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궁은 나의 선택"..낙태금지법에 뿔난 여성들

이슈팀 박지윤 기자 입력 2016. 10. 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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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더이슈-②] 폴란드·미국에선 '낙태금지법' 철회하기도

[머니투데이 이슈팀 박지윤 기자] [[이슈더이슈-②] 폴란드·미국에선 '낙태금지법' 철회하기도]

여성단체 회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낙태를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한 입법을 철회하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불꽃페미액션 페이스북

19명. 최근 5년간 인공임신중절(낙태)로 경고 이상의 처분을 받은 의사의 숫자. 85만건. 같은 기간 낙태 수술 건수. (2011년 낙태 수술 건수인 약 17만명을 토대로 작성한 2012~2016년 추정치)

정부가 불법 낙태 수술을 시행한 의료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동안 암암리에 이뤄져 오던 불법 낙태 수술을 뿌리뽑겠다는 것이지만 의료계에선 현실을 담지 못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여성 단체는 낙태를 '비도덕적 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낙태를 음지로 끌어들이는 행위라며 크게 반발했다.

◇정부, 낙태 불가피성 알지만 '처벌 불가피' vs 의료계 "처벌 능사 아냐"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2일 임신중절수술을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해 집도한 의사에게 최대 12개월의 자격정치 처분을 내리는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공개했다.

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5년간 낙태로 경고 이상의 처분을 받은 의사가 19명이고 이 중 4명은 환자 사망 등으로 면허취소 처분을 받았다"며 "이 같은 불법 행위를 저질러도 시술한 의료진에 대해선 10~15일간 자격정지 처분이 고작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불법 낙태가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되지 않아 처벌 수위가 낮았기 때문으로 판단해 이번 개정안에서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규정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해당 개정안은 현실에선 오히려 부작용만 키우는 악법이라고 반발했다. 낙태를 비도덕적 의료행위로 낙인찍고 의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행위는 현실 반영을 하지 못한 법이라는 주장이다. 의사회는 해당 내용이 포함된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모든 낙태시술을 거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도 발표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낙태의 99%는 원치 않는 임신 때문"이라며 "중학생 등 어린 학생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 어린 산모와 태어날 아기의 인생은 누가 책임질 수 있냐"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 처벌 위주의 무책임한 정책보다 낙태수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임신 20주 이후의 낙태는 처벌해야 마땅하지만 출생 직후 사망하는 무뇌아 낙태까지 금지하는 현행법은 너무도 비현실적"이라며 "의사들이 낙태 수술을 못하게 되면 환자들은 일본, 중국 등으로 원정 낙태를 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현재 복지부는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낙태가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수술의 불가피성, 위반 경중, 횟수 등을 따져 12개월보다 하향조정해서 처분할 방침"이라며 "다음달 2일 전까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폴란드 여성들이 지난 3일(현지시간) 수도 바르샤바에서 '낙태전면금지법'에 반대하기 위해 검은 옷을 입고 파업에 나선 모습(위). 같은 날 한 여성이 옷걸이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 옷걸이는 자가낙태의 상징으로 낙태 합법화의 상징으로 쓰인다(아래)./AFPBBNews=뉴스1

◇여성계, '나의 자궁은 나의 선택' 문제는 이 논란에서 당사자인 '여성'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11일 논평을 통해 "정부의 인공임신중절수술에 대한 정책과 의료인들의 대응에서 여성의 몸, 여성의 권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며 "여성의 몸이 생명윤리, 저출산 인구정책 등의 논리나 이해관계로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낙태 수술 거부'를 선언한 의료계가 여성의 몸을 담보로 정부와 협상하려 한다는 점도 강하게 비판했다.

여성단체는 낙태 금지법이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낙태를 한 여성은 처벌되지만 이를 동의한 '배우자'는 처벌하지 않는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 등 여성단체들은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고 "여성의 몸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인공임신중절을 비도덕 의료행위로 규정하는 입법을 철회하라"고 외쳤다.

◇낙태 허용 범위 확대는 세계적 흐름 외국에서도 '낙태 금지법'을 둘러싸고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이들의 경우 모두 정부가 손을 들었다. 폴란드 집권당인 법과정의당(PiS)은 지난달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울 경우를 제외한 모든 경우에 낙태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최고 징역 5년형에 처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강간이나 근친상간 등 불가피한 임신의 경우에도 낙태 시술을 금지하는 초강력 법안이었다. 이에 폴란드 여성들은 "나의 자궁은 나의 선택"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낙태 금지법'을 반대하는 의미의 검은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며칠간 계속된 전면 파업 결과 정부는 '낙태 전면 금지법' 도입을 포기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낙태 시설을 엄격히 규제한 '낙태 금지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당초 텍사스주는 여성의 건강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낙태 시설을 규제했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낙태 병원이 자격미달로 문을 닫았고 낙태 비용만 크게 증가하는 결과를 낳았다. 위헌 결정이 나온 직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안전한 낙태는 실질적 권리"라며 이를 환영했다.

이슈팀 박지윤 기자 satinbow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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