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성범죄 의사 진료 막는 3重 장애물 뚫렸다

이훈성 2016. 10. 8.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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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의료법-아청법 규제공백

형기 마치면 현장복귀 가능한데

면허정지는 올해 747명 중 5명뿐

10년 취업제한 규정은 위헌 판정

올해 3월 이후로 돌아올 길 열려

보건당국은 실태파악 못한 상황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진료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법망에 구멍이 뚫렸다. 성범죄 의사의 진료를 10년 간 막는 취업제한 규정이 위헌 결정을 받아 일시적으로 무력화된 데다, 규제 공백을 막을 유일한 장치인 의사면허 제한 조치도 유명무실한 탓이다. 이러한 규제 사각지대를 통해 성범죄 의사들이 속속 현업에 복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7일 의료계, 법조계 등에 따르면 진료실 안팎에서 성폭행, 성추행 등을 저지른 의사들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형법 ▦아동ㆍ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 ▦의료법 등 크게 세 가지다. 이 중 아청법은 2012년 8월 신설된 조항을 통해 아동ㆍ청소년 및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 벌금형 이상을 선고 받은 의사에 대해 10년 동안 의료기관 취업을 제한해 왔다. 성범죄 의사가 형법상 죗값을 치르고 나서도 장기간 현업에 복귀할 수 없도록 해온 것이다. 의료법은 본법 및 시행령ㆍ규칙에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한 의사를 1개월 동안 자격정지할 수 있는 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아청법 상 취업제한 조항이 올해 3, 4월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아 효력을 상실하면서 성범죄 의사 규제에 큰 공백이 생긴 상태다. 취업제한의 입법적 정당성은 인정되지만, 범죄 행위의 경중과 무관하게 10년 간 일괄적으로 취업을 막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게 헌재의 논리다. 법률 소관부서인 여성가족부는 이에 따라 형량에 따라 취업제한 기간을 차등화하는 아청법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법안은 일러야 이달 말에나 국회에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면허 제한 규정도 무력하긴 마찬가지다. 현행 의료법은 성범죄 중에서도 진료실에서 일어난 행위만 문제삼고 있다. 또 성범죄에 대한 처분을 따로 규정하지 않고 품위 손상 행위, 그 중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분류해 면허정치 처분을 하는데 그 기간이 1개월에 불과하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 솜방망이 처분마저도 거의 실행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07년부터 올해 8월까지 성범죄로 검거된 의사 747명 중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사람은 5명에 불과하다. 의사면허 발급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실태 파악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데다가, 검찰 등 수사기관마저 복지부에 의사 성범죄 사실을 통보해야 하는 규정을 거의 지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헌재 위헌결정이 내려진 올해 3월 이래 성범죄 의사의 현장 복귀를 막을 수 있는 차단 벽이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즉, 이 기간 동안 형법상 형량이 종료됐거나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의사라면 별다른 제약 없이 현업에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더라도 보건당국은 실태 파악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미약한 면허정지 처분을 대신해 10년 취업제한으로 성범죄 의사에 대한 강력한 제재 효과를 발휘했던 아청법이 효력을 잃으면서 이들이 복귀할 수 있는 조건이 조성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현업에 복귀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더구나 여가부는 취업제한 조항 완화를 추진하고 있어 아청법 개정이 완료되더라도 성범죄 의사 규제망은 한층 느슨해질 전망이다. 3년 초과 징역ㆍ금고 선고 때만 10년 간 취업을 제한하고, 3년 이하 징역ㆍ금고 땐 5년, 벌금형일 땐 2년으로 제한 기간을 줄이는 것으로, 이러한 방식의 취업제한 차등화가 헌재 결정 취지에 부합한다는 것이 여가부 설명이다. 인재근 의원은 “의사는 사람의 몸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성범죄에 더욱 엄격한 처분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의료법 개정을 통해 성범죄를 면허 취소 사유에 포함하는 등 규제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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