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주치의 출신 병원장은 '병사' 몰랐을까

2016. 10. 1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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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백남기씨 사망진단서 개입한 신찬수 부원장과 백선하 과장…
올해 서창석 병원장 임명 뒤 승진

지난 5월 청와대는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왼쪽)을 임명했다. 서 원장은 7월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장(오른쪽)을 승진시켰다. 백 과 장은 논란이 된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쓴 당사자다. 경찰에 유리한 사망진단서 작성을 두고 외압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대병원 홈페이지, 한겨레 이정아 기자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숨진 농민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를 두고 외압 논란이 진행 중이다. 사망진단서에는 사인이 물대포로 인한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적혔다. 이는 부검이 필요하다는 경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대한의사협회, 서울대의대 동문회 등 대부분의 의사들이 백씨의 사인은 ‘병사’가 아닌 ‘외인사’라고 주장한다.

다른 의사들이 명백히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장은 혼자서 꿋꿋이 “병사가 맞다”고 주장한다. 또한 백선하 과장은 이 과정에 “외압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백남기씨를 담당했던 ㄱ레지던트(전공의)는 사인을 ‘병사’라고 적은 것에 대해 신찬수 서울대병원 부원장과 백선하 과장의 지시를 받았다고 유족에게 밝힌 바 있다.

외압은 있었던 걸까, 없었던 걸까. 있다면 어디서부터 내려온 것일까.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이 지난 5월 원장직에 임명된 과정은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이례적인 병원장 선거 출마

지난 3월 서창석 원장이 서울대병원장 선거에 출마하자 의료계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원장이 되기에는 경력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특히 2014년 대통령의 주치의가 되기 전까지 분당서울대병원에서만 근무한 것이 도마 위에 올랐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서울대병원 본원 원장이 된 사례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분당서울대병원에 있다가 2004년 서울대병원장이 되긴 했지만 서 원장과는 경우가 다르다. 성 이사장은 서울대병원 본원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고 분당서울대병원 개원준비단장을 맡은 직후 분당병원 원장까지 했다.

반면 서 원장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기획조정실장을 한 뒤 2014년 9월 대통령 주치의가 되면서 서울대병원 본원으로 옮겼다. 주치의 시절에도 서 원장의 직책은 산부인과 과장이었다. 그만큼 경력이 짧았다는 뜻이다. 역대 서울대병원장 가운데 나이도 가장 어리다.

서울대병원에 근무하는 한 의사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분당 출신이 본원으로 오는 전례가 없었다. 보통 (원장의) 나이는 정년 정도로, 역대 원장들을 봐도 다들 나이가 많다. 또 (원장은) 서울대병원 본원에서 오래 근무하고 업적이 있는 사람들 중에 정치적으로도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이 된다. 여러 보직을 하나씩 맡아가면서 올라가는 게 정상인데 (서 원장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를 했으니까 당연히 그쪽에 영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주치의가 돌연 사표를 내고 서울대병원장 후보에 지원한 것을 두고서도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서울대병원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이유로 대통령 주치의를 그만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서 원장이 사퇴한 뒤 주치의도 없이 해외 순방을 떠났다. 서 원장이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그만큼 배려해준 셈이다. 이후 대통령 주치의는 석 달 가까이 공석이었다. 지난 6월에야 청와대는 새 대통령 주치의로 윤병우 서울대의대 신경과학교실 교수를 임명했다.

원장 뽑는 이사회 9명 중 3명 정부 인사

지난 10월6일 서울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 노조가 백남기씨 사망진단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조는 서울대병원이 사망진단서의 오류를 인정하면서도 수정하지 않는 것에 “수치스럽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의료계에서는 이번 서울대병원장 선거에서 청와대가 서창석 원장을 낙점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역지부 서울대병원분회(서울대병원 노조)는 지난 4월 서 원장의 임명이 유력해지자 ‘낙하산 인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청와대의 힘으로 원장이 된다면 그 하수인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할 뿐, 정권의 지시에 반하더라도 공공의료기관과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서울대병원장으로서의 역할은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원장 후보를 추천하는 서울대병원 이사회는 9명의 이사로 구성된다. 이번 선거의 경우 원장직에 재도전한 오병희 전 서울대병원장을 제외한 8명이 참석했다. 이사장은 성낙인 서울대학교 총장이었고 이영 교육부 차관, 방문규 보건복지부 차관, 송언석 기획재정부 제2차관 등 정부 쪽 인사가 3명이었다. 나머지 이사는 서울대 의과대학장, 서울대 치과병원장, 서울대 경영대학장 등 3명과 사외이사로 지정된 충북대 병원장 1명으로 구성됐다. 이사들의 직책으로 봤을 때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구조다.

의료계를 오래 출입한 한 기자는 “청와대에서 직접적인 오더를 내리지 않았더라도 당시에 이사들이 부담을 안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통령 주치의를 그만두고 나왔으니까 청와대에서 민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사회는 지난 4월12일 회의를 열어 서창석 원장과 오병희 전 원장을 복수로 추천했다. 비밀투표였지만 5명이 서 원장을, 3명이 오 전 원장을 찍었다고 외부에 알려졌다. 교육부 장관은 그 가운데 서창석 원장을 대통령에게 제청했고, 대통령은 5월 서창석 원장을 최종 임명했다.

서울대병원에 근무하는 한 의사는 “(청와대가 원장을 내려보낸 것은) 꼭 백남기씨 사건뿐 아니더라도 성과연봉제 등 (청와대가 원장을 통해)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에서 낙마한 오병희 전 서울대병원장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청와대 낙하산 인사 논란과 관련해 “거기에 대해선 드릴 말씀이 없다. 이해를 해달라”고 말했다.

새로 임명된 서창석 원장은 곧바로 파격적인 내부 인사를 단행했다. 6월 주요 보직자 인사에서 신찬수 교수가 서울대병원 부원장으로, 7월 과장 인사에서 백선하 교수가 신경외과 과장으로 승진했다. 병원 안에서는 신 부원장과 백 과장이 ‘서창석 라인’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아무리 라인이라도 신찬수 교수는 너무 젊어 부원장이 될 때 다들 놀랐다”고 전했다.

지난해 <국민일보>는 신 부원장과 백 과장에 대해 “서울의대 입학 및 졸업 동기로, 서울대병원에서만 20년 이상 뇌하수체호르몬 이상 질환 극복을 위해 손발을 맞춰온 환상의 짝꿍”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둘은 백남기씨 사망진단서 논란과 깊이 연관돼 있다.

레지던트 “신찬수·백선하 교수님과 상의” 기록

큰딸 백도라지씨는 <한겨레21>과 단독 인터뷰에서 ㄱ레지던트가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던 당시 상황에 대해 말했다. “(ㄱ레지던트가) ‘나는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권한이 없고 신찬수 부원장과 백선하 교수 두 분이 상의한 내용을 쓸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면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 전화하면서 ㄱ레지던트가 ‘병사요?’라며 몇 번이나 반문했다. ‘병사로 체크하라는 것이냐’고 재차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다음에 ‘알았다’고 하면서 병사로 체크한 뒤 우리에게 알려줬다.”

ㄱ레지던트가 통화한 대상이 누군지에 대해 큰딸 백씨는 “잘 모르겠다”면서도 “중환자실에 들어가 왼쪽 바로 처음에 있는 컴퓨터 앞 전화기로 전화를 걸었다. 돌아가신 직후 통화기록을 뽑는다면 어디로 연결됐는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ㄱ레지던트가 9월25일(백씨 사망 당일) 작성한 의무기록지를 보면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 지정의 백선하 교수님과 상의하여 사망진단서 작성함”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백선하 교수의 사망진단서 작성 경위를 조사한 서울대병원 특위는 다른 결과를 내놨다. ㄱ레지던트가 신찬수 부원장과 통화했지만 신 부원장은 사망진단서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윤성 특위 위원장은 지난 10월3일 기자회견 당시 질의응답 과정에서 “부원장은 사회적 관심을 많이 받는 환자이거나 주요 인사가 입원하면 환자의 상태에 대해 수시로 보고받고, 백남기님도 수시 보고를 받는 대상이었다. 저희가 들은 바로는 담당 레지던트가 백선하 교수에게 연락을 취했는데 연락이 잘되지 않아서 부원장에게 연락했고, 부원장은 그 얘기를 보고받고 ‘사망진단서는 백선하 교수와 알아서 작성하라’(고 했다.) 부원장이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지시한 적은 없다는 게 저희가 확인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특위 보고서에는 “사망진단서 작성을 포함한 모든 진료 과정에서 담당 의사에게 어떠한 외압이나 강요는 없었고, 담당 교수는 오로지 자신의 의학적 판단에 따랐으며, 사망진단서는 담당 교수의 지시에 따라 담당 전공의가 작성하였음을 확인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사망진단서 논란은 백선하 과장 개인의 일탈이라고 결론짓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여럿이다. 신찬수 부원장은 사망진단서 이외에도 백남기씨 사건의 다방면에서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병원 특위는 신찬수 부원장이 단순히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의무기록지를 보면 신찬수 부원장은 단순 보고를 넘어서 백씨 사망 당시 진료에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백씨 사망 사흘 전인 9월22일부터 9월25일까지 신찬수 부원장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의무기록지에 등장한다. 특히 사망 하루 전날인 9월24일 ㄱ레지던트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아닌 신찬수 진료부원장과 논의한다. 의무기록지에 시각은 적혀 있지 않지만, 사망 당일인 9월25일 승압제(혈압상승제) 사용을 지시한 것도 백선하 교수가 아닌 신찬수 부원장이었다. 신 부원장은 지난 7월 백씨 가족들에게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지난 10월6일 기자회견을 열어 “신찬수 부원장이 유가족이 의무기록을 어느 시기에 발급해갔는지를 알 수 있는, 유가족이 작성한 ‘의무기록 신청서’ 원본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원장 지시’ 없이는 어려운 일들

두 사람뿐 아니라 서울대병원 경영진이 백씨 사건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최은영 노조 대외협력국장은 “경영진이 백남기씨 사망 이후에도 이를 지속적으로 관리한 증거도 있다. 지난 9월29일에는 진료 부문이 아닌 기획조정실에서 백남기씨 응급실 도착 당시 상황이 기록된 자료를 확인했다. 이 모든 상황은 통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특별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는 원장 선에서 지시가 없는 이상 벌어지기 힘든 일이다.

<한겨레21>은 외압 논란과 관련한 입장과 설명을 듣고자 서창석 서울대병원장, 신찬수 부원장, 백선하 과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 및 문자를 보냈으나 10월7일 현재까지 아무런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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