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강요된 '준조세']기업들 팔 비틀어 걷은 돈 '정권 치적용' 사업에 펑펑 썼다

박병률 기자 2016. 10. 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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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박근혜 정부, 얼마나 어떻게 모금했나
ㆍ청년희망펀드 등 7곳, 대기업·은행에서 2164억 ‘징수’
ㆍ재벌 ‘찍히면 손해’ 인식…총수 사면 혜택 등 고려 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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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재단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7개 재단과 연구원, 펀드 등이 대기업과 은행 등 민간으로부터 출연·기부·출자 받은 금액은 2164억원에 달한다. 전국 17개 지역에서 운영 중인 창조경제혁신센터까지 합치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

복지 확충 등을 위해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은 외면하면서도 정권 치적을 위해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준조세’를 징수하는 사례가 박근혜 정부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4일 더불어민주당이 집계한 ‘박근혜 정부 권력형 재단 설립 및 모금현황’을 보면 청와대와의 관련성 의혹이 제기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각각 486억원과 288억원을 삼성, 현대차 등 16개 대기업으로부터 모금했다. 중소상공인희망재단이 출연받은 100억원도 포털사이트인 네이버 돈이다. 네이버는 불공정행위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지 않는 대신 1000억원의 상생기금을 출연했다. 이 자금에서 3년간 500억원을 출연받기로 했지만 비리가 발각되면서 출연이 중단됐다. 한국인터넷광고재단이 출연받은 200억원도 네이버의 상생기금에서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설립에 힘을 실어준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은 삼성전자, LG전자, SKT, KT 등이 각 30억원씩 모두 210억원을 출자했다.

박 대통령이 1호 기부를 한 ‘청년희망펀드’도 880억원을 기업으로부터 기부받았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200억원, 임직원이 50억원 등 250억원을 냈으며 현대차는 정몽구 회장의 150억원을 포함해 200억원을 냈다. LG그룹도 구본무 회장 70억원을 포함해 100억원을 냈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50억원을 냈다.

‘창조경제’의 요람이라는 창조경제혁신센터도 사실상 기업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15개 기업이 적게는 3100만원부터 많게는 100억원이 넘는 돈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운영비는 별도다.

한 푼을 아까워하는 기업들이 이런 돈을 ‘선한 마음’이 동해 자발적으로 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민주화된 이후에는 정권이 기업들을 불러다가 정책 참여나 협조를 강요하는 이른바 ‘쪼인트(무릎) 까기’는 없었다”며 “현 정권에선 이런 일이 당연하다는 듯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공개적인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 것은 ‘정부에 찍히면 손해’라는 생각과 함께 이득도 적잖기 때문이다. 정부가 세법을 한 번만 건드려주면 기업이 준조세로 낸 부담은 상쇄될 수 있다. 기재부 자료를 보면 정부는 내년부터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해 신성장산업 연구·개발(R&D)세액공제율을 10%포인트 높이기로 했는데 이로 인한 법인세 감액이 2년간 374억원에 달한다. 또 면세점 사업권이나 주파수 할당 등도 준조세를 보상받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총수 사면 등 무형의 효과도 있다.

정부와 기업 간 거래는 이중의 국세 손실을 초래한다. 기업은 기부금을 낸 만큼 세액공제를 받기 때문이다. 지정기부금단체에 대한 기부금은 기업소득금액의 10% 한도 내에서 전액 필요경비로 산입된다. 국민의당 박주현 의원에 따르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업들이 774억원을 내면서 187억원의 법인세를 절세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정부와 기업 간의 거래 대가로 세금은 그만큼 적게 걷히고 그 부족액은 국민들이 소득세 등으로 메우거나 국가부채로 남게 된다.

염명배 충남대 교수는 “(정치적 목적의) 준조세는 사실상 지하경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양성화하는 게 맞다”며 “준조세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도 있고, 근로자 월급에서 나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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