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색] 과거 정치인 단식 어땠나.. 최장 기록은?

박세준 입력 2016. 10. 1. 17:06 수정 2016. 10. 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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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1일 엿새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건강 상태가 많이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영석 대표비서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의 혈압과 혈당이 많이 떨어졌고, 화장실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표실 측은 전날부터 의료진을 대기시켜 놓고 있지만, 이 대표가 링거 주사 등을 거부하면서 건강 상태만 확인하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은 이 대표의 쉰여덟번째 생일이기도 하다.

1983년 5월 단식투쟁할 당시 YS의 모습.
정치인의 단식은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을 때만 취할 수 있는 최후의 투쟁방안으로 여겨져 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이 대표적이다. 그는 1983년 신군부가 자신의 정치활동 자체를 금지하고 가택에 감금시킨 것에 저항해 단식에 돌입했다. 당시 그는 민주회복, 정치복원 등 민주화를 위한 전제조건 5개항을 내걸었다. 단식 8일째 병원으로 강제 이송됐고 전두환정권의 계속된 회유와 협박에도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결국 가택연금 해제를 얻어냈고, 23일간 지속된 그의 단식이 민주화 투쟁의 기폭제로 작용해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단식으로 입원한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단식 경험이 있다. 그는 1990년 평민당 총재 시절 노태우정권이 시도하려는 내각제 반대와 지방자치제 실시를 요구하며 단식을 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66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13일간 단식을 이어갔고, 이후 지방자치제를 도입하는 성과도 거뒀다.

2007년에는 당시 열린우리당 김근태·천정배 의원,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 등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대하는 단식 투쟁을 벌였다. 문 대표는 26일, 천 의원은 25일 동안 단식을 했다. 최장 단식기록은 그해 7월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해 27일간 단식농성을 벌인 당시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다.

2009년 단식 중인 민주당 정세균 대표(왼쪽).
현재 이 대표의 단식과 관련이 있는 정세균 국회의장도 두 차례나 단식을 한 경험이 있다. 단식 사유도 비슷하다. 2011년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 실패의 책임자로 지목된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민주당 의원이었던 정 의장이 이에 반발해 단식투쟁을 벌였다. 정 의장은 당대표였던 2009년에도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방침에 반발해 단식을 했지만, 사흘 뒤 한나라당이 끝내 미디어법을 단독 처리하고 말았다.

여권에서는 한나라당 소장파였던 정태근 전 의원이 2011년 자당의 한·미 FTA 비준동의안 단독 처리 방침에 반발해 10일간 단식을 한 사례가 있다. 정 전 의원은 단식농성 이후 당을 탈당했다. 비교적 최근에는 2014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의원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을 하던 세월호 희생자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곁에서 동조 단식을 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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