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홈페이지 문의 1000건, 답변은 1건뿐

2016. 10. 2.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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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처들도 혼란
정부세종청사 국민권익위원회 청탁금지제도과 사무실에서 직원들이 김영란법 위반에 해당되는지를 묻는 전화에 응답하고 있다. [뉴시스]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인데, 행사를 하다 보면 시간이 부족해 주최 측이 제공하는 식사를 할 때가 있습니다. 야식으로 준비한 과일이나 떡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김영란법에 저촉됩니까?”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 시행 나흘째인 1일 국민권익위 홈페이지에 이런 질문이 올라왔다. 행사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는지 이 공무원은 빠른 답변을 부탁한다는 요청을 남겼다. 해당 질문에 권익위는 아직 답변하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김영란법 시행 이후 권익위에는 이 같은 문의가 매일 300~400건씩 쏟아진다. 법 적용대상인 공무원이나 기관은 물론이고 이들과 관계를 맺는 국민이 혼란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권익위는 김영란법과 관련해 보수적인 유권해석을 내놓고 있다. ‘원칙적으로 안 된다’거나 ‘무조건 안 된다’는 해석이 많다. 그렇다 보니 실생활에서 어떻게 적용될지는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권익위는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3만원 초과 식사 접대를 받아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외교부 관계자는 “비공개 외교 일정으로 외국 공관 등 정부 관계자와 개별 접촉을 하는 특수한 상황에선 식사비가 3만원을 초과해도 인정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권익위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외교 업무의 특성을 인정해준 것이라지만 다른 직종에서도 예외를 인정할 수 있는지 의문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직무관련성의 해석에 대해 권익위가 사례를 들어 설명하지만 이 역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돼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 정부 부처 공무원은 “권익위가 무조건 안 된다고 해야 자신들에게 책임이 전가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냐. 그러다 보니 ‘무조건 더치페이를 하자’거나 ‘지금은 아예 사람을 안 만나는 게 상책’이라는 반응이 주변에 많다”고 전했다.

부정청탁 조항도 마찬가지다. 권익위는 인허가 처리나 인사 개입 등 법이 정한 14가지 업무와 관련해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에게 부정청탁을 해선 안 된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직접 청탁은 민원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예외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런 청탁을 받은 공무원은 처벌되고, 본인을 대신해 제3자가 청탁하면 그 역시 처벌받는다고 밝혔다. 이렇게 복잡한 해석이 이어지면서 권익위에는 “잘 봐달라고 말만 해도 부정청탁이냐” “업무의 진행 과정을 물어보는 것도 청탁이냐” 등의 세부 질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김영란법 관련 유권해석을 하고 있는 국민권익위원회 청탁금지제도과에는 전화 문의는 물론이고 홈페이지를 통한 질의와 기관·기업의 서면 질의가 쇄도하고 있다. [뉴시스]
이에 대해 권익위 관계자는 “청탁금지법은 부패 문화를 근절하기 위한 것인데 권익위가 너무 좁게 해석하면 법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알지만 해석을 하는 데 우리도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권익위의 해석에 대해 대법원이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권익위가 직무관련성을 너무 폭넓게 해석했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자체 매뉴얼에서 “잠재적인 직무관련성까지 폭넓게 인정하는 것은 직무관련성을 적시한 김영란법의 취지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있다”고 밝혔다. 안 그래도 논란거리인 직무관련성에 대해 대법원이 권익위보다 좁게 해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관가에선 권익위의 유권해석이 아니라 대법원의 매뉴얼을 따르겠다는 기류도 나타나고 있다. 김영란법 위반 여부에 대한 최종 판결을 대법원이 내리기 때문이다.

권익위 고위 관계자는 “대법원의 발표는 1설과 2설의 형태로 다른 입장을 내놓은 것”이라며 “해석의 차이라기보다 향후 개별 사례를 통해 기준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점에선 두 기관 모두 입장이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직무관련성 해석 범위에 대해 권익위와 대법원의 판단이 다른 점은 법 위반 여부를 고려해 행동해야 하는 이들에게 혼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법 시행 전후로 권익위의 유권해석이 바뀌기도 했다. 권익위는 당초 10만원을 초과해 경조사비를 받았을 경우 받은 금액 전체를 반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다 비현실적이란 지적이 쇄도하자 지난달 22일 초과분만 반환하면 된다고 해석을 뒤집었다. 기업체의 협찬 문제와 관련해서도 당초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있다”며 법 위반이란 입장을 냈다가 기업들이 난감해하자 ‘정당한 권원(權原)일 경우 가능하다’고 조건부 해석을 내놨다. 권익위 핵심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워낙 포괄적이지 않나. 처음에는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가 힘들어 안에서도 곤혹스러워하는 건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대상이 광범위한 사안을 담당하는 권익위가 제때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는 형편이다. 권익위 홈페이지 청탁금지법 문의란의 질문 중 1000개가량은 법 시행(9월 28일) 이후 올라왔다. 하지만 1일까지 답변을 단 것은 1건뿐이다.

개별 사안에 대한 권익위의 답변이 늦어지면서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 민간 국제교류 행사는 갑자기 취소되기도 했다. 국회사무처가 한 달 전 예약돼 있던 국회헌정기념관 사용을 행사 당일 불허해서다. 국회사무처는 이날 행사에 대한 권익위의 유권해석을 요청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하자 “혹시 김영란법 위반이 될 수 있다”며 취소했다고 한다.

행사 주최 측은 외국에서 초청한 인사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에버랜드가 군인들에게 제공하는 무료 혜택을 권익위의 유권해석이 나올 때까지 취소하겠다고 밝혔다가 시민들의 항의가 거세자 번복하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이 역시 법 적용 예외 사례에 대한 권익위의 해석이 제때 나와주지 않아서다.

권익위에서 김영란법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청렴금지제도과는 직원이 9명이다. 낮에는 전화 문의에 답하기도 벅차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체 등의 개별 서면 질의는 법무보좌관실과 자문단 20여 명의 의견을 받아 유권해석을 내다 보니 3~4일씩 걸리는 게 보통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교통사고특례법에 중앙선 침범 조항을 넣었을 때도 논란이 많았다.

바퀴가 중앙선을 얼마나 넘어야 침범이냐, 절반이냐 등으로 혼란스러웠지만 판례가 쌓이면서 기준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도 도입될 때는 혼선이 있었지만 정착되자 정치판이 깨끗해진 것처럼 김영란법도 준비하는 팀이나 국민이나 초기를 잘 버티며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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