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동성애로 처벌된 남성 수만명 사후 사면

[한겨레] ‘앨런 튜링 법’에 따라 사면
과거 6만5천명 동성애로 처벌

영국에서 과거 동성애를 한 혐의로 처벌받은 남성 수만명이 죽은 뒤에야 사면을 받게 됐다.

영국 법무부는 20일(현지시각) 과거 동성애를 금지한 법률을 위반해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을 사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가디언>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자유민주당의 존 샤키 의원이 발의한 치안범죄법 개정안(이른바 앨런 튜링 법)에 따라 동성애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사망한 이들은 사면을 받는다. 과거 동성애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는 6만5000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현재 생존자도 1만5000명이다.

하지만 이들의 과거 혐의 사실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관계를 하는 등 현행법을 적용할 때도 위법이 아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뉴욕 타임스>는 1970년대까지는 공중화장실이 동성애 장소로 활용돼 이에 해당하는 상당수 남성들은 사면받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에서는 2013년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이 사후 사면을 받은 뒤 동성애자들의 일반 사면 요구가 컸다. 튜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 암호기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의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그는 1952년 동성애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1954년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201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 동성애로 처벌받은 또다른 유명한 인물로는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가 있다. 와일드는 동성애 혐의로 1895년 2년의 중노동형을 선고받았다.

샘 지마 법무부 차관은 “오늘날에는 더이상 범죄가 아닌 역사적 성범죄자들을 사면하는 매우 중요한 조처”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동성애 활동가들은 과거에 대한 진솔한 사과부터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동성애자 사면 청원 운동에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튜링을 연기한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비롯해 64만명이 서명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선 21살 이상의 남성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이 1967년 폐지됐고,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는 각각 1980년과 1982년에 폐지됐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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