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디니 "디자인은 명상..자신만의 유토피아 추구하라"
서울대 특별강연서 예비 디자이너들에 '훈수'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디자인은 마치 흰 종이와 펜을 갖고 하는 명상 같습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겸 건축가인 알레산드로 멘디니(85)는 4일 오후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자신의 예술철학을 이같이 압축 표현했다.
멘디니는 생활용품 디자인부터 건축물 설계까지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자신만의 색채가 뚜렷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대학교 디자인대학 주최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멘디니는 '즐거운 유희와 의미있는 기능'이라는 주제로 자신이 디자이너의 길을 밟게 된 배경과 자신만의 디자인 원칙을 소개했다.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한국의 젊은이들과 직접 만나고 싶다는 멘디니의 의사에 따라 마련된 자리라고 행사 관계자는 귀띔했다.
빨간색 스웨터를 입고 강단에 선 멘디니는 "디자인이란 흰 종이에 펜을 갖고 하는 명상 같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아이디어의 시작점인 스케치를 보여주며 머릿속 구상이 어떻게 실제 상품으로 발전해나가는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강연을 이어나갔다.
"손으로 직접 그리는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말한 그는 "디자인은 정신 집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케치는 그의 대표작들이 어떻게 처음 시작됐는지를 보여줬다.
밝은 색깔에 경쾌한 느낌을 기초로 한 그의 작품만 보면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하며 별다른 어려움 없이 승승장구했을 것 같지만 그는 "어렸을 때 전쟁이 일어나 항상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아버지가 식량을 구하러 100㎞ 거리를 다녀오는 삶을 살면서 내향적인 성격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밀라노 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대학도 남들보다 늦게 졸업했다고 털어놨다. "그냥 학교에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라고 이유를 밝힌 멘디니는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졸업했는데 다행히 글 솜씨가 있어 바로 잡지사에 취직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15년을 디자이너가 아닌 잡지사 기자이자 비평가로 보냈다. 그는 그러나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디자이너 및 학자들과 접했으며 예술과 기술을 연구할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다.
이전에도 기존의 디자인 관습에 저항하는 '래디컬 디자인'(Radical Design) 운동 등에 참여했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디자인에 뛰어들었을 때 그의 나이는 50세였다.
한때 디자인의 상업성에 반발했지만 정작 그의 재능은 상업적인 디자인에서 빛을 발하며 대중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와인 오프너 '안나G'나 조명 '아물레또' 등은 멘디니를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은 봤음직하다.
그는 손자와 '아물레또'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원래 손자를 위해 만든 것"이라며 "땅과 달과 해를 상징화한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 제품은 인기를 끌며 이제는 책상용 외에 천장이나 벽에 다는 디자인까지 나왔다.
또 '안나G'를 언급하며 "이 제품도 우연히 나왔는데 색깔과 모양을 달리해서 계속 출시되고 있다"면서 "이 제품이 제 연금 역할을 톡톡히 한다"며 웃었다.
그는 각기 다른 제품이지만 "사용자와 제품 간의 접촉을 중시한다"는 디자인 원칙을 강조했다.
와인오프너를 의인화하고 태양, 달 같은 행성을 소재로 조명을 디자인하는 이유가 모두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멘디니는 이와 함께 네덜란드 그로닝거 미술관, 나폴리 지하철 역사 리모델링 사업 등 건축 분야에서의 작업도 소개했다.
그의 작품 특성 중 하나로는 색색의 컬러감이 손꼽힌다.
그는 "컬러를 본능적으로 사용한다"면서 "새로운 색보다는 이미 사용한 적이 있는 색을 선호하고 특히 수많은 색을 지니면서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꽃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학생들을 위해 '유토피아'를 지향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 각자 다른 유토피아를 품고 있을 것"이라며 "유토피아가 없다면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도달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당부했다.
또 한국 디자인에 대해 "전통에 바탕한 훌륭한 디자인이 많은 동시에 하이테크놀로지에서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한국 디자인의 미래도 이 두가지를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달려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디자이너를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계를 위해 이 세상에 형태를 부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뒤 "진정한 교수, 진실한 선생은 밖이 아닌 여러분 안에 있다. 학교 교육도 필요하지만 여행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어라"라고 당부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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