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백남기 사망진단서' 매뉴얼 위반..고의일까, 실수일까?

유길용 2016. 10. 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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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사협회 사망진단서 작성지침 정면위배사인에 증상 기재·사망 종류 기록 신중 조언일반에도 공개돼 서울대병원 몰랐을 리 없어사인 규명 책임 피하려 '병사' 선택했을 수도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고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가 오류인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의사협회와 통계청이 각각 발간한 진단서 작성 매뉴얼을 통해서다.

사망 원인과 사망의 종류를 기록할 때 구체적이고 신중을 기하라는 게 매뉴얼에서 가장 강조한 점이다. 이 두 가지는 백씨의 사망진단서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추천기사 검사 결혼식에 화환 4개, 골프장 선물 상자엔 먼지만
통계청 매뉴얼, '증상만 기재하면 안 돼'
통계청이 발간한 사망진단서 작성 매뉴얼. 이 지침대로라면 서울대병원이 작성한 고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는 오류다.
통계청은 2014년에 사망진단서 작성방법 안내 소책자를 발행했다. 사망 관련 통계의 정확성을 위해서다. 이 책자는 통계청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누구나 내려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내용 감수는 대한의사협회가 맡았다.

이 책자에선 사망진단서 작성시 주의해야 할 점 7가지를 나열했다.

주요 내용은 ▶사망 원인은 의학적 인과관계 순으로 직접사인부터 기재할 것 ▶증상 및 징후만 기재 금지 ▶구체적인 용어 사용 ▶'사망의 종류'는 선행사인 기준으로 선택 등이다.

특히 불명확한 진단명이나 사망에 수반되는 증상이나 징후는 기재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호흡정치, 심폐정지, 호흡부전, 심장정지 등 사망에 수반된 현상만 기재하면 안되며, 구체적인 질병명을 사용하라'고 설명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간한 사망진단서 작성 매뉴얼.
'질병'과 '외인사'의 구분도 명확했다.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해 사망했으면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병사'는 질병 외에 다른 외부 요인이 없다고 의학적 판단이 되는 경우만 선택하라고 강조했다.

백씨의 경우와 비슷한 교통사고 후유증 사망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1년 2개월 전 버스에 치여 두개골 골절이 된 34세 여자가 식물인간 상태로 치료를 받다가 폐렴으로 사망했을 때를 가정한 사망진단서 작성 요령이다.

매뉴얼에선 이 경우 직접사인은 '폐렴', 중간선행사인은 '두개골 골절', 선행사인은 '교통사고'로 적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사망의 종류는 병사가 아닌 '외인사'다.

서울대병원이 백씨의 사망진단서에 기재한 내용은 이런 지침을 어긋난다. 백씨의 진단서에는 선행사인이 '급성경막하출혈', 중간선행사인은 '급성신부전증', 직접사인은 '심폐기능정지'라고 되어 있다. 사망 종류는 '병사'라고 했다. 기초적인 작성 원칙을 모두 어긴 것이다.

의협 매뉴얼도 '사고 합병증 사망 시 병사 선택 부적절'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해 3월 발간한 '진단서 등 작성ㆍ교부 지침'은 더 구체적이다. 이 지침은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가 감수했다.

이 지침에선 "범죄의 의심이 있다면 함부로 사망원인을 추정해서는 안 된다"며 사망진단서에서 잘못된 사례를 제시했다.

그 중 첫 번째가 '불확실한 병명'이다. "증상, 징후와 임상 및 검사의 이상 소견은 사망원인에 기재할 진단명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신부전증이 발생했을 경우 급성인지 만성인지를 구분하고 그 원인까지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가 있었다면 사고 상황도 구체적으로 밝히도록 했다.
의사협회가 발간한 진단서 등 작성·교부지침 중 사망진단서 작성 지침.
심장정지, 호흡정지, 심장마비 등 죽음의 현상을 직접사인으로 기재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심폐기능정지처럼) 사망하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은 사망의 증세이지 절대로 사망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게 지침의 설명이다. 지침서는 이런 실수가 "자칫 진실한 사망원인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지침에선 예를 들어 교통사고 손상의 합병증으로 사망했는데도 병사를 선택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도 했다.

서울대병원 실수 가능성 적어…"정치 입김 의심"

서울대병원이 지침을 몰라서 실수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의학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내용이고 국제적으로도 통용되는 매뉴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울대병원이 매뉴얼을 어겨가며 백씨의 사망진단서를 잘못 작성한 배경은 의협 지침서의 내용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병사라면 외인사 사항에 더 표시하거나 기재할 내용은 없다. 외인사라면 사고 종류를 확인해 선택하고 의도성 여부에 다른 사람의 행위일지라도 살인이나 상해의 의도가 없는 행위에 의한 것인 것, 아니면 자살이나 타살인지 여부를 선택한다."사망의 종류에 대한 지침의 설명 중 일부다.

병사를 선택하면 사망에 이르게 된 과정과 사고인지 고의인지, 타살인지 여부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할 필요가 없다. 서울대병원으로선 '병사'를 선택하는 게 사인 규명과 관련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이다.

의협의 지침에서도 "병사하였다면 법이 개입할 이유가 거의 없다. 외인사라면 다시 자살인지 타살인지 사고사인지를 살펴야 하는데, 타살이면 가해자 또는 살인자를 찾아 벌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협의 지침은 이론과 실무를 종합해 내린 의학계의 공식 견해다. 국내 모든 의사들이 지켜야 할 기준점이 의협의 지침이다. 여기에 들어있는 내용은 의대생들조차 "의사고시에 단골로 나오는 문제"라고 할 만큼 기초적인 것들이다. 서울대병원의 실수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지침에는 이런 설명도 곁들였다.
"사망원인이 질병임에도 사망의 종류가 외인사, 심지어 타살일 수 있다. 폭행을 당한 노인에게 사망원인은 뇌출혈이었지만 뇌출혈이 폭행 이전에는 없었다가 폭행 때문에 생겼다면, 폭행치사 또는 상해치사에 해당하는 타살일 수 있기 때문이다."지침을 감수한 이윤성 서울대 의대 교수는 "진단서는 환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도구지만 다른 한편은 그로 인하여 불이익을 보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을 수 있다"며 "당연히 진단서는 공정하고 근거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의학계에선 서울대병원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지난 5월 취임한 서창석 서울대병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냈다. 그는 병원장 공모를 앞둔 2월 당시 박 대통령의 외국 순방에 주치의가 동행해온 관례를 깨고 청와대를 나와 지원서를 냈다. 이사회는 투표를 통해 서 원장을 1순위로 추천했고, 박 대통령이 최종 결재했다. 한 국립대병원 관계자는 "서울대병원장 공모 당시 서 원장에게 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다는 말이 돌았다"고 전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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