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조차 못 견디는 현대인의 쓸쓸한 삶
정이현(44·사진)의 세 번째 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문학과지성사)는 상냥한 폭력이라는 형용모순에서 짐작하듯 상냥하지 않다. 삭막하고 냉정한 삶의 이면을 기실 고통스럽게 내보이는 편이다. 그 방식이 요란하지 않고 헛헛할 따름이다. 첫머리에 수록한 단편 ‘미스조와 거북이와 나’는 사랑조차 잘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의 쓸쓸한 삶이 배어 있다. 아버지의 옛 애인인 ‘미스조’는 그네가 왜 아버지 곁은 떠났는지 묻자 이렇게 답한다.
“어떤 사람이 제멋대로 나를 침범하고 휘젓는 것을 묵묵히 견디게 하는 건 사랑이지만, 또 그 이유로 떠나기도 하지.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어머니가 여섯 살 때 죽고 이후 아버지는 여러 여자들과 살았는데 그중 하나가 ‘미스조’였다. 이 여자는 자발적으로 아버지와 이별했거니와 세월이 흘러 엉뚱하게도 그 아버지의 아들인 나를 찾는다. 미스조에게 나는 사랑의 흔적을 증명하는 존재였을까. 미스조가 죽으면서 맡아달라고 했다는 17년 된 거북이 ‘바위’와 고양이 헝겊인형 ‘샥샥’을 쓰다듬으며 세상과 희미한 끈을 잇고 살아가는 나에게도 온기가 도는 사랑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 안의 천사’에 등장하는 남자는 동거하는 여자를 옆에 두고도 자신이 데려온 개 ‘애니’를 “내 유일한 가족”이라고 말한다. 그 남자 남우의 이복형, 성형외과를 꾸리다가 파산하고 빚더미에 오른 그 형은 남우에게 늙은 아버지를 죽게 해달라고 청한다. 남우와는 법적으로 부자관계가 아니어서 유산을 받을 수 없는 처지를 이용해 그가 도와주면 유산을 듬뿍 나눠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남우가 이 제안을 실천에 옮겼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지만 거부한 것도 아니다. 남우는 늙은 핏줄의 죽임에는 둔감하지만 늙은 개가 죽자 통곡을 한다.
일상화되어서 위선이 위선인지조차 자각되지 않는 현실을 정이현은 예리하게 보여준다. ‘안나’에서도 경은 착하기만 한 안나의 성정을 알면서도 그네의 곤경에 고개를 돌린 채 자신의 일상에만 충실하려고 한다. 이 단편의 마지막 문장이 이번 소설집의 전체 분위기를 상징하는 듯하다. “벽에 붙은 하트 모양의 수면등을 끄자 세상이 꽉 닫힌 어둠에 갇혔다.”
이밖에도 이번 소설집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영영, 여름’ ‘밤의 대관람차’ ‘서랍 속의 집’ 등 7편이 수록됐다. 9년 만에 소설집을 묶어낸 정이현은 “이제는 친절하고 상냥한 표정으로 상처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시대인 것만 같다”고 작가의말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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