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뉴스] "왜 백남기 전공의는 암호 같은 메모를 남겼을까?"

CBS노컷뉴스 권영철 선임기자 2016. 10. 1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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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와 레지던트의 관계는 생사여탈권을 쥔 교수에 '절대복종'

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지 20일이 됐지만 사망진단서에 사망원인이 병으로 숨졌다는 '병사'로 기록되면서 장례식 준비도 하지 못한채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경찰과 검찰에서는 '부검을 해야 한다'며 시신 압수영장을 받았고 법원은 유례없는 조건부 영장을 발부하고 유족들은 쓰러진 직후부터 지금까지 모든 진료기록이 있는데 시신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며 '부검을 반대' 하면서 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서울대병원에서 백남기 농민의 입원 진료과정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자주 벌어졌다는 결정적인 단서가 발견된다. 백남기 담당 전공의(레지던트)가 진료기록지(의무일지)에 외압의 흔적들을 곳곳에 남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왜 백남기 전공의는 암호 같은 메모를 남겼을까?"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사진=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실 제공)
▶ 어떤 암호같은 메모를 남겼다는 거냐?

=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곳곳에 단서가 숨어있다. 처음에는 단서를 놓치기도 하고 독자가 우왕좌왕 하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꼼꼼하게 읽다보면 암호처럼 숨겨진 단서들이 확실하게 들어온다. 그걸 근거로 추리를 해보면 범인이 드러난다. 그런데 백남기 농민을 담당했던 레지던트 3년차인 전공의가 의무기록에 그런 암호같은 메모를 남겼다.

몇가지만 소개하자면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9월 25일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 지정의 백선하 교수님과 상의하여 사망진단서 작성함> 사망진단서가 전공의 이름으로 발부됐지만 자신의 뜻이 아니라는 걸 드러낸 것이다.

(사진=더민주 김병욱 의원실 제공)
사망 전날인 9월 24일에는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과 환자 상태에 대해 논의했고 승압제 사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을 나눴다>는 기록과 함께 <법률팀과 상의하였고, 보호자 의견 뿐만아니라 의학적 결정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상의됨>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9월22일에는 '진료부원장(내과 신찬수 교수님)실에 T. 2200에 환자 신기능 감소 및 소변량 감소에 대해 보고드림', '진료부원장님께 말씀드리겠다고 전해 들음'이라고 기록, 신 부원장에게 백남기 농민 진료 과정을 보고하고 있음을 기재했다.

9월6일자 의무기록지에는 <환자의 신체와 존엄이 훼손되지 않는 방향으로 고민하겠다고 약속했다>, 9월7일자 의무기록지에는 <채혈가능한 정맥을 찾아봤으나 마땅한 혈관이 없음> 등등의 표현이 나온다.

서울대병원의 한 중견 간호사는 "대부분은 숨기는데 '부원장과 상의', '교수와 상의 이런건 처음봤다"고 말했다. 유족들 앞에서 교수에게 전화를 거는 것도 이례적이라고 한다.

▶ 의무기록에 평소에도 이런 메모를 남기는 건가?

= 그렇지 않다. 지시를 받았으면 지시 받은 내용만 기재하는 게 일반적이다. '외인사'라고 지시면 '외인사'로, '병사'라고 써라고 지시를 받았으면 '병사'라고만 기재하지 어떻게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를 기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직 한 신경외과 전문의는 "통상 지시 받은대로 쓴다. (그런 메모를 남긴건)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노조의 한 집행부 임원은 "10년 후를 고민한 의무기록으로 봤다"고 말했다.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은 "그런 메모를 남기는 게 아주 이례적인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건 맞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백선하 교수 (사진=박종민 기자)
▶ 왜 이런 메모를 남긴 것이냐?

= 평소 꼼꼼하게 메모하고 기록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랬는지 아니면 자신의 이름으로 하지만 내 뜻이 아니라는 걸 드러내기 위한 것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전혀 접촉이 안 되고 있다.

해당 전공의가 이런 암호같은 메모를 남긴 첫 번째 이유는 '흔적' 내지는 '단서'를 남기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김경일 전 서울시립동부병원장은 전공의는 이런 메모를 남긴건 "일부러 그랬을 것"이라면서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누군가 납치되면 그 흔적을 남겨 놓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거의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전공의는 자신의 SNS 계정에 영화 '매트릭스' 중 "오직 그 진실을 깨닫기 위해서만 노력하세요"라는 장면을 캡처한 사진을 올리면서 의혹을 증폭시켰는데 지금은 이 사진이 삭제된 상태다.

두 번째는 전문직인 의사로서 최소한의 양심의 발로라는 분석이다.

이보라 녹색병원 호흡기내과과장은 "양심을 걸고 양심에 부담스러우니까 양심에 걸리니까 그런 메모를 남긴 것 같다"면서 "이런 메모를 남기지 않으면 주치의의 책임이 되니까 '위에서 시킨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는 근거를 남긴 것으로 분석했다.

1992년 군대내 부정선거 사실을 폭로했던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장은 "다른 직업보다 더 서열이나 집단문화가 강한 의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어려운 부끄러움 또는 최소한 의사의 양심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종의 내부고발적 성격이 있다는 얘기다.

세 번째는 비슷한 표현이지만 '소극적 저항'또는 '적극적 저항'이라는 분석이다.

교수(전문의)와 레지던트(전공의)의 관계는 절대복종해야하는 생사여탈권을 쥔 관계다. 그래서 지시를 거부하거나 적극적으로 저항 할 수 없는 관계라고 한다. 그래서 '내 책임이 아니다'. '부원장과 상의했고 백선하 교수와 상의했다', '법률팀과 상의했다' 등의 기록을 남겼다는 얘기다.

한 전문의는 "자신의 책임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따른다. 시키는대로 한 거다는 그런 의미로 남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는 소극적 저항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극적 저항이 아니라 레지던트로서는 최선을 다한 적극적 저항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도 많다.

김경일 전 원장은 "이 친구는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각오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내인생에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의 발로"라면서 "저는 대개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찬수 부원장의 이름을 남긴 것도 상당히 의미있는 기록"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원장은 "대단히 용기있는 일을 했다"면서 "역사적으로 고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때 오영상 교수나 황적준 박사처럼 평가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보라 과장도 "그 친구는 아직 잃을게 많아서 역할에 한계가 있다. 수련과정이 끝나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수련과정 중이어서 선택지가 별로 없는 데도 그렇게 했다는 건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서울대병원의 중견 간호사도 "그런 메모를 남겼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의료인으로서는 당시의 상황이 그림이 그려지는 어떤 상황이었겠구나 하는 게 느껴지는 기록이었다"말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 교수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면 해당 전공의가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 의료계에서는 그걸 우려하고 있다. 특히 신경외과는 다른 분야보다 더 위계질서가 엄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라 과장은 "현직 과장이 지시하는 걸 레지던트가 지시대로 따르지 않았을 때 불이익이 갈 수 있다"면서 "극단적으로는 쫓아 낼 수도 있다. 그러면 완전 망하는 것이다. 레지던트 4년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지금 3년말인데 쫓겨나면 3년 고생한 건 수포로 돌아가고 전문의 시험볼 자격도 사라진다"고 말했다. 물론 극단적인 예이지만 쫓아내지 않아도 내부에서 왕따를 시킬 수도 있고 과장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불이익을 줄수 있다는 것이다.

김경일 전 원장은 "의사들은 병원안에 은둔자들이다. 환자한테 군림하고 수련의 위에 군림하고 과잉진료, 연명치료 하고 ....., 그 사회가 되게 좁다"면서 "앞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물론 이 전공의의 이런 의무기록이 앞으로 의사들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레지던트들이 앞으로 부당한 지시를 받으면 그걸 의무기록에 남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의사들의 권리 인턴이나 레지던트나 피교육생이지만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한 의사이기 때문이다. 김 전 원장은 의사들의 권리 '의권'이 바로잡히게 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해당 전공의는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한 2013년 페이스북에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어느 공간에서 의사로서의 길을 시작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언제라도 항상 당당하면서도, 진실되고 성실하기를 .. 응원해 주세요"라는 글을 남겼다.

(사진=자료사진)
▶ 백남기 담당 전공의 병원에 출근을 하고 있나?

= 서울대병원에서는 출근을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지만 외부 연락은 되지 않고 있다. 전화번호도 바꿨다고 한다.

서울대병원 노조에 확인해보니 해당 신경외과에서는 입조심을 하면서 쉬쉬하고 있다고 전했다. 병동은 레지던트 1~2년차 그 중에서도 주로 1년차가 맡기 때문에 3년차인 이 전공의는 맡더라도 중환자를 맡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백남기 농민의 부검문제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고 사망진단서와 관련해 국정감사의 주요 이슈로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직접 진료를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의료계의 진단이다.

(사진=서울대 의과대학 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 의과대학생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는 성명에서 "전문가란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오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CBS노컷뉴스 권영철 선임기자] bamboo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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