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첫 단추 잘못 끼운 대책으로 '쌀 과잉' 풀 수 있나

2016. 10. 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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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농민 집회가 어제도 이어졌다. 서울 한남대교 남단에선 농민 200여명이 21시간 동안 노숙 농성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벼 반납 투쟁 농민대회’를 열기 위해 광화문으로 향하다 경찰이 저지하자 트럭에 실린 벼를 도로에 뿌렸다. 경남 진주에선 지난 4일 “쌀값 보장 약속을 지켜라”며 트랙터를 몰고 거리행진을 했다. 전북 익산, 순창에선 쌀값 하락에 항의해 논을 갈아엎는 일이 벌어졌다. 쌀이 풍년일 때마다 반복되는 농·정 갈등의 모습이다.

농민들의 반발이 확산되자 정부는 어제 ‘수확기 쌀 수급안정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쌀 생산량 중 예상 수요를 초과하는 분량을 전량 수매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매 가격도 농민의 의견을 반영해 최대한 높게 책정한다고 한다. 벼 재배면적을 줄이기 위해 현재 농업진흥지역 81만㏊ 중에서 10만㏊를 올해 추가 해제한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쌀값 하락에는 우리 농업을 둘러싼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일차적으로 소비는 줄고 생산량은 갈수록 증가한 영향이 크다. 올해는 대풍으로 생산량이 예상 수요량보다 30만t 많은 420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면서 80kg당 산지 가격이 1991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매년 의무적으로 들여오는 수입 쌀 41만t이 하락을 부채질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쌀값 하락의 이면에는 농정 실패의 근본 요인이 있다. 쌀 생산 농가에는 통상 농작물에 지급되는 고정직불금 외에 변동직불금이 추가로 지원된다. 쌀값이 목표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그 차액의 85%를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지난해 쌀 농가에 지급한 변동직불금만 7200억원을 넘는다. 쌀값 하락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쌀 생산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쌀만 바라보는 식량안보 정책은 전면 수정돼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밀 1.2%, 옥수수 4.1%, 콩 32.1% 등으로 바닥 수준이다. 반면 쌀은 과잉 생산으로 재고량이 현재 175만t으로 적정 재고량의 두 배를 웃돈다. 보관비만 한 해 5000억원이 든다. 이런 처지에서 천문학적인 쌀 직불금을 매년 쏟아붓는 것은 주먹구구식 농정의 전형이다. 과잉 생산되는 쌀의 변동직불금을 줄이고 다른 농작물의 지원을 늘리는 것이 순리다. 잘못 끼운 직불금의 첫 단추를 바로잡지 않으면 농민도 죽고 식량안보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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