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담패설, 트럼프 대변" vs "빌 클린턴이 여성 학대"
“사상 최악의 저질 토론회, 일요일 밤 미국 정치가 바뀌었다.”(CNN방송)
“TV토론 사상 가장 추잡한 토론.”(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9일 저녁 9시(현지시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열린 미국 대선후보 2차 TV토론은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이었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정책 토론 대신 상대 후보를 겨냥한 인신공격과 흠집잡기로 일관했다.
토론을 앞두고 공개된 자신의 음담패설 발언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는 클린턴 후보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하 빌)의 성추행 행각을 거론하며 역공을 폈다. 클린턴도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취록 발언을 거론하면서 맞불을 놨다.
타운홀 미팅(사회자와 청중이 후보와 함께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 토론회에서 두 사람은 악수도 교환하지 않은 채 토론을 시작했다.
트럼프는 음담패설 파문과 관련, “나만큼 여성을 존중하는 사람은 없다”면서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그것은 탈의실에서 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클린턴은 “(트럼프의 음담패설이 담긴) 비디오야말로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대변해준다”면서 “여성을 모욕했고 점수를 매겼고 수치스럽게 했다”고 공격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대통령 재직시절 백악관 인턴과의 성추문으로 탄핵 위기까지 갔던 빌의 여성 편력을 꺼내 들며 맞받았다. 그는 “빌 클린턴이 이 여성들을 학대했고, 힐러리 클린턴도 이 여성들을 사악하게 공격했다”면서 “내가 2005년에 한 음담패설은 ‘말’에 불과하지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한 짓은 훨씬 더 나쁘다”고 물귀신 작전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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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빌에게 성추행이나 성폭행 등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폴라 존스 등 피해 여성 3명과 토론회 직전에 기자회견을 한 뒤 이들을 청중석에 초대했다. 청중석에 앉아 있던 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클린턴 부부의 딸 첼시 내외도 청중석의 앞자리에 앉아서 굳은 표정으로 트럼프를 지켜봤다. 클린턴은 남편을 두둔하지 않았다.
클린턴은 “그들은 저급하게 가지만, 우리는 고상하게 가자”는 미셸 오바마 여사의 발언을 인용하며 트럼프의 성추문 공격을 깎아내렸다.
트럼프는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로 공무를 보면서 극비 문서를 취급했다는 의혹)을 다시 거론하면서 “클린턴은 3만3000개의 이메일을 지웠고, 역대로 그렇게 많은 거짓말과 속임수가 있었던 적은 없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며 “대통령이 되면 특별검사를 통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은 “트럼프가 말한 모든 것은 틀렸다. 놀랍지도 않다. ‘힐러리닷컴’에 들어가서 사실 확인을 해보라”고 반박했다. 그런 뒤 “트럼프와 같은 그런 기질을 가진 누군가가 우리나라의 법을 책임지지 않고 있어 다행”이라고 비꼬았다. 트럼프는 “그럴 경우 당신은 감옥에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비아냥댔다.
트럼프의 연방소득세 회피 의혹도 쟁점이었다.
클린턴은 “10억달러의 손실을 신고해 연방소득세를 20년간 내지 않은 사람이 최고소득 계층에게 혜택을 주려고 법을 개정하려 한다”고 선공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나는 정말 많은 세금을 냈다”는 말을 두 번이나 되풀이했다.
트럼프는 사회를 맡은 앤더스 쿠퍼 CNN 앵커와 마사 래대츠 ABC방송 기자에게도 불만을 제기했다.
그는 질문 내용과 엇나가는 답변을 제지하려는 쿠퍼와 래대츠에게 “나는 지금 1대 3으로 싸우고 있다”면서 “힐러리에게는 1분의 시간도 더 주면서 왜 나한테는 1초의 시간도 주지 않느냐”고 따졌다. 쿠퍼는 클린턴이 답변할 때 트럼프가 계속 끼어들자 “그녀가 답변하게 해라. 그녀는 끼어들지 않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토론회 마지막 질문자로 나선 한 청중은 “상대 후보에 대해 서로 칭찬할 것이 있으면 해보라”고 질문을 던져 험악해진 토론회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클린턴은 “트럼프의 아이들을 존중한다. 능력 있고 헌신적이며 그것이 트럼프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내가 엄마이고 할머니이기 때문에 그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클린턴을 ‘악마’라고 지칭했던 트럼프는 “클린턴은 절대 포기하지 않고, 중단하지 않는다. 이 부분을 존중한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 파이터”라고 평가했다. 이날 두 후보는 TV토론이 끝난 후에야 짧은 악수를 했다.
앞서 트럼프의 음담패설 파문 이후 자신에게 후보 사퇴를 요구한 공화당 의원들을 ‘위선자들’이라고 비난하면서 현재의 위기 국면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트럼프의 음담패설에 등장하는 여성 2명이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파문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 여성은 자신이 13살 때 트럼프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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