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아내로 산다는 건 대체 뭘까

변해림 2016. 10. 1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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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작가 아디치에, 트럼프 가족 풍자 단편 '준비'

나이지리아 출신의 미국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지난 8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단편소설 ‘준비’(The Arrangements)가 국내 번역돼 격월간 문학지 ‘릿터’ 2호에 실렸다.

뉴욕타임스의 청탁을 받고 이 소설을 쓴 페미니즘 소설가 아디치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오마주한 이 단편에서 미 대선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가족을 신랄하게 비꼬고 있다. ‘댈러웨이 부인’에 빗댄 작품이라는 것은 이 소설이 트럼프의 세 번째 부인 멀래니아를 소재로 했다는 뜻이다.

소설은 멀래니아가 손님을 초대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일어나는 일과 그녀의 내면을 그리고 있다. 트럼프는 꽃을 주문할 때도 멀래니아의 취향 따윈 고려하지 않는다. 그에게 취향이란 ‘뽐내기만 하는 것’일뿐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선물하면서 선물 받은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기쁨을 느끼려는 유형의 사람이다. “도널드는 지금껏 한 번도 그녀가 입는 옷에 별다른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녀의 옷을 직접 골라 주고 그녀의 땀내를 좋아했던, 전 남자 친구 토마즈와는 달랐다.”

물론 멀래니아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알면서도 감수하는 이유는? ‘사치스러운 평화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옷을 벗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봤다. 넓적다리에 움푹 들어간 곳이 생겼다. 도널드가 보면 뭐라고 할 게 분명했다. “여기 빨리 손봐야겠는걸.” 몇 달 전 그가 그녀의 젖가슴을 양손으로 쥐면서 한 말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그녀는 그의 창백하고 늘어진 배와 뻣뻣한 털이 반짝이는 등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재벌 마나님의 삶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사실은 의붓 딸과의 관계에서 분명해진다.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이방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멀래니아에겐 ‘격렬하지만 서서히 타오르는 짜증이 솟구친다’. 멀래니아는 남편의 애정이 오롯이 자신에게 온다기보다는 이방카와 나눠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도널드가 감탄하는 자기 딸의 자질은 만약 자신의 아내가 가졌다면 질색했을 것들이었다. (…)멀래니아는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방카는 도널드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도널드처럼, 부를 과시하는 걸 불편해하지 않았다. 도널드처럼, 항상 뭔가를 팔고 있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도널드가 파는 게 무엇인지는 명백한데 이방카가 파는 게 무엇인지는 아리송하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멀래니아는 드디어 그 콧대 높은 이방카의 약점을 잡았다(!). 알고 보니 이방카는 힐러리의 당선을 바라며, 아버지의 실수를 부추기는 엑스맨이었던 것이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그녀는 도널드에게 자신의 침실로 오라고 할 것이다. 부드럽고 미묘하게, 그가 좋아하는 재스민 향수를 뿌리고, 오늘 아침에 티퍼니가 왔었다고 말할 것이다. 이방카가 힐러리 클린턴을 후원한다는 걸 알고 속상해서 울더라고 얘기할 것이다. 그리고 도널드에게, 거짓말쟁이 기자들 중 누구도 이 사실을 알아내지 못하길 빌면서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말하고 제안할 것이다.”

소설이니 물론 허구이지만 언론을 통해 알려진 트럼프 가족들의 캐릭터에 기초한 작중 인물들의 행동과 생각은 “풋” 하고 웃음이 터져나올 정도로 생생하다. 다만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창비 발행)를 낸 아디치에가 소설을 모녀 암투로 마무리한 데에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변해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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