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사망진단서

2016. 10. 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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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최초 진단서에 적시된 ‘외상성’이라는 말 쏙 빠지고 지난해 말부터 경찰 부검 계획 있었다는 정황 포착

9월26일 저녁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시민들이 고 백남기씨를 추모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숨진 농민 백남기의 사망진단서 작성을 둘러싼 의문이 커지고 있다.

백씨의 진료를 맡았던 서울대병원은 9월25일 사망진단서에 사망 종류를 ‘병사’라고 적었다. 질병으로 사망했을 때는 ‘병사’, 외부 충격 등의 요인으로 사망했을 때는 ‘외인사’라고 적는다. 백씨의 경우 외부 충격이 이뤄진 것이 분명한데도 서울대병원은 그의 죽음을 병사로 분류한 것이다.

유가족은 이같은 사망진단서 작성이 병원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백씨의 딸인 백도라지씨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몇 시 몇 분에 돌아가셨다고 사망 선언을 한 뒤 (레지던트 ㄱ씨가) ‘진단서를 발급할 건데 본인의 이름으로 나가기는 하지만 사망 원인, 병명 등에 대해서는 자신의 권한이 없다’고 했다. ‘신찬수(서울대병원) 부원장과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 두 분이 협의한 내용대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백도라지씨는 “(ㄱ씨가) ‘그분들한테 연락받고 (사망진단서에) 심폐정지, 급성신부전, 급성경막하 출혈 그리고 병사라고 쓴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담당 의사뿐 아니라 병원 차원에서 백씨의 사망진단서 작성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심폐정지’는 사망 원인 될 수 없어

사망진단서에 문제가 없다면 레지던트가 담당 교수와 상의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사망진단서는 여러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한겨레21>이 입수한 백씨의 사망진단서를 보면 사망의 직접 원인을 ‘심폐정지’라고 적고 있다. 심장과 폐가 활동을 멈춰 사망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망은 심장과 폐가 정지해서 발생한다. 이 때문에 대한의사협회는 ‘심폐정지’를 사망진단서의 사망 원인으로 쓰지 말라고 강조한다.

대한의협이 2015년 3월 발간한 ‘진단서 등 작성·교부 지침’에는 “사망의 원인에는 질병, 손상, 사망의 외인을 기록할 수는 있지만 심장마비, 심장정지, 호흡부전, 심부전과 같은 사망의 양식은 기록할 수 없다”며 “사망하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은 사망의 증세라고 할 수 있고 절대로 사망 원인이 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서울대병원이 대한의협의 사망진단서 지침을 무시한 셈이다.

의구심이 드는 사망진단서가 발급되고 이를 빌미로 경찰이 곧바로 부검영장을 신청하고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은 물 흐르듯이 진행됐다.

서울대병원이 사망 원인으로 지목한 심폐정지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 백씨의 사망진단서를 보면, 심폐정지의 원인이 ‘급성신부전’이며 급성신부전의 원인이 ‘급성경막하 출혈’이라고 적혀 있다.

급성신부전은 신장이 빠르게 기능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중증환자의 경우, 투여 약물의 독성이 신장을 손상시킬 때 흔히 발생한다. 결국 급성신부전은 앞선 원인인 급성경막하 출혈을 치료하다가 생긴 병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급성경막하 출혈은 대뇌를 감싼 ‘경막’이라는 조직이 충격받아 안쪽에서 출혈이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백씨가 물대포를 맞아 쓰러지는 과정에서 머리를 다쳐 경막 안쪽에 출혈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사실은 서울대병원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백씨가 병원에 실려온 2015년 11월14일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진단서를 보면 “외상으로 인한 급성 외상성 경막하 출혈로 두개골 절제술 및 혈종 제거술 시행”을 했다고 되어 있다. 특히 이 진단서에는 경막하 출혈이 ‘외상성’이라며 외부 충격으로 발생한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서울대병원은 최초 진단서에 적시된 ‘외상성’이라는 말을 뺀 뒤 사망진단서에서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적었다.

사망진단서를 병사로 적으면 작성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있다. ‘외인사 사항’이다. 사망진단서에 적게 되어 있는 외인사 사항에는 ‘사고 종류’ ‘의도성 여부’ 등을 적도록 되어 있다. 외인사로 적었다면, 백씨가 운수(교통)·중독·추락·익사 등 어떤 외부적 요인으로 사망했는지, 그 사망 과정이 비의도적 사고였는지, 타살이었는지 등을 명시해야 한다. 백씨에게 물대포를 발포한 경찰과 지시를 내린 지휘부 등을 상대로 검찰 조사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민감할 수 있는 항목들이다. 하지만 백씨를 병사로 처리한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이 부분을 빈자리로 남겨둘 수 있었다.

백씨 병원 실려온 시기부터 부검 계획했나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에 사망의 직접 원인이 ‘심폐정지, ’사망의 종류가 ‘병사’라고 적혀 있다. 외인사의 경우 작성하게 되어 있는 사고 종류, 의도성 여부 등은 공란으로 남아 있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제공

사인을 ‘심폐정지’로 적거나 외인사를 ‘병사’로 잘못 적는 경우가 아예 없는 일은 아니다. 의료계에서도 이런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하지만 백씨의 경우 단순 실수가 벌어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신경외과 전문의인 김경일 전 서울동부병원 원장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사망진단서에 병사라고 쓴 것은 잘못”이라며 “(서울대병원에서) 수준 낮은 실수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인물의 사망진단서를 쓸 때는 적어도 주임 과장, 때로는 병원장하고도 논의하기 때문이다. 관심의 초점이 몰려 있는 환자의 사망진단서를 그렇게 쓴 것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또 김 전 원장은 “사망진단서를 레지던트가 작성한 것도 이상하다. 서울대병원에 전문의가 얼마나 많은가. (백씨 정도로) 비중 있는 사람이라면 주임 과장이 진단서를 써도 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의 이력도 주목된다. 서 원장은 2014년 9월부터 2015년 2월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냈고, 그 뒤 병원장으로 취임했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겨레21>과 통화에서 “서울대병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였다는 점이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는 결국 경찰이 부검영장을 신청하는 빌미가 됐다. 경찰과 검찰은 백씨가 위독했던 9월25일 오전까지만 해도 ‘부검은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날 오후 경찰은 백씨의 부검영장을 신청했다.

다음날인 9월26일 이철성 경찰청장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두피 밑으로 출혈(급성경막하 출혈)이 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사망진단서에는) 신부전으로 인한 심장 정지로 병사했다고 밝혔다. 사인이 불명확해 부검을 통해서 사인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의 사망진단서를 근거로 삼아 부검영장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해명조차 온전히 믿기 어렵다. 경찰이 백씨가 병원에 실려온 시기부터 부검을 계획했던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백도라지씨는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백씨가 사고를 당한 직후 생명이 위태로웠던) 지난해 11~12월쯤 경찰이 백남기 대책위 중 한 분에게 ‘부검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고 들었다. 당시 처음으로 경찰에 부검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부터 부검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지난해부터 부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면 사망진단서에 원인이 병사로 적혀 있어서 부검을 한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병원-검경 소통 의심

의구심이 드는 사망진단서가 발급되고 이를 빌미로 경찰이 곧바로 부검영장을 신청하고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은 물 흐르듯 진행됐다. 이 때문에 병원과 경찰, 검찰이 긴밀하게 서로 소통해온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온다.

백도라지씨는 “예전부터 의사한테 아버지의 상태 변화가 있다고 들은 뒤 백남기 대책위 쪽에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대책위 쪽에서는 (그때마다) 이미 ‘경찰한테 (아버지 상태 변화에 대한) 전화가 와서 먼저 들었다’고 했다”며 “그래서 서울대병원이 가족보다 경찰에게 먼저 아버지 상태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백씨가 숨지기 전날인 9월24일 저녁부터 백씨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병원에 경찰을 배치했다.

이런 의혹들과 관련해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병원 차원에서 사망진단서와 관련한 논의를 한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서창석 병원장과 신찬수 부원장이 사망진단서 작성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300일 넘게 (백씨를) 치료해온 담당 의료진이 의학적으로 병사로 판단했고 병원은 그 부분을 존중한다”고 덧붙였다.

백씨의 부검영장은 법원에서 한 차례 기각됐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에 자료 보강을 지시한 뒤 영장을 다시 청구했고, 결국 성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월28일 몇 가지 조건을 단 부검영장을 발부했다. 유가족이 원한다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아닌 서울대병원에서 부검하고 유가족과 유가족이 지정한 전문가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유가족과 백남기 투쟁본부 쪽에서는 부검을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7명은 2015년 11월 백씨에 대한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부장 김후균)에서 수사 중이다.

이번에 백씨의 부검영장을 청구한 것 역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다. 경찰 책임자들의 살인미수 혐의에 대한 수사 차원에서 부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검영장이 집행되면 피해자인 백씨의 부검이 피의자인 경찰이 신청한 영장에 의해, 경찰의 주도로 이뤄지게 된다. 경찰이 사실관계를 왜곡할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이철성 경찰청장은 백남기씨가 물대포를 맞았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 사회안전비서관으로 일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위치였던 것이다.

고인 모욕에 사인 왜곡 우려까지

‘예의’는 흔히 쓰는 법률 용어가 아니다. ‘국가법령센터’에서 확인해보면 법조문 제목에 예의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사례는 단 하나뿐이다.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제17조다. 이 조문의 제목은 ‘시체에 대한 예의’다. 제17조 1항에는 “시체를 해부하거나 시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표본으로 보존하는 사람은 시체를 취급할 때 정중하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적혀 있다. 부검이라는 행위 자체가 주검을 모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부검은 그 모욕을 감수하고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을 때 이뤄진다. 1987년 박종철 열사의 물고문 증거를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 바로 부검의였다. 하지만 2016년 가을, 수상한 부검이 이뤄지려 하고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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