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우리는 더 불편해져야 한다
중년 남성들끼리의 자리에서 세상이 갈수록 불편해진다는 얘기가 나왔다. 어느 직장이든 여성들이 갈수록 예민해져 악의 없이 한 말에도 반발한단다. 듣다가 내가 몇 가지 예를 들며 적절한지 의견을 물었다. ‘꽃밭에 계시네, 부장님 복도 많으세요.’ 대체로 멋쩍게 웃으면서 부적절하긴 하다는 반응들이었다. ‘추석 때 시댁은 다녀오셨죠?’ 부적절하다는 반응도 있고 관습이 그러니 무심코 인사로 하는 말인데 어떠냐는 반응도 있었다. 여성에게 ‘명절’ ‘시댁’이 그 관습상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무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혼 더 늦으면 노산이라 위험해요.’ 선의로 걱정해 주는 말 아니냐는 항변이 나왔다. 본인이 그걸 모르겠느냐, 불필요한 오지랖이다, 선의라도 듣기 불편한 말 아니냐는 반론도 나왔다. 결혼도 출산도 개인의 선택일 뿐 당연한 의무가 아니라는 말, 사생활에 개입하는 건 실례라는 말까지는 기다려 봐도 나오지 않았다.
‘미인이시네요’에 대해 가장 반발이 컸다. 사실을 얘기한 건데 잘못이냐, 난 미남이라는 소리 들으면 좋기만 할 것 같다(가정법인 점이 슬프다), 그 정도 말도 못하면 삭막해서 어찌 사냐, 강동원·현빈이 그런 소리 하면 괜찮고 아재가 하면 욕먹는 거야(알면서 왜 할까?). 듣는 이는 혹시 몰라도 다른 여성들이 불쾌할 수 있다는 반론이 나왔다. 동료로서 함께 일하는 관계인데 이성으로서 매력을 평가받는 것 같아 불쾌할 수 있다는 말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사회 풍조가 이렇게 가면 무서워서 이성에게 말도 못 걸고 독신이 늘 거라는 푸념이 나왔다. 글쎄다. 미국이나 유럽 남성들이 무서워서 이성에게 접근 못한다는 말은 못 들어 봤다. 규칙이 공유되면 그 안에서 새로운 자유가 생긴다. 흙바닥에 줄을 긋고 경계를 정했기에 야구라는 게임이 가능한 것이다. 능숙한 선수는 선을 지키면서 자유자재로 진루한다. 경계는 불편한 것이 아니다. 경계는 곧 모두를 위한 자유다.
문유석 부장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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