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 갈땐 전화해"..여성안심귀가 대원 체험기

이슈팀 박지윤 기자 2016. 10. 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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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하니!] 동네토박이가 지켜주는 훈훈한 밤길..대원 안전·건강은 걱정돼

[머니투데이 이슈팀 박지윤 기자] [[보니!하니!] 동네토박이가 지켜주는 훈훈한 밤길…대원 안전·건강은 걱정돼]

안심귀가 대원이 술 취한 여성을 외면하는 드라마 장면. 현실에선 있을 수 없다고 대원들은 말했다. /사진=tvN 드라마 '또 오해영' 캡처

"그럴 땐 술 취한 사람을 먼저 데려다 줘야죠."

머리는 산발을 하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여성을 안심귀가 대원들이 외면한다. 이 여성은 다음날에도 만취해 대원들에게 '제발 데려다 주세요'라는 눈빛을 보내지만 또 외면당한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의 이 장면은 현실에선 있을 수 없다.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대원들이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 줄 테니까.

◇30년 토박이가 지켜주는 귀갓길…친근하고 든든한 동네 아주머니 지난 22일 밤 9시50분,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대원 체험을 하기 위해 회기파출소로 갔다. 회기동의 안심귀가를 책임지는 대원 이인우씨(64)와 송명옥씨(58)가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선 10시에 '고정 지원' 학생이 2명 있다고 안내받았다. 고정 지원은 부모들이 신청해 정해진 요일마다 학생들의 안전한 귀가를 돕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동대문구청 상황실이나 120 콜센터에서 신청이 들어오면 지원한다고 했다. 대원 이씨는 "보통은 전화 신청이 많지 않아서 골목길에서 먼저 여성들에게 다가가 지원한다"고 귀띔했다.

활동복인 노란 조끼와 노란 모자를 착용한 대원들과 함께 파출소를 나섰다. 사진과 이름이 나온 명찰을 목에 걸고 빨간불이 나오는 봉도 들었다. 이목을 집중시키는 복장에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다.

(사진 왼쪽)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대원들이 연화사 앞에서 귀가지원 학생을 기다리고 있다. (오른쪽)대원들이 학생들의 안심 귀가를 지원하고 있는 모습. /사진=박지윤 기자

대원들은 '안심귀가대원'이라기보다 '친한 동네 아주머니' 같았다. 실제로 두 사람 모두 회기동에서 30년을 살아서 모르는 곳이 없다고 했다.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은 대원들에게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대원들은 "조심히 들어가"라고 화답했다.

10시7분 첫 이용자인 한모양 자매를 만났다. 송씨가 시간을 확인하고 수첩에 적었다. 손을 꼭 잡은 자매 양쪽으로 대원들이 자리 잡았다. 3월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난 대원들과 자매는 엄마와 딸처럼 대학 입시, 친구관계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걸었다.

16분 동안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과 어두운 아파트 단지를 지나 자매의 집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몇 번씩 고맙다고 인사했다. 송씨가 동생 한양(17)에게 "내년에 언니가 대학 가고 없어도 데려다 줄게!"라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 딸도 경희여고를 나와서 학생들이 남 같지 않다"며 "여름엔 아이스크림을 사 먹이며 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여성안심귀갓길 골목 곳곳에 붙어있는 112신고 위치번호. 경찰에 신고할 일이 생길 경우 ‘위치번호’를 알려주면 된다./사진=박지윤 기자

◇대원들의 안전, 건강은?…"운동 꾸준히 한 체력이라 가능해"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대원들은 평일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근무한다. '밤에 일하는 게 무섭지 않냐'고 물었더니 이씨는 "봉의 힘이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빨간 봉이 대원들도 지켜주는 것 같다는 것. 7달 가까이 일하면서 다행히 위험했던 적은 없다고 했다.

골목 안을 돌아보던 중 순찰차와 마주쳐 인사했다. 활동 중엔 하루에 여러 번 순찰차를 만난다고 했다. 두 사람은 "경찰이 (대원의) 안전에 대해 많이 신경 쓴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경찰이 전화번호를 알려줘 휴대폰에 저장해놓았다"며 "위급할 경우 골목에 있는 '위치번호'만 대면 곧장 올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18도의 서늘한 날씨였지만 금세 목 뒤에 땀이 맺혔다. 이씨는 "땀이 많이 나기 때문에 운동화 세 켤레를 돌려가며 신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나는 배드민턴을 쳤고 저이(송씨)는 수영으로 다져진 몸이라 나이가 많아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걱정스러운 마음은 지울 수 없었다. 주 5일 동안 밤에 10km 넘게 걷는 일은 20대인 기자가 해도 힘들 것 같았다. 이씨도 "생활리듬이 깨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시간당 6500원의 임금을 받지만 '봉사'의 마음 없이는 이 일을 못 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대원들도 "돈 보고는 못 한다. 동네에서 봉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동의했다.

1년 활동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대원이 10% 정도 되는 건 이 일이 만만치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서울시 전체에서 활동하는 안심귀가 대원의 90%가 여성이고 대부분은 50대다.

11시쯤 파출소로 돌아갔다. 대원들은 1시간마다 파출소로 돌아가 활동 일지를 쓰고 잠시 쉰다. 구청 상황실에서도 수시로 연락해 대원들의 위치와 지원 상황 등을 물어본다.

동대문구에서 나눠준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이용안내 카드./사진=박지윤 기자

◇"그런데 이게 뭐예요?"…아직도 모르는 사람 많아 5분 뒤 다시 출동. '여성안심귀갓길'이라고 쓰인 회기로 12길 입구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 '매의 눈'으로 훑어봤다. 송씨는 "술에 취했거나 노출이 심한 여성, 약해보이는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지원한다"고 말했다.

송씨는 "집주소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취한 학생을 달래서 파출소로 데려간 적이 있다"며 "많이 취한 여성들을 볼 때면 걱정스럽다"고 했다.

대원들이 “동행해 드릴까요?”라고 묻자 경계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밤길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중학생 조모양은 조금 놀라 "그런데 이게 뭐예요?"라고 물었다. 이씨가 "혼자 늦게 집에 갈 땐 30분 전에 연락하면 데려다 줄 거예요. 길에서 우리 보면 직접 말해도 되고요"라고 알려주며 이용안내 카드를 건넸다.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가 시행된지 3년이 됐지만 아직 홍보가 부족한 것 같았다. 이전에 한 번 이용해봤다는 이모씨(28)도 "대원이 먼저 말 걸기 전까진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원들이 여성안심귀갓길인 회기로12길 입구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고 있다./사진=박지윤 기자

◇밤길이 훈훈한 이유 "잘 들어갔나 모르겠네." 송씨가 배모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느 날 먼저 다가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한 이후로 안심귀가를 자주 이용하는 대학생이었다. 워낙 집이 후미진 곳에 있어서 대원들이 배양에게는 휴대전화번호를 알려줬다고 했다. 배양은 "오늘은 부모님 집에 왔다"며 "걱정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용자들에게 "늦게까지 고생 많으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났다. 어떤 이용자는 음료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 적도 있다고 했다. 송씨는 "가는 중에 갑자기 슈퍼에 들어가더라고요. 살 게 있나보다 했는데 우리 주려고 드링크 2병을 사온 거예요"라며 웃었다.

이날 중·고등학생, 20대 직장인, 중국인 유학생 등 모두 8명의 안전 귀가를 도왔다.

안심귀가를 도우러 나오면서 조금 두려웠다. 만약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무섭다는 생각은 서서히 사라졌다. 오히려 땀이 차오르는 외투 안처럼 마음이 점점 뜨끈해져갔다. 어느새 낮게 뜬 반달과 담장 너머 고개를 내민 꽃이 있는 고즈넉한 동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 동네를 위해 가족들의 반대에도 안심귀가를 돕겠다며 나선 대원들이 있었다. 그런 대원들에게 고마워하고 그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날 밤길이 훈훈하게 느껴졌던 건 시민들이 서로를 지키고 걱정하는 모습을 직접 봤기 때문일 것이다. 대원들과 헤어진 후 홀로 귀가하는 길은 어두웠다. 언제쯤 '보호자' 없이 자유롭게 골목을 거닐 수 있을까. 아쉬움 속에 대원들의 고마움이 생각나는 데는 몇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 신청전화번호./자료=서울특별시 여성보육청소년 홈페이지

이슈팀 박지윤 기자 satinbow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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