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L리포트]정부 헛발질에 뜨거워진 낙태죄 폐지 요구

장윤정(변호사) 기자 2016. 10. 2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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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수면 위로 떠오른 '낙태 금지 규정'의 문제점들..폐지될 수 있을까?

[머니투데이 장윤정(변호사) 기자] [②수면 위로 떠오른 ‘낙태 금지 규정’의 문제점들…폐지될 수 있을까?]

지난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나의 자궁, 나의 것-낙태죄 폐지를 위한 여성들의 검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보건복지부의 시행 개정안 및 낙태죄를 반대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스1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23일 불법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 수술)을 한 의료인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입법예고를 내놓았다가 여론의 반발로 지난 17일 결국 사실상 철회 입장을 밝히며 한 발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낙태죄에 대한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이번 복지부의 입법예고가 사문화된 낙태죄에 대한 폐지 여론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평가된다. 낙태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 대한 처벌 강화 규정을 두고 산부인과 의사들이 반발을 했던 데 이어, 이제는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 낙태죄 폐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행 형법은 낙태를 '범죄'로 규정(제269조, 제270조)하고 있다. 산모뿐만 아니라 산모의 부탁으로 낙태 수술을 한 의료인까지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모자보건법에 따라 임산부에게 유전성 질환이 있거나 강간 또는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낙태가 가능하도록 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경제적 사유 등을 이유로 한 대다수의 낙태는 불법으로 규정돼 있어 그동안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현실적 문제로 인해 그동안에도 불법 낙태는 암암리에 이루어져 왔지만, 사실상 수술을 하다 적발이 돼 산모와 의사가 처벌을 받는 건수는 극히 드물어 낙태죄는 사실상 '죽은 규정'으로 평가돼왔다.

◇ 여성단체들 "낙태죄는 여성이 자기 몸에 대해 갖는 권리를 침해하는 규정"

지난 12일에는 각종 여성단체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고 "여성의 자궁은 그 자신의 것"이라며 "낙태 처벌을 강화하는 의료법 시행령 개정 입법예고안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여성단체 중 하나인 한국여성민우회는 14일 긴급 성명을 통해 "여성들의 임신·출산에 대한 결정권을 침해하는 '낙태죄' 개정 1만 명 서명운동 참여를 제안한다"며 "여성들의 재생산권, 몸에 대한 권리와 신체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임신중단이 당사자의 의사에 의한 결정임에도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허락'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이미 임신·출산에 대한 여성들의 결정권은 침해되고 있다"며 "산부인과 의사들의 수술 '중단 선언'이 있거나, 국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낙태' 처벌 강화를 주장할 때마다, 그 권리 침해의 문제는 표면화되며 여성들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고 주장했다.

또 17일에는 여성단체들을 포함한 67개 단체, 3000여명의 시민이 함께 "입법예고안을 철회하고, 형법상의 '낙태죄'를 폐지하라"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특히 여성단체들은 현행법상의 낙태죄 조항이 낙태를 한 여성은 처벌하면서도, 이에 동의한 남편(배우자)은 처벌하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성단체 페미당당은 낙태 금지에 반대하는 한국판 검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검은 시위란 폴란드 보수 여당이 발의한 낙태금지법에 반대하는 여성 단체가 검은 옷을 입고 시위해 결국 발의안을 폐지시켰던 것을 의미한다. 페미당당은 폴란드의 이 여성 단체와 연합해 한국에서도 낙태금지법을 폐기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폴란드에서도 한국의 검은시위를 주목하고 있다"며 "우리도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여성 변호사들로 구성된 사단법인 한국여성변호사회는 이번 낙태죄 존폐 문제에 관해 "민감한 사안인 만큼 성급히 판단하기 어렵다"며 "조만간 법인 산하의 생명가족윤리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두고 찬반 토론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때 여성 운동가로 활동했던 법조인 A씨는 "내가 법학과를 다니던 1990년대에도 형법상의 낙태죄 규정에는 문제가 많아 나중에는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는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다"며 "그랬던 조문이 2016년까지도 이어와 이번 기회에 재조명되고 있는 만큼 형법에 이 규정을 그대로 두는 것이 과연 현 시대의 일반 법 감정에 부합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낙태를 범죄로 규정한 형법 조문은 진즉에 없어졌어야 할 구시대적 규정이라고 본다"며 "과거 형법상 혼인빙자간음죄, 간통죄가 시대적 흐름을 반영해 폐지됐던 것처럼 낙태죄 역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폐지돼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 美 대선 후보들도 '낙태권' 논쟁…여성의 선택 Vs. 태아의 생명

한편, 현지시간 19일 있은 미국 대통령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3차 TV토론에서도 여성의 낙태권이 화두가 됐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여성의 낙태권에 강력한 지지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는 낙태 반대를 표했다.

클린턴은 "낙태를 반대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규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낙태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트럼프는 낙태 문제가 논쟁으로 등장하자 트럼프는 "생명은 존중돼야 한다"며 "나는 낙태에 반대하는(생명을 존중하는) 법관을 임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클린턴은 과거 트럼프가 낙태 여성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점을 들어 그를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트럼프는 "여성의 자궁에서 태아를 떼어내는 일이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며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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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변호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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