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회고록' 놓고 벼랑 끝 진실게임 치닫는 여야

김명환 입력 2016. 10. 16.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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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사전 의견을 구하고 기권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 의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미르재단·K스포츠재단으로 궁지에 몰렸던 여권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된 의혹이 터지자 강도높은 공세를 벌였고, 더민주는 여권이 내년 대선을 겨냥해 또다시 근거 없는 ‘색깔론’을 꺼내 들었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당시 관계자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데다가 문 전 대표 측도 뚜렷한 확답을 피하고 있어 의혹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문 전 대표는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치열한 내부 토론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이 다수 의견에 다라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기권을 결정한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배우기 바란다”라고 역공을 폈다.

반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그 많은 국방 예산을 쓰고, 젊은이들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에 시간을 들이고, 많은 사람이 피를 흘렸는데, 그 적들(북한)하고 내통해서 이런 식으로 한 것”이라며 문 전 대표가 사실상 북한 정권과 내통한 장본인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는 “이처럼 ‘상식이 없는 짓’을 한 사람들이 대선에 출마해 다시 그 방식을 이어가겠다는 것 자체가 더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이 의혹이 문 전 대표가 대권주자가 되는 것에 치명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래 찬성을 하고 싶었지만, 문 전 대표 주도로 북한에 의사를 타진한 것 때문에 부득불 기권을 했다”고 가세했다.

더민주는 여권 공세 차단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추미애 더민주 대표는 같은날 열린 정청래 전 의원의 출판기념회 축사에서 “오늘 어이없게도 무슨 경상도 어머님들 말씀대로 ‘날아가는 방귀를 잡고 시비하느냐’는 식으로 개인 회고록을 붙잡고 국정조사를 하자고 한다”고 비판했다. 당사자인 문 전 대표는 이 대표의 ‘내통‘발언에 심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16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당 대표란 분이 금도도 없이. 내통이라면 새누리당이 전문 아닌가요? 앞으로 비난하면서 등 뒤로 뒷거래, 북풍, 총풍”이라며 “선거만 다가오면 북풍과 색깔론에 매달릴 뿐 남북관계에 철학이 없는 사람들. 이제 좀 다른 정치 합시다”라고 맞불을 놨다. 문 전 대표의 대변인격인 김경수 더민주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에 의견을 타진한 것이 아니라 북한에 기권 결정을 통보한 것”이라며 “당초 문 전 대표는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입장이었지만, 기권을 주장한 다수의견을 따르게 됐다”고 해명했다.

송 전 장관 회고록에 언급된 관련 인사들의 발언도 조금씩 엇갈리고 있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당시 인권결의안과 관련해 북한에 사전 의견을 구한 적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회고록에서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김장수 주중대사(당시 국방장관)도 “나는 인권결의안에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기권이 대세인 분위기에서 찬성을 소수의견으로 남겨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회고록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당시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지낸 심윤조 전 새누리당 의원은 통화에서 “당시 결의안에 대해 기권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에 송 전 장관이 사표까지 생각하며 굉장히 분노를 터트린 기억이 있다”라며 “회고록에 쓰인 내용들이 내가 기억하는 것들과 일치한다”라고 밝혔다.

여야 잠룡들도 ‘사이버 원외공방전’에 나섰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찬성을 주장하는 외교부의 의견을 묵살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대한민국의 찬성, 기권 여부를 북한정권에게 물어봤다는 것”이라며 “만약 지금 대통령이라면 똑같은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냐. 지금도 또 북한 정권에 물어보고 결정할 것이냐”라고 비판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도 “통일로 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역사관과 정체성을 가진 정치세력에게 결코 맡길 수 없다”고 일갈했다.

반면 야권 잠룡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판문점 총격을 사주한 총풍 사건’을 거론하며 “당신들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 그것이 염치다. 죽지 못해 산다는 국민들을 위한 예의다”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성남시장 또한 “남북관련 사안 판단을 위해 북한입장을 조회한 것이 ‘내통’이면 북한과 아무 관계 없는 유신헌법 만들면서 북한에 통보한 박정희 정권은 그야말로 ‘북한결재’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송 전 장관이 왜 지금 시기에 이같은 내용이 들어있는 회고록을 냈느냐에 대한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한켠에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을 앞두고 외교관 출신 싱크탱크가 꾸려지고 있는 데 송 전 장관이 여기에 속해 있다” “반 총장에 대한 지원사격을 위해 대권 주자인 문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을 꺼내들었다”는 등의 관측이 나온다.

[김명환 기자 / 최현재 기자 / 정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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