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조종사들 中 품으로 엑소더스.. 작년 7배나 늘어 경보음 커져
베테랑 조종사의 국내 항공사 엑소더스(탈출)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 등 외국 항공사가 높은 연봉과 복지 혜택을 내세우며 ‘한국 조종사 쇼핑’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내 노사 갈등이 깊어지면서 이탈 조종사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4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2명의 대한항공 소속 조종사가 이직했다. 전년도에 비해 7배 가까이 늘어난 수준이다. 아시아나항공도 2013년 12명, 2014년 21명, 지난해 45명으로 꾸준한 증가 추세다. 대한항공에서 외국 항공사로 이직한 기장은 2013년 9명, 2014년 2명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46명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중국 항공사에 새 둥지를 틀었다. 올 상반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이직자는 각각 30명, 20명이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하반기 집중적으로 외국 항공사 모집 공고가 뜬다는 점에서 지난해와 비슷한 이직 러시가 우려된다.
가장 큰 이유는 ‘연봉’이다. 대한항공은 소형 여객기 기장 연봉이 세후 1억원을 조금 넘는다. 반면 중국 항공사로 옮기면 2억5000만∼3억원 가까이 받을 수 있다. 대형 기종 기장은 3억원 이상으로 늘어난다.
복지 혜택도 다르다. 국내 항공사 조종사의 비행시간이 1년 최대 1050시간(편승시간 포함)이지만 중국의 경우 700시간으로 낮추는 추세다. 중국 항공사로 옮긴 한 대한항공 출신 기장은 “중국은 조종사가 조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대우해주는 분위기”라며 “한국에 있는 후배와 동료에게도 적극적으로 이직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적극적인 구애는 항공산업의 급격한 성장에 기인한다. 중국의 항공기 보유 대수는 2008년 1430대에서 2013년 2310대로 급증했다. 글로벌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그룹은 중국의 항공 교통량이 앞으로 20년간 약 4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항공 수요가 넘치는 반면 조종사가 부족해진 중국 업체들이 숙련도가 높고, 같은 문화권인 한국인 조종사를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지만 국내 항공사는 제대로 된 대응은커녕 노사 갈등이 계속되면서 이직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이달 중 공개 집회를 예고했다. 지난 8월 국세청 앞 집회 이후 2개월 만의 공개 집회다. 조종사 노조는 37% 임금 인상을, 사측은 1.9% 인상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대한항공의 한 기장은 “땅콩회항 사태 이후 회사가 전혀 변한 게 없다”며 “중국 항공사는 3년 계약직이 대부분이지만 그걸 감수하고라도 회사를 떠나겠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인력 유출이 국가예산 낭비와 안전사고 위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조종사의 약 50%는 군 출신이다. 공군 조종사 한 명 양성에는 13∼15년이 걸리고 약 150억원의 국가예산이 투입된다. 조종사 수 부족은 기장들의 업무 강도를 높여 항공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윤식 경운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조종사의 연봉을 높이기 어렵다면 외국 항공사와 비슷한 복지나 혜택을 유지하는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경영진부터 인력을 소중히 대하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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