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검표' 고어·'백인이 반대' 링컨..美대선역사 격랑의 순간들

2016. 10. 2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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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빙 승부' 고어·케리·닉슨, 패배 인정..'노예제 반대' 남부, 링컨 대통령에 반기 트럼프, 대선 중 패배 불복 시사는 유례없어..승복 연설도 미지수

'박빙 승부' 고어·케리·닉슨, 패배 인정…'노예제 반대' 남부, 링컨 대통령에 반기

트럼프, 대선 중 패배 불복 시사는 유례없어…승복 연설도 미지수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 미국 공화당의 대선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패배할 경우 불복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이후 대선판이 요동치자 미국 대선 역사에서 격랑이 일었던 순간들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대선이 끝나고 재검표 논란이 일거나 지지자들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은 사례가 있긴 했지만 대선을 치르는 와중에 후보가 '패배 불복' 태도를 보인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22일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민주당 앨 고어와 공화당 조지 W. 부시가 맞붙었던 2000년 대선이 미 역사상 가장 박빙의 승부를 펼친 선거로 기억된다.

당시 고어는 전국 득표수에서 53만7천여 표를 더 얻고도 부시에게 패했다. 전체 선거인단의 절반에서 1명을 더해 271명을 확보한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부시가 플로리다 주에서 537표 차로 승리해 선거인단(25명)을 가져간 게 결정적이었다. 고어는 플로리다 주 개표 논란이 일자 패배 인정을 번복하고 재검표를 요구했다. 결국 연방대법원이 재검표 중단을 결정하자 고어는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부시는 2004년 재선에 성공했을 때도 민주당 후보 존 케리의 승복을 어렵게 받아냈다.

마지막까지 접전을 펼쳤던 오하이오주 개표 결과 부시가 13만여 표 차이로 앞선 상황에서 케리는 승복 결정을 내렸다. 개표되지 않은 잠정투표와 부재자 투표 숫자를 확인하고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2004년 대선 후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 오하이오에서 공화당의 투표 부정을 주장한 단체들은 대선투표 결과를 재검토해 달라고 요구하는 소송을 대법원에 냈지만 대선 결과를 바꾸는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존 F. 케네디(민주당)와 리처드 M. 닉슨(공화당)이 맞붙은 1960년 대선에서도 아슬아슬한 승부가 펼쳐졌다.

두 후보 간 치열한 접전으로 투표 다음 날 오전 6시가 돼서야 케네디는 선거인단 과반수 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닉슨은 그날 정오에서야 패배를 받아들였다.

닉슨이 패배를 인정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와이주의 첫 개표에선 닉슨이 141표가 더 얻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재개표 결과 케네디의 득표수가 115표 더 많은 것으로 번복됐다. 2차 재개표를 요구할 법도 했지만 닉슨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재검표가 이뤄지는 동안 대통령의 운명이 담보 잡힌다는 이유를 들며 케네디의 승리를 인정했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앞서 1960년(닉슨)과 2000년(고어), 2004년(케리) 대선이 아깝게 패한 후보 본인이 패배를 받아들이기까지 순탄치 못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면 지지자들이 상대진영 후보의 당선을 인정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1860년 공화당의 후보로 나서서 제16대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대선이 끝났지만 남부의 백인들은 노예제 폐지에 나선 링컨의 당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예제 폐지에 반발한 남부 주들은 연방에서 이탈했고 이후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링컨은 북부의 여러 세력을 조정하면서 점진적으로 노예해방을 단행하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미 예일대의 베벌리 게이지 미국학 교수는 미 공영방송 PBS에 대선에서 이의 제기 사례들이 있긴 했지만 평화적 정권 이양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면서 예외적인 단 하나의 사례로 링컨의 당선을 꼽았다.

게이지 교수는 "1860년 남부의 백인 대다수는 링컨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남북전쟁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63년 11월 19일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국립묘지 봉헌식에서 연설하는 모습의 그림으로 1905년 작품. [AP/미국 의회도서관=연합뉴스 자료사진]

미 대선 역사상 전례 없이 트럼프가 투표일 전에 패배 불복을 시사함에 따라 실제로 대선에서 졌을 때 패배 승복 연설을 할지도 미지수다.

미국에선 1948년 대선 이후 공식적인 패배 인정이 관례가 됐다.

당시 토머스 듀이(공화당)는 해리 트루먼(민주당)에게 패하자 선거 다음 날 트루먼에게 축하 전보를 보냈다.

듀이는 이후 기자들에게 "깨끗하고 건설적인 선거전을 펼쳤으며 후회는 없다"는 말도 남겼다.

[AP=연합뉴스 자료사진]

kong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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