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모른다, 그 고통..임신부는 유세 떨 자격이 있다
[경향신문] ㆍ10월 10일 임산부의 날
ㆍ또 살쪘니? 아들이어야 할 텐데…난 그맘때 야근도 했는데
“얼마 전 지하철에서 자리를 놓고 언쟁하던 할아버지가 임신부의 옷을 들춰봤다는 뉴스를 보면서 경악했어요.” 다음달 출산을 앞둔 이은진씨(35)는 남의 일 같지 않다며 진저리를 쳤다. 서울도시철도공사와 서울메트로가 의자는 물론 바닥과 벽까지 분홍색으로 도배하며 임산부를 위한 자리를 비워두자는 캠페인을 벌인 지 3년이 되었지만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난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사회는 임신, 출산, 양육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임신이 유세냐’라는 말이 단적인 예다. 배려의 문화가 성숙되지 않는 한 저출산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는 10일은 임산부의날이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통해 저출산을 극복하고 임산부를 보호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제정된 날이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정보가 여전히 임산부들을 이중으로 괴롭히고 있다.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가 임산부들에겐 위로가 되기도 하고,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이제부터라도 임산부들이 유세를 떨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상처가 되는 말, 위로가 되는 말
무심코 한 언행이 임신부를 아프게 할 수 있다. 주부 장희윤씨(34)는 “임신 중 체중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데도 ‘또 살쪘느냐’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자기 관리도 못하는 여자로 평가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박은정씨(37)는 병원에서 태아가 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온 날 시어머니가 “그럼 둘째는 아들이어야 할 텐데”라고 한 말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서운함으로 남아 있다. 회사원 서지혜씨(25)는 평소 궂은일을 도맡아 했는데 임신을 하고부터 작은 일조차 버거웠다. 그런데 야근이나 출장 갈 일이 생기면 여자 선배가 “나는 애 낳으러 들어가기 직전까지 다 했어”라고 강조했다. 그 말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육아 커뮤니티 ‘맘스홀릭 베이비’가 임신부들을 상대로 ‘임신 기간 중에 받은 가장 따뜻한 배려는 어떤 것인가요?’라고 물어봤다. 대답은 의외로 소소한 내용이 많았다. 야근이 잦았던 ㄱ씨는 “임신기 단축근로 첫 케이스였다. 2시간 일찍 퇴근하는 게 눈치 보였는데, 동료들이 얼른 들어가라며 퇴근시간 알람을 자처했다. 임신 초기라 졸음도 쏟아지고 출퇴근도 힘들었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답했다. ㄴ씨는 “마트에서 계산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앞에 있던 중학생이 먼저 계산하라며 한사코 차례를 양보했다. 내 자식도 저렇게 교육을 시켜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살가운 정은 임신부에게 큰 힘이 된다. ㄷ씨는 “이번 추석 때 시어머니께서 음식 준비부터 설거지까지 다 하셨다. 출산을 앞둔 며느리가 돈 많이 썼을까봐 몰래 지갑에 10만원도 넣어주시고, 남편에게 늘 집안일을 많이 도우라고 하신다”며 행복해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나 위험한 순간에 받았던 도움에 많은 임신부들이 감동했다. ㄹ씨는 임신 7개월 때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노약자석을 가리키며 가서 앉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러고는 출입구 쪽으로 가시더라고요. 그래서 곧 내리시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그분은 제게 자리를 양보하고 내내 서서 가셨어요. ‘대한민국에서 꼭 필요한 사람으로 잘 키워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순간 눈물이 났어요.” ㅁ씨도 “걸음이 느려져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긴장한다. 차를 세우고 건널 때까지 기다려주는 운전자분들이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우리가 모르는 임신부의 고통
예외가 있지만 대개는 임신을 가장 빨리 느끼는 사람은 임신부 자신이다. 그만큼 몸의 변화가 확연하다.
임신의 대표적 증상인 입덧은 사람에 따라 그 시기와 증세가 다르다. 잠깐 하다 지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심한 경우 체중이 10㎏ 이상 급감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기도 한다. 호르몬이 왕성해지면서 이유 없이 눈물이 나거나 우울함이 깊어지는 감정 기복의 변화도 생긴다. 이 때문에 임신 기간에는 가족, 주변인의 배려가 무척 중요하다. 중기 이후부터는 태아와 자궁이 커지면서 갈비뼈의 통증이 심해진다. 위장이 눌리면서 소화불량을 겪기도 한다. 24주차 임신부 김인혜씨(24)는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결린 것은 익숙해져 괜찮지만 조금만 걷거나 서 있으면 말 그대로 밑이 빠질 것 같아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임신 36주차인 최혜정씨(31) 역시 “다리 경련과 부종으로 아침마다 고통스럽다”며 “태아가 갈비뼈를 찰 때 나도 모르게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전했다. 출산이 가까워질수록 임신부들의 불편함과 불안감은 극에 달한다. 임신 39주차 홍혜미씨(27)는 “천장을 보고 누우면 배가 단단해져 아프고 옆으로 누우면 숨이 가빠져 호흡이 힘들다. 앉아서 잠드는 날들이 많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예정일이 지나는 바람에 제왕절개 수술을 받는다는 허민희씨(36)는 “첫째 때의 난산 경험이 있어 더욱 불안하다. 최근에는 불면증으로 3시간 이상 잠을 잔 기억이 없다”고 불안감을 토로했다. 이처럼 임신부가 겪는 심신의 고통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호와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이런 임신 선물 고른 당신, 센스 있네요
△ 큰맘 먹고 해주는 선물이라면
“유모차나 카시트가 가장 든든한 선물이었다. 고가의 제품이다 보니 시부모님이나 친정 부모님이 선물해 주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원하는 브랜드를 물어보고 사주셔서 더 좋았다.” 김현주씨(32·주부)
△ 임신부를 생각한다면
“태어날 아이를 위한 선물도 좋았지만 임신부용 영양제랑 튼 살 크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이도 아이지만 임신한 주인공인 나를 더 챙겨주는 느낌을 받아 더 감동스러웠다.” 이주연씨(29·회사원)
△ 실용성 생각한다면
“아이를 키우면서 꼭 필요한 실용적 선물들이 가장 반가웠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편안하게 안을 수 있는 아기 띠나 힙 시트가 유용했다. 걷기 전까지 오랫동안 활용도가 높았다.” 박주영씨(31·회사원)
△ 다다익선 선물은
“거창한 선물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저귀나 물티슈는 두고두고 계속 쓸 수 있는 것들이라 좋다. 팁이라면 신생아용 기저귀보다는 2·3단계의 기저귀가 더 장기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 최나영씨(25·주부)
<김지윤 기자 ju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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