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기업 돈, K스포츠 통해 '최순실 모녀회사'로 유입 정황

정제혁·송진식·김한솔 기자 2016. 10.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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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정씨의 독일 승마훈련 두 달 전 ‘유령회사’ 급조 의혹
ㆍ“비인기 종목 육성” 프로젝트 명목, 최씨 맞춤용 의심
ㆍ비덱, 스포츠 마케팅 홍보와 무관한 호텔사업도 운영

독일 프랑크푸르트 북서쪽에 자리 잡은 ‘비덱’ 사무소 구글 위성사진. 독일 주소는 ‘SchOne Aussicht 9-13 61389 Schmitten Hesse Germany’이다.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K스포츠재단이 한 재벌기업에 80억원의 추가 지원을 요구하며 명목으로 제시한 프로젝트 주관사가 ‘비선 실세’ 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가 소유한 독일 회사 ‘비덱(WIDEC)’으로 드러남에 따라 K스포츠재단 비리 의혹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재단 배후에 최씨가 있고 재단 설립 목적 역시 승마 선수인 최씨 딸 정씨의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을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일찌감치 제기됐지만, K스포츠재단이 최씨 모녀와 연결된 사업에 거액을 집행하려 한 구체적 사실이 확인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대기업→K스포츠재단→비덱’으로 이어지는 사업 및 자금 흐름을 통해 그동안 설만 무성했던 최씨의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거액의 해외 재산 도피 및 탈세 등 혐의도 피할 수 없게 된 만큼 최씨에 대한 검찰의 전면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 최순실 모녀 ‘페이퍼 회사’ 설립

17일 경향신문이 비덱의 회사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 회사는 최서원씨(최순실씨의 개명 후 이름), 정유라씨(최씨의 딸) 2명이 독일 현지에 설립한 유한회사다. 최씨가 1만7500유로(약 2192만원)의 주식을 보유해 1대 주주이고, 2대 주주인 정씨는 7500유로(약 939만원)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회사의 설립 시점은 지난해 7월17일이다. 정씨가 독일로 승마 훈련을 떠나기 두 달 전이다.

이 회사의 피고용인은 매니저로 등록돼 있는 크리스티앙 캄플라데 한 명이다. 캄플라데는 정씨의 현지 승마 코치다. 대한승마협회가 지난해 10월부터 12월까지 매달 대한체육회에 제출한 정씨의 ‘국가대표 촌외(해외) 훈련 승인 요청서’를 보면 정씨의 코치가 크리스티앙 캄플라데로 돼 있다. 결국 비덱은 직원이 한 명밖에 없는 ‘페이퍼 컴퍼니’에 가까운 셈이다.

비덱의 주요 사업은 ‘한국과 독일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스포츠 엘리트 양성, 스포츠 마케팅 홍보’ 등이며 관련 종목은 펜싱·테니스·배드민턴이다. 눈에 띄는 건 이 회사가 호텔 사업도 운영 중이라는 점이다. 독일 현지 신문 ‘타우누스 차이퉁’의 지난 8월24일자 온라인판 기사를 보면, 비덱은 지난 6월 슈미텐-아크놀트라인 지역에 위치한 ‘하트슈타인 하우스’를 인수해 ‘비덱 타우누스 호텔’이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 비리 기업 재산 빼돌리기 닮은꼴

K스포츠재단은 지난 1월 말 국내 4대 그룹 중 하나인 ㄱ그룹에 ‘배드민턴·펜싱·테니스 등 2020년 도쿄 올림픽 비인기 종목 유망주 육성’ 프로젝트 명목으로 80억원의 자금 지원을 요구했다. K스포츠재단은 이같이 제안하면서 독일 소재 스포츠 마케팅 회사인 비덱이 프로젝트의 에이전시를 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ㄱ그룹 관계자는 “우리가 프로젝트를 후원해 사업이 시작되면 비덱이 프로젝트 에이전시를 맡는 구조였다”면서 “결국에는 비덱으로 돈이 흘러들어가는 그림이었다”고 말했다. K스포츠재단이 대기업들로부터 최소 80억원 이상의 신규 자금을 지원받으면 비덱이 사업을 대행하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비리 기업 등이 해외에 유령회사를 세운 뒤 계열사 등을 통해 사업을 지원하고 자금을 빼돌리는 수법과 비슷하다.

K스포츠재단은 비덱을 에이전시로 한다고 하면서도 이 회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회사인지 소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ㄱ그룹 관계자는 “K스포츠재단 관계자는 비덱을 에이전시로 얘기했지만 이 회사는 우리가 처음 듣는 회사였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ㄱ그룹은 K스포츠재단의 제안을 받고 독일 현지인을 통해 비덱이라는 회사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다.

■ 검찰 수사 불가피

의혹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비덱 설립 및 운영 자금의 출처다. 비덱은 지난 6월 독일 현지 3성급 호텔을 인수해 운영 중인데 이 호텔 인수 자금의 출처를 놓고 특히 의문이 제기된다.

만약 최씨 모녀가 국내 재산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해외로 빼돌린 것이라면 해외 재산 도피로 처벌받게 된다. 외국환거래법 30조에 따르면 신고하지 않고 외국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은 불법이며, 해당 부동산은 몰수 및 추징이 가능하다. 최씨 모녀가 국내에 신고하지 않은 재산 또는 소득을 해외에 빼돌렸을 경우 탈세 혐의도 피할 수 없다. 최씨 모녀가 독일에 회사를 설립하고 거액의 부동산을 취득한 사실이 확인된 만큼 검찰 수사가 불가피하다.

다음으로 K스포츠재단이 회사 보고서에 등재된 정식 직원이라고는 승마 코치 한 명밖에 없는 회사에 거액의 프로젝트를 맡기려 한 경위다. 누가, 왜, 최씨 회사인 비덱에 거액의 자금 운용을 맡기려 했는지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비덱은 지난해 7월 설립된 회사여서 경력이 일천하다. 독일 현지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다. 그런데도 K스포츠재단은 비덱을 에이전시로 점찍은 뒤 ㄱ그룹으로부터 80억원을 지원받으려 했다.

ㄱ그룹 관계자는 “K스포츠재단이 제안한 사업 내용과 비덱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펜싱·테니스·배드민턴 등 유망주 육성’ 사업 내용이 똑같았다”고 말했다. K스포츠재단이 작정하고 ‘비덱 맞춤형’ 사업을 제안한 셈이다. ㄱ그룹 관계자는 “K스포츠재단이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에도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K스포츠재단이 ㄱ그룹을 포함한 재벌그룹들로부터 수백억원을 신규로 지원받으려 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렇게 조성한 수백억원의 자금이 K스포츠재단을 거쳐 최씨 소유 회사인 비덱으로 흘러드는 구조였던 셈이다. 이 배후를 밝혀야 한다.

기업들로부터 강제 모금한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설립 자금 744억원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도 밝혀야 한다. 비덱이 설립된 후 3개월 뒤 미르재단, 6개월 뒤 K스포츠재단이 각각 설립됐다. 두 재단 설립에 앞서 독일 현지에서 관련 사업을 벌이기 위해 최씨가 비덱을 미리 설립했을 가능성이 있다. K스포츠재단 등의 자금 일부가 이미 비덱으로 흘러들어가 운영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제혁·송진식·김한솔 기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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