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권력을 추종하다 전경련의 정체성마저 흔들었다

2016. 10. 2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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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 커버스토리]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이승철 상근부회장은 강제모금 논란의 핵심인물이다. 청와대의 뜻을 받들어 직접 기업들을 상대로 모금에 나섰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전경련 조직을 사실상 좌지우지하는 상근부회장 일을 맡고 있는 그는 여러차례 입길에 오른 전력이 있다. 글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최근 불거진 미르·케이스포츠재단 논란의 핵심 인물 가운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있다. 전경련 직원으로 출발해 상근부회장까지 오른 그는 전경련을 사실상 좌지우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래 승승장구한 그는 정치권에 유독 고분고분한데다, 본인 스스로 정치적 야망까지 지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과연 ‘똘똘한 예스맨’은 어떤 사람일까?

미르·K스포츠재단 논란 핵심인물
안종범 수석 지시에 774억 모금설
전경련 내부 출신으로 첫 넘버2
대통령 앞에서도 긴장 없이 달변
전 BH 인사 “착하고 말 잘 들어”



“권력 요구 잘 따르는 예스맨”
“출세욕과 권력욕도 한몫했다”
20대 총선 여당 공천 후보 거론
2013년 장모상엔 청와대에 조화
요청해서 받았다는 말 나오기도

-미르와 케이(K)스포츠 재단 건립을 위한 기업 모금에 청와대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

“수사 중인 사건이라 답변하기 어렵다.”

-국가기관까지 동원되어 불과 며칠 사이에 재단이 설립된 것은 청와대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거 아니냐?”

“수사 중인 사건이라 답변하기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게 돼 죄송하다.”

지난 12일,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부회장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그는 쏟아지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박영선 의원은 “증인 뒤에 어마어마한 권력기관이 버티고 있거나, 본인 스스로 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이런 답변 태도는 있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부패한 권력의 상징”이라고 질타했다.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대통령 비선실세로 불리는 최순실씨 개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미르 및 케이스포츠 재단 논란의 핵심 인물이다. 최씨와 청와대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의 ‘지시’를 받고 주요 대기업들한테서 774억원의 거액을 모금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이 터지기 이전까지 그에겐 전경련 내부 출신으론 처음으로 상근부회장(2013년)에 오른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란 딱지가 따라다녔다. 그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89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다음해인 1990년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에 입사해 23년 만에 전경련의 넘버2에 올랐다.

“국회의원·장관자리 염두에 뒀던 것”

“전자상거래 국제수지 적자가 7200억원에 이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온라인 시장이 미국의 5분의 1에 그치는 것은 액티브엑스(인증시스템) 때문이다. 액티브엑스에 대해 액티브(Active)하게 엑스(X)표 쳐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승철 부회장은 2014년 3월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7시간이 넘는 끝장토론을 직접 주재하며 질책을 쏟아내자 장관들은 진땀을 흘렸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특유의 달변과 재기발랄한 발표로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활기차 보였다. 발표를 듣던 박 대통령의 안면에는 옅은 미소까지 돌았다. 전경련의 한 간부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엄숙한 자리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어려운 얘기를 쉽고도 똑 부러지게 발표하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상무 시절 상사였던 조건호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도 이 부회장에 대해 한마디로 “똘똘하다”고 표현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재계와 전경련 일부에서는 “권력이 요구하는데 이 부회장이 아니라 누군들 별수 있었겠느냐” “애초 무리한 요구를 한 권력에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동정론이 나온다. 어차피 칼자루는 청와대가 쥐고 있었으니, 그는 단지 ‘조연’에 그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전직 청와대 고위 인사가 내놓은 이승철 부회장에 대한 평은 여러모로 흥미롭다. “착하고, 말을 잘 듣는다.” 청와대나 정부 입장에선 때때로 기업들에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생긴다. 연초 투자계획을 늘리고, 계획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집행해달라는 식의 당부가 한 예다. 이 부회장은 이런 청와대의 뜻을 기업에 충실히 전달하는 ‘말 잘 듣는 착한’ 메신저 노릇을 했다. 문제는 권력이 무리한 요구를 했을 경우다. 전경련의 한 전직 임원은 “어버이연합 지원이나 미르 및 케이스포츠 재단 모금은 정중히 거부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권력의 요구에 무조건 따른 예스맨”이라고 지적했다. 전경련의 전직 상근부회장은 “내가 일할 때에는 어버이연합이나, 미르 및 케이스포츠 재단과 유사한 사안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경련과 재계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이 권력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는 태도를 보인 데는 개인의 권력욕과 출세욕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조화 사건’은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리는 재미있는 일화다. 전경련의 한 전직 임원은 “2013년 이승철 부회장이 장모상을 당했을 때 장례식장 앞에 조화가 딱 2개 놓였는데, 대통령과 전경련 회장이 보내온 것이었다. 당시 전경련 안에서는 이 부회장이 청와대에 부탁을 해서 조화를 받았다는 얘기가 파다했다”고 말했다. 전경련과 일을 많이 했던 4대 그룹의 한 전직 고위 임원은 “이 부회장이 이번 사안처럼 기업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보다 권력의 일방적인 전령 역할을 한 것은 국회의원이나 장관 자리를 염두에 뒀던 것이라는 얘기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말 새누리당이 이 부회장을 20대 총선 공천 후보로 검토 중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이 부회장은 진위를 묻는 기자들에게 “엔시엔디”(긍정도 부인도 않는다는 의미)라고 답했다. 기자들이 이 부회장에게 “엔시엔디는 사실상 시인하는 것”이라고 추궁했지만, 이 부회장은 그냥 웃기만 했다. 이 부회장은 그 이전부터 장관 기용설이 돌기도 했다. 전경련에서 본부장을 지낸 한 간부는 “전경련은 권력과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되는 ‘불가근불가원’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전경련이 특정 정권과 유착되면 정권교체 때 문제가 된다. 이 부회장과 현 정권의 유착은 개인적인 야망과 목표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을 옆에서 오랫동안 지켜봤던 전경련의 한 전직 임원도 “경제단체인 전경련은 일종의 사회적 공적기관으로, 가장 조심해야 할 게 진영논리에 빠지는 것”이라며 “개인적 출세와 권력을 좇는 사람들은 항상 힘있는 권력과 연대하려는 유혹에 빠질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승철 부회장과 박근혜 정부의 유착은 또다른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박용만 회장 취임 이후 여야 구분하지 않고 폭넓게 정책 대화에 힘쓰는 것과도 대조된다. 4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전경련은 기업에 우호적인 경제정책 수립을 위해 정부 여당은 물론 야당과도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고, 여소야대 구조에서는 더욱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전경련이 청와대와 여권하고만 유착하는 것은 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승철 부회장은 2014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장관들이 진땀을 흘리는 것과는 달리 특유의 달변과 재기발랄한 발표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대표단 접견에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경련 회관 준공 첫 행사 딸 결혼식

“이번 대선에서는 경제를 아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던 2007년 7월 제주하계포럼에서 느닷없이 ‘경제대통령론’을 펴며 대선 국면에 파란을 일으켰다. 야권에선 즉각 조 회장이 사돈인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며 격렬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당시 전경련의 임원으로 있었던 한 관계자는 “조 회장의 발언은 균형감각을 상실한 것이었다. 기업이나 전경련이 원래 보수적이긴 하지만 정치적인 의사표시를 그렇게 직접적으로 한 전례는 없다. 결국은 개인적 관계로 특정 후보를 편들고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조 회장은 ‘전경련 사익화’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로 꼽힌다. 전경련의 한 전직 임원은 “과거 5대 그룹 총수들이 전경련 회장을 맡을 때는 국가경제를 먼저 생각했는데, 2000년대 중반 이후 하위 그룹이 회장을 맡으면서는 개인의 영예나 소속 그룹의 이익을 먼저 챙겼다”는 견해를 밝혔다. 2007년 당시 상무로 있던 이승철 부회장을 전무로 발탁한 인물이 바로 조석래 회장이다.

이승철 부회장이 전경련에서 핵심역할을 떠맡은 이후, 전경련의 행보에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자유경제원만 해도 그렇다. 자유경제원은 전경련이 설립한 단체다. 지금도 매년 20억원 가까이 지원하며 예산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자유경제원은 지난해 교과서 국정화에 앞장섰다.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추구하고 정부의 시장 개입에 반대하는 전경련의 산하단체가 시장 독점과 정부 개입을 초래하는 교과서 국정화를 앞장서 주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이승철 부회장은 자유경제원의 이사를 맡아, 예산·인사·사업방향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있다. 전경련의 한 간부는 “자유경제를 하자는 전경련이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승철 부회장이 권력을 추종하다 보니 전경련의 정체성마저 흔들어놓은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승철 부회장은 또 전경련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이 무조건 정부 정책에 찬성하도록 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지적도 받는다. 한경연의 한 박사는 “정부의 추경예산 편성이나 저금리 정책은 일종의 마약과 같아서 경제의 근본 체질 개선에 도움이 안 되고 장기적으로 시장을 망가뜨린다. 자기 본연의 목소리를 잃고 정부가 하는 일은 무조건 좋다고 따라가는 것은 전경련과 한경연을 망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경연이 이따금씩 정부 정책을 비판하려는 것을 이승철 부회장이 일방적으로 막아, 한경연 원장들과도 여러차례 의견충돌을 빚은 것으로 전해진다. 전경련의 한 전직 임원은 “전경련은 시장경제 창달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시장경제에 반하는 정부 정책에 무조건 찬성하는 이승철 부회장은 외려 반시장주의자”라고 꼬집었다.

이승철 부회장의 행보와 관련해 재계 안팎에서 입길에 오르내리는 일화는 여럿 있다. 2013년 12월엔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전경련이 서울 여의도에 초고층으로 지은 전경련 회관 공식 준공식이 열렸다. 준공식 불과 사흘 뒤 컨벤션홀에서는 이승철 부회장 자녀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컨벤션홀 대관 영업이 시작된 것은 2013년 10월부터였지만, 실제 컨벤션홀을 빌려 치른 결혼식은 이 부회장 행사가 처음이었다. 당시 이 부회장은 결혼식 축사에서 “딸의 결혼식을 내가 지은 전경련 회관에서 하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전경련의 전직 임원은 “부회장 자리는 원래 회원사와 국민을 섬기는 자리다. 회원사들의 회비를 모아 지은 전경련 신축 건물의 첫 행사로 딸의 결혼식을 치른 것은 자신을 건물 주인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며 꼬집기도 했다. 전경련의 한 간부도 “역대 부회장을 보면 자신은 뒤로 물러나 있고, 회장을 전면에 내세워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했다. 그런데 이 부회장은 거꾸로 자신이 전면에 나선다”고 지적했다.

2007년 조석래 효성 회장이 발탁
조 회장은 사돈인 MB 지지 발언
‘전경련 사익화 단초’라는 비판나와
이승철 부회장 전경련 핵심 된 뒤
자유경제원 등 ‘정부 친위대’화



전경련 내 ‘이승철 사단’ 존재 논란
독단적 인사·사조직화 구설수 나와
전경련 해체 여론 어느때보다 높아
보수인사들 “이 부회장 책임져야”
이 부회장 “수사중 인터뷰 부적절”

아이디어 많지만 내실 없다는 평가도

특히 전경련 조직 내에 이승철 부회장이 총애하는 이른바 ‘이승철 사단’이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한 직원은 “이 부회장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선배들을 추월해 고속승진을 시키고, 반대로 눈 밖에 난 사람들은 승진에서 누락시킨다”고 말했다. 이런 식의 인사 스타일이 조직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데서 왔다고 볼 수도 있지만, 독단적인데다가 전경련을 사조직화하려 한다는 의혹에 빌미를 제공하는 게 사실이다. 전경련의 한 전직 임원은 “이 부회장의 지시에 대해 할 말을 소신껏 하다가 눈 밖에 난 사람들 중에는 능력과 상관없이 아웃된 사례가 여럿 있다”며 “이렇다 보니 내부회의에서 토론을 통해 자체적으로 걸러지는 기능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2011년 이뤄진 한경연의 조직개편도 이 부회장(당시 전무)의 독단과 연결짓는 시각이 많다. 당시 한경연은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많은 연구자들이 떠났다. 한경연의 한 전직 연구자는 “이 부회장이 자신의 말을 잘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정리하려고 했다. 일부는 명예퇴직 형식으로 내보냈다. 한 연구원은 이 부회장이 직접 문자를 보내 압박을 했고 결국 떠났다”고 말했다. 한경연은 이후 사실상 전경련의 예속기관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경연의 한 연구자는 “이전에는 이사회에 전경련 회장만 들어왔는데 지금은 부회장도 들어오고, 감사도 전경련이 맡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철 부회장은 아이디어가 많아 ‘재계의 꾀돌이’로 불린다. 참여정부 시절 내놨던 기업도시 정책과 박근혜 정부의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 설립 제안은 그가 내놓은 대표적인 아이디어로 꼽힌다. 특히 기업도시는 이 부회장 스스로 수차례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전경련의 한 전직 임원은 “기업도시는 2004년 현명관 부회장의 지시로 검토가 시작된 사안이다. 이 부회장은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이나 기여가 적은 일도 마치 자신의 공인 것처럼 말한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이 아이디어는 그럴듯하게 내놓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실현이 어려운 전시성 발표가 적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전경련의 또 다른 현직 간부는 “이 부회장은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실제 성사된 것은 많지 않다. 2014년 3월 대통령 주재의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서 불필요한 규제의 대표 사례로 발표한 ‘액티브엑스’의 경우도 다른 보안프로그램으로 대체됐을 뿐 근본 해결은 어려운 사안이었다는 게 중론”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전경련을 그만둔 한 전직 임원은 “이승철 부회장이 1999년 한경연에서 전경련으로 옮겨오면서 맡은 지식경제센터의 경우 10억원의 거액이 투입됐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실패로 끝났다. 이 부회장 본인이 당시 실패의 책임을 묻지 않는 전경련에 대해 ‘이보다 좋은 직장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이 12일 오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검찰 수사중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말한 뒤 다른 증인들과 달리 다리를 꼰 채 앉아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개혁진보 성향의 경제개혁연구소가 최근 국민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전경련이 설립 목적에 맞게 활동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이 21.4%에 그친 반면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64.7%로 3배에 달했다. 전경련은 1961년 자유시장경제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 발전을 표방하며 설립됐다. 반면 ‘전경련 해체론’에 관해서는 ‘찬성’과 ‘반대’가 각각 37%대로 거의 엇비슷했다.

결국 관건은 전경련의 ‘미래’다. 재계에선 여전히 전경련의 존재 의의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 편이다. 조건호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전경련이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며 “긍정 요소는 살리고 부정 요소는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전경련 출신인 권오용 효성그룹 고문은 “김영삼, 노무현 정부도 출범 때는 전경련과 안 만나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이 외국에 나갈 때마다 한국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뒤에는 생각을 바꾸었다”며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서도 대기업을 상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오용 고문은 국민 여론을 수렴해 국가 어젠다를 설정하는 역할에서 혁신의 가능성을 찾는다. “전경련 역사를 보면 1960년대 이병철 회장이 기간산업 육성을 통한 산업 보국을 주창했고, 1970년대에는 김용완 회장이 8·3 사채동결 조처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해 기업들을 살려냈으며, 1980년대에는 정주영 회장이 올림픽 유치에 앞장섰고, 1990년대에는 최종현 회장이 국가경쟁력 방안을 제시했고, 김우중 회장이 500억달러 수출 달성의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회고했다. 전경련 역시 근본 쇄신책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이며, 조만간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 “추가로 드릴 말씀 없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이승철 부회장의 퇴진을 최소한의 선결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전경련이 제대로 된 쇄신방안을 내놓으려면 이 부회장으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전경련 혁신은 미르와 케이스포츠 파문의 당사자인 이승철 상근부회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주의 논객으로 불리는 복거일 문화미래포럼 대표도 최근 한 보수언론에 실은 칼럼에서 해체 압박을 받고 있는 전경련을 변호하면서도 이승철 부회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전경련 사무국이 관료적이 돼 자신의 이익을 앞세운다는 지적은 특히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냥 엎드려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이승철은 혁신을 수행할 도덕적 권위를 잃었다. 전경련이 무너질 위험을 줄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뒷날 얻을 평판을 위해 상근부회장은 책임을 떠안고 물러나는 것이 옳다.”

전경련 출신들도 미르 및 케이스포츠 의혹의 당사자인 이승철 부회장으로서는 위기 극복이 쉽지 않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전경련의 한 간부는 “자신이 원인제공자인데, 스스로 살신성인을 하기가 쉽겠느냐. 자칫하면 조직보다 자기 살 궁리를 할 위험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경연의 한 간부는 “독립적인 기구에서 쇄신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경련 임원 출신인 이병욱 박사도 최근 출간한 저서 <사업가의 길>에서 위기 극복을 위한 좀더 근본적인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위기는 이해관계자와 국민이 심판하는 재판의 과정으로 인식해야 한다. 조직의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허창수 회장의 동반책임론도 제기된다. 전경련의 한 퇴직 임원은 “지금까지 미르 및 케이스포츠 사태와 관련해 전경련에서 사과한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느냐”며 “예전 같았으면 진작에 전경련 회장이 재계 총리로서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주역인 이승철 부회장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겨레>는 전경련 홍보실을 통해 여러차례 이승철 부회장과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담당 임원을 통해 이런 메시지만 <한겨레>에 보내왔다. “여러 대내외 일정으로 시간 잡기 어렵습니다. 그동안 기자간담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말씀드린 것 외에 추가적으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공연히 기자님의 시간만 뺏을까봐 우려됩니다. 검찰 수사 등을 앞두고 발언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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