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선부터 최순실까지.. 한국판 게이트의 역사

김태훈 2016. 10. 2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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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권력형 비리를 '∼ 게이트'라고 불러 / 한국에선 1976년 美언론이 폭로한 '코리아 게이트'가 사실상 시초
미르·K스포츠재단을 둘러싼 의혹이 ‘최순실 게이트’로 비화하며 박근혜정부의 1년 남짓 남은 임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번 의혹을 ‘최순실 게이트’로 명명했습니다.”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당내 ‘최순실 게이트·편파기소 대책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면 던진 말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을 둘러싸고 여기저기서 불거진 의혹들을 한데 묶어 최순실 게이트라고 부르기로 했다는 선언으로, 청와대와 여당·검찰을 향한 사실상의 선전포고다.

 영어사전에서 ‘게이트(gate)’란 단어를 찾으면 7∼8개의 뜻이 나온다. 문, 수문, 공항 탑승구처럼 낯익은 낱말풀이가 죽 이어지다가 갑자기 정치 스캔들, 곧 권력형 비리가 등장한다. “특히 신문에서 인명이나 지명 뒤에 붙은 명사로 정치 스캔들을 나타낸다”라고 설명해놓았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통로가 어쩌다가 권력형 비리를 뜻하는 말이 되었을까.

1972년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유래

 22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게이트가 권력형 비리와 동의어가 된 것은 1972년 6월 미국에서 발생한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Affair)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의 공화당 소속 닉슨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민주당 내부 정보를 알아내려 했다. 닉슨 측의 비밀공작반이 당시 워싱턴DC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투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들통이 나 체포됐다.

미국 닉슨 대통령이 일으킨 워터게이트 사건은 본인의 사임을 가져온 것은 물론 ‘게이트’라는 단어에 권력형 비리라는 뜻을 추가했다.

 이 일로 닉슨은 의회의 탄핵 위협을 받고 끝내 하야했다. 이후 미국 언론은 정부 또는 정치권력과 관련되어 일어나는 대형 비리 의혹사건이나 스캔들 또는 그러한 불법행위 등을 말할 때 워터게이트 빌딩을 따 무슨 무슨 게이트라고 이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야당이 최순실 게이트로 명명한 사건은 제기된 의혹만 놓고 보면 권력형 비리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박근혜정권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최순실(최서영으로 개명)씨는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없고 재계와 체육계를 상대로 온갖 ‘갑질’을 한 정황이 불거진 상태다. 대기업들로부터 800억원을 걷어 만든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에 깊숙이 개입하고, 특히 K스포츠재단에 대해선 이사장 등 임직원을 마음대로 임명하거나 재단 공금을 빼내 승마선수인 딸 정유라씨의 훈련비에 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 대통령은 최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최씨를 겨냥한 듯 “재단에서 자금 유용 등 불법이 발견될 경우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는 최씨가 박 대통령과의 인연을 악용해 ‘호가호위’를 한 것으로 의심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검찰이 외국에 머물고 있는 최씨를 상대로 입국 시 통보 조치를 취하는 등 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본격 착수한 만큼 조만간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민주화 이후 정권 말기마다 게이트 양산

 한국에서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1976년 미국 언론들이 ‘박동선 사건’을 보도하면서부터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한국 정부가 박동선이란 로비스트를 내세워 미국 국회의원들에게 거액의 로비자금을 제공했다”고 보도해 한·미 양국 정가에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 언론들은 한국 정부가 연루된 대형 스캔들이란 뜻에서 박동선 사건을 ‘코리아 게이트’로 불렀고, 이 표현이 그대로 국내에 들어와 지금도 코리아 게이트 하면 박정희정권 시절의 어두운 그늘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이후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게이트는 민주화와 더불어 갑자기 언론의 단골손님이 됐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대통령 집권 말기인 1997년 터진 ‘한보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한보그룹이 정치권에 금품로비를 해 금융권으로부터 거액의 특혜성 대출을 받은 것이 한보 게이트의 핵심이다. 이 사건으로 정태수 당시 한보그룹 회장은 물론 여야 국회의원, 전직 은행장 등 10여명이 구속됐다.

노무현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터진 ‘신정아 게이트’는 가뜩이나 레임덕에 빠져 허덕이는 노 대통령에게 도덕적 치명상까지 입혔다.

 김대중정부는 유난히 게이트가 많았던 정권으로 기억된다. 홍콩에서 살해당한 한국 여성 수지김 사건을 14년 동안 은폐한 것으로 드러난 ‘윤태식 게이트’, 2300억대 불법대출과 주가조작으로 경제계를 뒤흔든 ‘진승현 게이트’, 680억대 횡령이 적발된 ‘이용호 게이트’ 등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이용호 게이트는 정치인과 검찰·국가정보원·금융감독원 간부 등이 두루 연루돼 ‘부정부패 종합 선물상자’란 말까지 나왔다.

 노무현정부 말기인 2007년에는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가 연루된 ‘신정아 게이트’가 정국을 강타했다. 이명박정부 들어 터진 ‘박연차 게이트’는 전직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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