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이 출동하면 안 되는 게 없었다

김은지 기자 2016. 10. 16. 0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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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 새누리당이 국감을 보이콧하자, 야당 단독으로 국감이 진행되었다. 이날 피감기관은 교육부였다. 서울 여의도에서 국감을 치르던 야당 의원 11명은 이날 저녁 잠시 국감을 멈추고 이화여대로 향했다. 긴급 현장 조사였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을 만났다. 야당 의원들은 최 총장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의 딸 정 아무개씨에 대한 특혜 의혹을 따져 물었다. 정씨의 이화여대 입학부터 학교생활까지 의혹 제기가 잇따랐다. 특혜 의혹의 중심에는 최순실씨(최서원으로 개명)가 있다.

야당은 최경희 총장을 증인으로 채택하려 했지만 여당의 방해로 무산됐다. 새누리당은 증인 채택 절차가 시작되자 증인 채택에 대해 90일간 조정위를 구성해 활동해야 하는 ‘안건조정 절차’ 신청 서류를 내겠다고 밝혀 야당의 단독 증인 채택을 무산시켰다.

ⓒ시사IN 조남진 2014년 9월20일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 승마 마장마술 경기장에 나타난 최순실씨(오른쪽).

최씨의 딸은 승마 선수다. 2015년 이화여대 운동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바로 직전 해까지 승마는 이화여대가 운동 특기생을 뽑는 종목이 아니었다. 종목이 11개에서 23개로 늘어나는 과정에서 승마가 들어갔고, 그해 승마 특기생으로 입학한 신입생은 정씨 혼자였다. 정씨는 1학년 1학기에 학사경고를 받았다. 사유는 출석일수 부족. 같은 해 2학기에는 휴학을 했고, 복학한 올해 1학기에는 제적 경고를 받았다. 독일 훈련으로 수업에 불참해서다. 지난 4월 최순실씨가 이화여대를 찾아가 딸의 지도교수를 만났다. 둘 사이 언쟁이 오갔다. 이후 정씨의 지도교수가 바뀌었다. 그 이후 지난 6월 이화여대의 학칙이 개정됐다. 국제대회 훈련 등에 참가한 학생은 증빙서류만 내면 출석이 인정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심지어 개정된 학칙을 소급 적용하기까지 했다. 그해 3월부터 이를 적용했다. 여기까지는 이화여대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야당은 일련의 이례적인 과정에 최순실씨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유독 최씨의 딸인 정씨가 혜택을 보아서다. 아무 직책도 없는 최순실씨가 이 정도로 힘을 썼다면, 그녀가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라는 사실을 증명해준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승마 종목 확대는 2013년 교수회의를 통해 결정되었고, 지도교수는 본인이 원했기 때문에 교체되었다”라고 해명했다. 외압 없이 이화여대가 스스로 한 결정이 시기상 공교롭게도 의심을 사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씨의 승마와 관련된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경북 상주에서 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가 열렸다. 고등학생이던 정씨는 당시 2등을 했다. 이후 심판진이 경찰 조사를 두 번이나 받는 등 이례적인 상황이 전개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승마협회에 대해서도 조사·감사를 했다. 그런데 조사를 담당한 문체부 국장과 과장이 경질됐다. 조사 결과 정씨에게 불리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문체부 국장과 과장의 경질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박 대통령이 유진룡 당시 문체부 장관을 직접 청와대로 불러 자신의 수첩을 보며, 해당 국장과 과장을 콕 집어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 전 장관이 직접 인정한 내용이다.

누가 문체부 공무원을 ‘나쁜 사람’이라 했을까

박 대통령에게 문체부 국장과 과장을 ‘나쁘다’고 전해준 사람으로 정윤회·최순실씨가 지목되었다. 청와대는 해당 공무원들이 체육계 비리 척결에 소극적이어서 경질한 인사였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문체부 안팎에서는 석연치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해당 공무원이 체육계 비리 척결 발표를 하겠다며 공식 기자회견을 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경질되었기 때문이었다.

ⓒ시사IN 이명익 최순실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 이른바 ‘정윤회 문건’은 정·최 부부를 ‘비선 실세’로 지목했다.

당사자들이 입을 열지 않아 의혹은 잠잠해졌지만 비선 실세 논란은 이듬해에 또 불거졌다.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 논란이 일어났다. 정윤회·최순실 두 사람의 이름은 다시금 정치권에 오르내렸다(정·최 부부는 2014년 5월 이혼했지만, 여전히 같은 사업장인 ㈜얀슨의 이사장과 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얀슨은 커피 수입 및 승마장업을 목적으로 한다고 등기부등본에 쓰여 있다).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문건에는 정윤회씨가 비선 실세로 국정에 관여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나 김덕중 당시 국세청장의 업무 수행과 관련해 정씨가 문제 삼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정씨는 “야인으로 살며 청와대 비서진 3인방과 연락하지 않았다”라고 의혹 자체를 부인했다. 하지만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지난 (2014년) 4월 정윤회 전화를 계속 받지 않자 이재만 비서관이 정윤회의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라고 폭로했다. 그러자 정윤회씨는 말을 바꿨다. 의혹은 커졌지만, 거기까지였다. 당시 청와대와 검찰이 사건의 본질을 문건 유출에 맞추면서, 문건 내용 속 비선의 국정 농단과 진위 여부 등은 밝혀지지 않고 끝나버렸다.

2016년 현재, 비선 논란의 중심에 최순실씨가 있다. 대기업이 각각 486억원과 288억원을 출연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만드는 데 최순실씨가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최씨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내세워 이사진으로 채웠다는 의혹이다. 또 안종범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이 모금에 관여했다는 녹취록도 나왔다. 안 수석 뒤, 그러니까 대기업에 막대한 출연금을 내게 만드는 ‘힘’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모이기 시작했다.

9월26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감장에 나온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 부회장은 “안종범 수석은 각종 회의에서 자주 만났지만 최순실은 만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같은 날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감에서도 “미르재단이 국정 사업인 ‘케이밀(K-Meal)’이 정부에서 시작되기도 전에 관련 사업 준비를 시작했다”라며 재단과 정권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20대 국회의 첫 국감은 이렇게 ‘최순실 국감’으로 치러졌다.

하지만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외에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들이 모두 증인으로 채택조차 되지 않았다. 게다가 청와대는 9월23일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이 특별감찰관은 9월30일 법사위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다. 인사혁신처는 이 특별감찰관 외에도 특별감찰관실 백방준 특별감찰관보와 나머지 감찰담당관 등을 모두 ‘당연퇴직’ 통보했다. 야당은 국감 증인 채택 방해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투기자본감시센터는 9월29일 최순실씨, 안종범 수석,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등을 뇌물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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