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 본 백남기씨의 마지막 317일

백철 기자 2016. 10. 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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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12월 1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백남기씨의 두 딸과 농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서성일 기자

경찰은 백남기씨 사망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며 끝내 백씨 시신에 대한 부검영장을 재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조건부로 수용했다. 백씨가 경찰 물대포에 쓰러진 당일부터 317일을 재구성해 봤다.

지난해 11월 13일, 전남 보성군에 사는 농민 백남기씨는 자신의 밀밭에 씨를 뿌리고 일찍 잠에 들었다. 다음날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튿날 일찌감치 집을 떠난 백씨는 오후 3시쯤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 앞에 도착했다. 이날 백씨를 비롯한 농민단체 회원 3만여명은 정부에 밥쌀 수입을 중단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2시간가량의 사전집회를 마치고 백씨는 1차 민중총궐기 본 집회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 광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미 서울 각지에서 사전집회를 마치고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광화문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종로1가를 통과해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던 백씨 등 농민단체 회원들은 종로구청 앞 사거리에서 경찰 차벽에 막혔다. 몇몇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버스에 밧줄을 걸고 줄다리기를 하듯 이를 잡아당겼고, 경찰은 이들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이때 밧줄을 잡아당기던 사람들 중 백씨도 있었다. 1차 민중총궐기 당시 영상이나 경찰의 살수차 사용 결과보고서 등을 토대로 백씨가 쓰러지던 순간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쓰러진 후에도 20초가량 살수 계속

백씨에게 물대포를 발사한 살수차는 충남 살수 9호차였다. 충남 9호차의 살수차 사용 결과보고서를 보면 이들은 안국로터리 근처 북인사마당에 배치됐다가 이동해 오후 6시50분쯤 종로구청 앞 사거리에 도착했다. 이미 살수 중이던 다른 물대포가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신윤균 4기동단장(현 서울 영등포경찰서장)이 무전으로 급박하게 살수를 명령하자 충남 살수 9호차는 5회에 걸쳐 최루액을 0.5% 농도로 섞은 물 약 4000ℓ를 발사했다.

광주 살수 11호차의 CCTV 영상에는 경찰버스에 엮인 밧줄을 잡고 있는 백씨가 보인다. 물대포가 살수를 시작하면 시위대는 흩어졌다가 물길이 줄어들면 다시 모여 밧줄을 당겼다. 시위대가 다시 모여들 때마다 물대포의 세기는 점점 거칠어졌다. 경찰은 보고서를 통해 직사로만 쏜 것이 아니라 곡사로도 물대포를 쐈다고 주장했으나, 경찰의 CCTV 화면에서는 물대포가 직사 살수만 하는 모습이 보인다. 충남 살수 9호차가 4차 살수를 하는 과정에서 물을 맞은 한 시민이 쓰러진다. 백남기 농민이다. 백씨가 물대포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2m가량 뒤로 튕겨 나가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몰려와 백씨를 감싼다. 하지만 물대포는 백씨를 향해 20초가량 살수를 계속한다. 살수가 끝난 뒤 영상을 보면 백씨의 얼굴은 대추처럼 붉은 빛을 띠었고, 코 오른쪽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사건 직후 백씨는 바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4시간에 걸친 수술을 받았지만 혼수상태에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백씨가 쓰러진 4일 뒤인 지난해 11월 18일, 백씨의 가족은 검찰에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 등 7명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이 피고발인에 대해 어떤 수사를 벌였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고발이 접수된 지 7개월이 지난 지난 6월에 살수요원 2명과 물대포를 담당하는 4기동단의 기동장비계장, 신윤균 당시 4기동단장 등을 조사했다는 게 알려진 바 전부다.

지난해 12월 19일, 3차 민중총궐기는 경찰과 시민 사이의 충돌 없이 평화롭게 진행됐다. 백남기 투쟁위원회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백씨의 가족은 3차 민중총궐기가 마무리될 즈음에 의료진으로부터 백씨의 회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12월 중순,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백씨의 가족을 불러 백씨의 상태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당시 의료진은 가족에게 백씨의 뇌가 이미 절반 이상 손상된 상황이며,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한 이미 의료진들은 백씨 가족에게 백씨의 목숨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가 남았다고 말했다. 백씨는 ‘외상성 경막하 출혈’ 진단을 받았다.

서울대병원 의학백과사전에 따르면 경막하 출혈은 뇌를 싸고 있는 바깥쪽 2개의 막 사이에 생기는 출혈이다.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뇌에 출혈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만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백씨에게 뇌사 진단은 하지 않았다. 뇌사의 판정 기준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정해져 있다. 백씨의 경우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진 것은 물론 자발적인 호흡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뇌사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평탄한 뇌파가 30분 이상 지속돼야 한다. 백씨의 경우 미미하지만 뇌파가 감지된 상태기 때문에, 외양상으로는 뇌사에 가깝지만 뇌사로 판정되지는 않았다.

칠순 생일 다음날 숨 거둬

한동안 백씨는 병세에 큰 차도를 보이지 않은 채 병원에 누워 있었다. 올해 4월 총선이 가까워오면서 백씨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멀어져갔다. 서울대병원 앞에 설치된 4곳의 천막 중, 4월 초까지 유지된 곳은 1곳뿐이었다. 그럼에도 백남기 대책위는 백씨의 상태를 알리고 경찰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거리 선전전을 이어갔다. 올해 2월에는 백씨의 집이 있는 전남 보성에서 서울까지 도보순례를 진행했다. 도보순례 이후인 3월 초, 백씨의 생명에 위기가 찾아왔다. 췌장 기능이 약화돼 인슐린을 투약받기 시작하는 등 신체기능이 급격히 떨어졌던 것이다.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중환자들 사이에서 흔히 발생한다는 폐렴 증상도 이때부터 심각해졌다.

7월 중순에 또 한 차례 고비가 찾아왔다. 백씨는 신장 기능 약화로 폐에 물이 차고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됐다. 혈압도 급격히 떨어져 한때 위독한 상황까지 내몰렸다. 백씨의 신체에 세균으로 인한 감염이 생겨났을 때마다 의료진은 항생제를 사용해 왔는데 이마저도 잘 듣지 않게 됐다. 이 일이 있은 이후 서울대병원은 백씨의 가족에게 연명치료 계획서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백씨의 가족도 8월 중순, 연명치료 계획서 작성에 동의했다. 연명치료 계획서는 주로 임종이 임박한 중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백씨처럼 환자의 의사를 알 수 없는 경우 가족의 뜻을 물어 연명치료를 계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 내용을 적는 서류다. 연명치료 중단이 결정되면 인공호흡 등은 중단되며, 병원은 영양·물·산소 등 기본적인 것들만 환자에게 공급하게 된다. 백씨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한 인터뷰에서 7월 당시의 위험한 상황을 회상하며 “언제든지 가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말 얼마 안 남았다고 느끼는 것은 많이 다르더라”고 말했다.

9월 12일에는 국회에서 백남기 청문회가 열렸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등이 출석했지만 이들은 “법적 책임이 인정되면 사과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경찰이 백씨 등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에게 직사 살수를 했다는 내용이 경찰 자료를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같은 시각, 백남기 농민은 다시 한 번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이미 9월 22일부터 백씨는 7월 때처럼 신장 기능이 악화돼 소변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됐다. 이틀 뒤인 9월 24일 낮, 백씨의 차녀 백민주화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은 아버지 칠순 생신입니다. 아빠, 아직 살아있어줘서 정말 고마워”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날 저녁 백남기대책위는 백씨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이 ‘주말을 넘기기 어려울 수 있다’고 백씨의 가족에게 연락했다는 것이다. 9월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새벽 시간 서울대병원은 백씨의 시신을 확보하기 위해 투입된 경찰과 백씨를 지키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 사이에 긴장감이 감돈 채 지나갔다.

7월과 달리 백씨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경찰의 물대포에 맞고 쓰러진 지 317일째인 9월 25일 오후 2시쯤, 백씨는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뒀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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