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논란만 커진 백남기사태..해결의 출구는 어디에?

이혜원2 2016. 10. 15.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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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4차 부검 협의 공문 발송…유족 완강 거부
논란 불붙인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 변경 못 해"
시민들 애도 물결…사고 현장 인근에 '추모의 벽' 설치

【서울=뉴시스】이혜원 기자 = 백남기 사태가 해결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백남기씨는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살수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있다가 317일 만에 사망했다.

숨진지 3주간 지났지만 백씨의 장례는 언제 치를지 묘연하다. 오히려 백씨 부검 여부를 둘러싼 유족과 경찰의 대립에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갈등과 논란만 커져가고 있다.

◇부검 영장으로 시작된 갈등…책임회피 일관하는 경찰

유족과 경찰의 갈등은 백씨 사망 전부터 시작됐다.

백씨 사망 직전인 지난달 25일 오전 백남기대책위원회(현 백남기투쟁본부)는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백씨가 매우 위독한 상황"이라며 "검경의 부검 시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검찰이 부검 의사를 직접 밝힌 적은 없지만 통상 이 같은 사건에는 사망 후 부검을 하는 게 내부 방침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그동안 의사나 경찰을 통해서도 부검 의견을 밝혀왔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검시도 안 한 상황이다. 부검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며 백씨가 숨진 지 4여 시간 뒤인 오후 6시께 검시를 진행했다. 이후 경찰은 이날 오후 11시께 백씨 부검을 위한 압수수색 검증 영장을 신청했다. 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경찰은 영장을 재신청해 '유족과 협의를 거친다'는 내용의 '조건부' 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은 유족과 부검 절차 관련 협의를 하기 위해 수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유족 측은 "고인을 죽게 한 경찰의 손이 시신에 닿지 못하게 하겠다"며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여기에 "영장 전문을 공개해야 협의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유족 측 법률 대리인이 정보공개 청구까지 했지만 경찰이 법원의 제한사유가 담긴 장만 공개하면서 유족 측은 더욱 반발했다. 경찰이 공개한 영장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앞서 공개한 부분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3일 홍완선 서울종로경찰서장의 4차 부검 협의 제안을 위한 장례식장 방문에 유족 측은 "부검을 전제로 하는 협의에 반대한다, 영장 전문을 공개해달라는 등 의견을 충분히 표현했음에도 서장이 굳이 직접 와서 서류만 전달하고 갈 이유가 없다"며 완강히 거절했다.

같은날 유족 법률 대리인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부검 영장 발부에 대한 유족 명의의 헌법소원심판 청구와 함께 결정 선고까지 발부된 영장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는 가처분신청을 접수하기도 했다.

유족은 경찰에게 고인 사망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경찰은 묵묵부답이다. 백씨의 장녀 도라지씨는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2차 백남기 추모대회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주가 다 돼가는데 경찰 부검영장 신청으로 장례식도 못 치르고 있다"며 "남은 이들의 몫은 (아버지를) 쓰러지게 한 사람들이 처벌받게 하고 이들에게서 사과를 받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는 모양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6일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께 깊은 위로 말씀을 드린다"며 애도의 뜻은 표했지만 '사과'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지난 4일 서울경찰청 국정감사에서도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사고 당시 영상을 보여주며 "경찰 주장과 달리 경고살수가 없었다"고 다그치자 김정훈 서울경찰청장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 부인했다.

◇갈등 불붙인 사망진단서…서울대병원 외압 논란까지

경찰은 사망진단서상 병사 판정을 토대로 부검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 이 청장은 지난달 2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주치의가 급성신부전으로 인한 심정지사를 사인으로 보고 병사로 판단했다"며 "사망원인을 정확히 밝히기 위해 부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백씨 사망진단서에는 선행사인으로 급성 경막하출혈, 중간선행사인으로 급성신부전증, 직접사인으로 심폐기능정지라고 돼 있다. 병원은 직접사인을 기반으로 사망 종류를 '병사'로 분류했다.

하지만 이는 대한의사협회(의협) 규정을 위반한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의협 '진단서 등 작성·교부 지침'에 따르면 사망의 종류는 대개 원사인에 따라 결정된다.

백씨의 경우 직접사인이 심폐기능정지라도 사망에 이르게 된 궁극적 원인으로서 선행사인 '급성 경막하출혈'에 따라 '외인사'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다. 급성 경막하출혈은 외부 충격으로 인해 두개골과 뇌 사이의 '경막'이라는 얇은 막 아래에 피가 고인 상태다.

백씨 주치의였던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의 지시대로 전공의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했다는 점과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박근혜 대통령 주치의 출신이라는 점이 맞물리면서 사망진단서 작성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서울대병원은 지난 3일 특별조사위원회를 열고 '병사'로 표기된 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위원장을 맡은 이윤성 서울대의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난 외인사로 기재됐어야 한다고 보지만 주치의 백 교수는 나와 의견이 다른 것. 사망진단서는 의사 개인이 작성한다"고 선 그었다.

백 교수는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 원인은 사망 6일 전부터 급성신부전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발생한 고칼륨증에 의한 급성 '심폐정지'"라며 "체외투석을 통한 적극적인 치료가 시행됐다면 사망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선의 치료를 받았는데도 사망했다면 외인사로 표기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창석 서울대병원장도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서울대병원 국정감사에서 "사망진단서는 적법하게 처리됐다. 형법 17조에 의해 검안한 의사가 아니면 사망진단서 변경을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시민들까지 와글와글…고발과 추모 뒤섞여

갈등이 장기화되자 보수단체들까지 나서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일 정의로운시민행동 등 10여개 보수단체는 "백씨는 물대포에 의한 충격보다 빨간 우비를 입은 남성이 쓰러지면서 발생한 고의적 폭행에 의해 사망한 것"이라며 "빨간 우비의 신원을 확보해 고의로 테러한 것인지 수사해달라"고 의뢰했다.

일부 단체는 유족을 고발하기까지 나섰다.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는 지난 7일 백도라지씨 등 3명을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버지가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할 것을 알면서도 거부했다'는 이유다.

유족과 시민단체는 맞고소로 대응했다. 유족들은 지난 11일 장 대표와 김세의 MBC 기자, 윤서인 만화가를 상대로 유족과 가톨릭농민회 명의의 고소장을 제출했다. 장 대표에 대해선 무고 혐의로 12일 추가 고소했다.

민변은 "고인이 돌아가신 후 인터넷상 고인과 유족들에 대한 허위사실과 근거 없는 비난이 유포되면서 가족들이 인신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며 "근거 없이 '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에 휴양지에 여행을 떠나는 비정한 딸'과 '살인범 유족'으로 만드는 행태를 두고 볼 수 없어 법적 조처를 하기로 했다"고 고소 배경을 설명했다.

김 기자와 윤 만화가는 백씨의 막내딸인 민주화씨가 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에 휴양지로 휴가를 갔다는 내용의 글과 그림을 게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민들 사이에선 백씨를 추모하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10월 두 차례 열린 백남기 추모대회에는 각 3만명과 3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고인을 기렸다.

서울 도심엔 추모공간이 조성됐다. 백씨가 사고를 당한 서울 종로구 르메이에르종로타운 빌딩에서 약 300m 떨어진 보신각 앞에는 지난 12일 '추모의 벽'이 설치됐다.

이 조형물을 만든 김운성 작가는 "백씨가 쓰러졌을 때 바로 옆에서 '살해' 현장을 목격했다. 그런데도 가해자는 또 가해자가 돼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 시민들에게 의견을 묻고 싶어 벽을 설치했다. 많이 동참해 의견을 남겨주길 바란다"고 창작 배경을 설명했다.

추모의 벽이 설치된 날 이곳엔 '국가가 이럴 수는 없습니다' '안식을 기원하며 다신 이런 일이 없도록 물대포를 추방하겠습니다' 등의 메시지가 남겨졌다. 추모의 벽은 지금도 시민들의 애도를 기다리고 있다. 벽은 백씨가 사고를 당한 지 1주기가 되는 다음달 14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hey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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