부도 미국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 방안이 이번에 합의될 것 같다는 자신감을 표출했다.

하지만 SCM 직후 배포된 공동선언문에는 이같은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공동선언문 발표 직후 전략자산 순환배치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는 “한미 양국은 SCM에서 미국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배치를 포함해 확장억제의 실행력을 강화해 나갈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며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에서 신설하기로 결정된 한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에서 전략자산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를 포함한 다양한 확장억제 실행력 제고 방안을 협의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오바마 미 행정부의 입장과 주변국 정세, 전략자산 전개 과정에 숨겨진 현실적 문제 등을 간과한 채 북한 위협 대응에만 매몰돼 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전략자산 순환배치 불발에 국방부 해명 ‘진땀’

당초 국방부는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SCM 회의 결과는 국방부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날 발표된 SCM 공동선언문에는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를 규정하는 내용이 없었다. 대신 공동선언문 4항에 “양 장관은 2+2 ‘한미 외교·국방 확장억제 전략협의체(EDSCG)’의 틀 속에서, 북한이 동맹의 결의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못하도록 확장억제 능력을 더욱 더 강화하기 위한 추가적인 조치 방안들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고만 명시되어 있다. 공동선언문 발표 직후 워싱턴과 서울에서 논란이 불거진 것은 당연한 일. 한국의 요구사항에 미국이 공감을 표시한 것을 국방부가 기정사실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SCM 회의 직전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 국방부 제공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는 “SCM 공동선언문 4항에 있는 ‘추가적인 조치 방안’은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를 포함한 의미”라고 설명하면서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배치를 포함해 확장억제의 실행렧을 강화해나갈 필요성에 공감했고, 이를 단계적으로 높여나가기 위해 다양한 방안들을 검토하기로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어떤 특정한 옵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표명하는 것이 전략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적절한지 등을 고려한 상황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 측이 공동선언에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를 명기하는 것에 반대했느냐는 질문에는 “미국이 거절한 적은 없다”면서도 “전략적으로 어떤 것을 한다 안 한다 특정한다는 것이 전략적이지 않다는 입장으로 이해하면 적절할 것”이라는 입장을 반복했다. 확장억제 실행력 제고를 위한 다양한 옵션 중의 하나로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를 검토하지만, 이 옵션만 부각되면 북한에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외교적인 미사여구를 총동원해도 임기가 채 반 년도 남지 않은데다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에 발목이 잡힌 오바마 미 행정부의 상황을 고려하면 ‘검토’라는 표현은 사실상 거절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

한 걸음 물러서서 냉정하게 살펴보면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전략자산의 의미나 특성 등을 파악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다.
괌 앤더슨 기지에서 출격준비중인 B-2 폭격기. 미 태평양사령부 제공

미국이 보유한 전략자산은 장거리 전략폭격기인 B-52H, B-1B, B-2와 스텔스 전투기 F-22 등 공중전력과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 등 해상전력이다. 이들은 장거리 투사능력을 바탕으로 전쟁 억제력을 발휘하면서 미국과 동맹국의 이익을 수호한다. 미 공군 장거리 전략폭격기는 미국 루이지애나에 있는 바크스데일 공군기지와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기지 등 미 본토에서 주로 출동한다. 일부 전력이 태평양 괌과 인도양 디에고 가르시아에 배치되어 있지만 일종의 순환배치에 가깝다.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 역시 일본 요코스카 기지 등 일부를 제외하면 미 서해안과 동해안, 하와이 등 본토에 집결해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본토에서의 장거리 투사 능력이 사라진 전략자산은 군사적 가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방부가 추진했던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는 대당 수억 달러를 들여 전지구적 작전을 수행하도록 만든 고가의 전략무기를 ‘한반도 붙박이’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큰 차질을 빚게 하는 것은 물론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전략자산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다.

주한미군 차원에서도 전략자산의 한반도 순환배치는 쉽지 않다. 주한미군기지 가운데 B-52H, B-1B, B-2 전략폭격기와 F-22 전투기의 정비 등 운영 유지 능력을 갖춘 곳은 없다. 과거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직후 전개된 B-1B와 F-22가 한반도에 오래 머물지 못한 채 복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이들 전력의 상시 순환배치를 추진하려면 미국이 주한미군기지에 관리 시설을 만들고 인력도 재배치해야 한다. 시설의 기본설계와 재원 마련, 건설 등 모든 절차를 완료하려면 수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에 유지비용까지 추가되면 미 정부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SM-2 함대공미사일을 발사하는 미 이지스구축함. 미 해군 제공

단기간에 상시 순환배치가 가능한 전력은 이지스구축함 정도다. 미 해군이 50여척을 보유하고 있는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9000t급)은 북한 내륙 지역 타격, 잠수함 탐지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최대 1000㎞ 거리의 공중표적 1000여개를 동시에 추적하면서 20개의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으며, 탄도미사일 추적 기능과 SM-3 요격미사일(사거리 700㎞)이 결합되면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 방어도 가능하다. 내륙 지역의 핵심시설을 타격할 수 있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최대 사거리 1600㎞)과 대잠수함 탐지‧타격 체계도 갖추고 있어 유사시 북한의 미사일발사차량(TEL)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에도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 한반도에 장기간 머물 수 있다는 것도 이지스 구축함의 장점이다. 부산에 주한 미 해군사령부가 있어 보급에 큰 문제가 없다. 수리가 필요하면 가까운 주일미군기지를 이용할 수 있어 신속한 정비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지스구축함이 평소에도 합동훈련을 위해 한반도 해역에 자주 나타난다는 점에서 북한에 모종의 메시지를 줄 전략적 옵션으로는 부족하다.

◆“무기만 갖다놓으면 다 확장억제인가”

이렇게 되면 SCM에서 확장억제의 실효성을 강화한다고 합의한 성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효과는 거의 없다. 한미 양국이 해군 협력을 강화한다는데 합의했지만 이미 양국 해군은 다양한 분야에서 합동훈련과 상호 교류,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대응과 미사일 발사 경보훈련 등이 추가되는 정도다. 확장억제 강화라고 하기에는 낯간지러운 수준이다.
19일 미 해군 수상전 센터를 방문해 레일건을 살펴보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 국방부 제공

본래 SCM은 한미 양국이 1년 동안의 군사적 이슈들을 정리해서 평가하는 연례적인 성격의 회의다. 하지만 올해 SCM은 북한이 두 차례나 핵실험을 단행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며 무수단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시도를 지속하는 시기에 열렸다.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국내에서 전략자산 전개 방식에 대한 회의론이 일면서 핵무장론, 미군 전술핵 재배치론, 대북 선제타격론 등이 분출하자 정부는 이를 수면 아래로 가라앉힐 무언가가 필요했다. 때문에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와 SCM에 참가하는 외교부, 국방부 관계자들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뿌리째 뒤흔들 수 있는 강경론자들의 주장을 잠재울 ‘한 방’을 필요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세계 전략과 핵 억제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실패’로 귀결됐다.

모든 무기는 애초부터 그 쓰임새가 있다. 군사전략은 무기들의 성능을 극대화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미군의 첨단무기를 한반도에 갖다놓는다고 해서 확장억제가 강화되지는 않는다. 미 본토에서 원거리 작전을 펼치는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붙박이로 두려는 계획은 군사학의 기초조차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내년부터는 SCM 합의 후속조치를 위한 각종 협의체가 가동된다.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미국의 군사전략과 핵 억제력에 대한 치밀한 고려 없이 SCM에서의 태도를 유지한다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확장억제는 말 그대로 수사적 의미에 그칠 것이다. 단기적인 과제 해결사가 아닌, 한미 동맹의 큰 그림을 그리며 대북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전략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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