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탈북 주민도 10년 지나면 상속권 청구 못해" 첫 판결
분단으로 남한에 있는 조부모나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지 못한 북한 주민이 탈북 후 남한에 있는 친척을 상대로 상속권을 청구할 경우, 국내 민법이 정한 기간인 10년이 지나면 소송을 낼 수 없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북한 주민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면서도, 민법에서 정한 상속을 주장할 수 있는 기한(제척기간)을 지나서 낸 소송을 인정할 경우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19일 탈북자 이모(47)씨가 “아버지가 받을 상속분을 돌려달라”며 친척들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13명 중 8대5로 각하(却下)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각하란 법적으로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때 법원이 내리는 결정이다.
이씨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중학생 학도병으로 입대했다가 서울에서 실종돼 1977년 호적에서 말소됐지만, 북한에서 살고 있었다. 1961년 사망한 이씨 할아버지는 이씨 고모와 삼촌에게 선산 등을 상속해줬다. 이씨 아버지는 2004년 중국에서 브로커를 통해 남한에 있는 형제를 만났지만, 이 사건으로 북한 당국의 조사를 받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2006년 사망했다. 이씨는 2007년 북한을 탈출, 2009년 국내에 입국했다. 할아버지가 친척들에게 재산을 물려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씨는 “할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아버지가 북한에 살아있었고 정당한 상속권을 갖고 있었다”며 2011년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의 쟁점은 2012년 5월부터 시행된 ‘남북 주민 사이의 가족관계와 상속 등에 관한 특례법(남북가족특례법)’이 북한 주민의 상속회복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민법이 정한 ‘상속 이후 10년’ 이후에도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다. 남북가족특례법은 남한 주민에게서 상속받지 못한 북한 주민이 상속회복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도, 민법이 정한 ‘제척기간’이 북한 주민에게도 적용되는지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해석상 논란이 있었다.
1심은 “분단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민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북한에 있는 상속인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가혹한 결과가 초래되는 점을 고려해 특례법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민법상 제척 기간을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씨의 상속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2심은 “제척기간에 특례를 인정할 경우 여러 법률적 문제가 발생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며 “상속 재산이 확정된 남한 주민들의 불이익 문제, 북한 정권에 재산을 몰수당하고 월남한 주민의 북한 소재 재산 처리와의 형평 문제 등을 고려할 때 특례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남북 분단의 장기화·고착화로 인해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북한 주민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민법에서 정한 상속회복청구의 제척기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특례를 인정할 경우 법률 관계의 안정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다. 이로 인한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의 보완이 필요한데, 이는 입법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남북가족특례법의 해당 조항은 민법상 제척기간이 적용된다고 해석해야 한다”며 “북한 주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상속권이 침해된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상속회복청구권이 소멸된다”고 덧붙였다.
김창종 대법관 등 5명은 “남북 분단 상황에서 북한 주민의 상속회복청구권 행사가 객관적으로 불가능한데도 민법상 제척기간을 적용하는 것은 북한 주민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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