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김현수 홈런 때, 꽁꽁 숨은 쇼월터 찾기

조회수 2016. 9. 30. 09: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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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마지막 공격이 시작됐다. 첫 타자 JJ 하디가 힘 한번 못 쓰고 물러났다. 가장 먼쪽 존에 96마일짜리 대포알이 꽂혔다. 꼼짝 못하는 스트라이크였다. 첫번째 아웃 카운트에 불이 들어왔다.

다음은 조나단 스쿠프 차례였다. 3구째(볼카운트 1-1) 93마일짜리 커터를 가볍게 밀어냈다. 우전 안타. 희망이 생겼다. 원정 팀 덕아웃이 갑자기 분주해진다. 주자는 마이클 본으로 바뀐다.

타석은 놀란 라이몰드 차례였다. 하지만 이미 대기 타석부터 다른 타자가 준비하고 있었다. 이틀전 텔레토비의 뚜비로 변신했던 루키다.

9회 1사 후 김현수가 대타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mlb.tv 화면

안타를 맞았지만 마운드의 로베르토 오수나는 여전히 무시무시하다. 강력한 투심 패스트볼을 거푸 한 가운데로 집어넣는다. 일찌감치 스트라이크 2개(카운트 1-2)로 앞서 나갔다. 홈 관중들은 빨리 끝내달라고 함성을 높인다.

4구째. 공격팀이 또다시 위험을 감수한다. 대주자 본이 2루를 훔쳤다. 아슬아슬 세이프.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이때부터 21살짜리 마무리 투수와 뚜비의 대결은 점입가경이다. 97마일짜리 2개가 연달아 파울로 비껴갔다. 7구째 체인지업도 마찬가지다. 8구째는 슬라이더로 유혹해봤지만 꿈쩍도 않는다. 풀 카운트.

이제 더 피해 갈 곳은 없다. 1루를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 상위 타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음 공은 무조건 잡으러 올 것이다. 96마일(정확하게는 95.7마일)짜리가 몸쪽 낮은 코스에 박혔다.

너무나 간결했다. 휘두른다는 느낌도 없었다. 배트를 그대로 찍듯이 내려놓는 것 같았다. 그러나 가장 완벽한 위치에서, 최고의 타이밍에 걸렸다. 타구는 93마일의 속도로 368피트를 날았다.

우익수 호세 바티스타가 허겁지겁 공을 쫓았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못해서 절망했다.

[9회 승부 끝에 터진 김현수의 투런홈런]

공이 떨어진 펜스 뒤쪽은 원정 팀 불펜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몸을 풀던 시선들이 휘둥그레졌다. 아슬아슬하게 담장을 넘는 순간, 모두가 양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마찬가지로 원정 팀 덕아웃에서도 일제히 ‘만세’ 퍼포먼스가 시전됐다. 그 순간 4만 4,668명의 홈 관중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홈런이 터지는 순간 볼티모어의 불펜과 덕아웃은 일제히 만세 퍼포먼스가 시전됐다.    mlb.tv 화면

볼티모어 중계팀의 샤우팅 “The Biggest”

볼티모어 masn 방송의 중계팀이 엄청난 샤우팅을 발사했다.

“Oh my Goodness. 현쑤 킴이 계속 스토리를 쓰고 있네요. 스프링 캠프 막판에는 출전 명단에 넣어주지 않았고, 개막 때는 노포크(마이너리그)로 보내려 했던 선수였습니다. 그랬던 선수가 팀에게 가장 큰(the biggest) 홈런을 선사했군요.”

[김현수 홈런에 대한 현지 코멘터리]

리그에서 가장 홈런을 많이 치는 구단이다. 올해만 247개나 쐈다. 46개(트럼보ㆍAL 1위)나 친 타자도 있다. 그런데 고작 6개 밖에 안되는 타자의 홈런에 ‘the biggest’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그건 뚜비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KBO리그 9년간 통산 142개, 그리고 올해 6개를 보태 148개를 쳤다. 그러나 경기후 인터뷰에서는 “(여지껏 친 것 중에) 오늘이 단연 최고다. 가장 흥분되고 기분 좋은 홈런이다”라고 했다.

masn 방송은 어제(29일) 중계 끝날 때까지 그 장면을 몇 차례나 리플레이시켰다. 뿐아니라 틈만 나면 그의 얼굴을 원샷으로 잡았다. 얼마나 중요한 경기였고, 얼마나 결정적인 한 방이었나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불현듯 궁금해졌다.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까칠하기로 소문난 벅 쇼월터 감독의 얼굴 말이다.

어제 경기 MVP는 당연히 그의 몫. 그라운드에서 방송 인터뷰를 하고 있다.            mlb.tv 화면

쇼월터 감독의 달달한 말, 반대로 줄어드는 출장 기회

“김현수는 다음 시즌에도 우리와 함께 할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그가 좌투수를 상대로 훌륭한 타자가 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8월말, 볼티모어 선)

“(애덤) 존스가 주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 장타력을 갖춘 리드오프라는 특성을 고려했다. 그 앞에 출루할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존스의 능력이 극대화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출루율이 높은 김현수를 9번에 넣었다. 전략적 선택이었다.” (9월 6일, 볼티모어 선)

“어느 날 야간 경기에 김현수는 컷오프맨을 거치지 않고 송구했다. 그때 김현수가 얼마나 좋은 선수이며, 얼마나 많은 아웃을 잡아내는지 깨달았다.” (9월 8일, masn)

“김현수는 좋은 타자다. 특히 그의 출루율은 모든 구단이 필요로 하는 정도다.” “김현수는 좌익수로 뛰기에 충분하다. 송구도 괜찮고, 공을 다룰 줄 안다.” (9월 20일, 볼티모어 선)

“자신의 능력에 대단한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결국 잘 풀릴거란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부진한 출발을 만회할 기회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정말 자랑스럽고, 잘 돼서 무척 기쁘다.” (9월 21일, 볼티모어 선)

불과 한달 남짓한 기간이었다. 쇼월터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여전히 달콤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출장 기회가 부쩍 줄어들었다. 가장 좋은 타율과 출루율이 빠진다는 점에서 국내 팬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감독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빨리 팀을 떠나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어제도 그랬다. ‘처음부터 내보냈으면, 더 쉽게 이겼을텐데…’ ‘대타 잘 써서 이겼다는 소리가 듣고 싶었나.’ 힐난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늘 한정하는 평가를 돌파해나갔다

우리는 혼란스럽다. 쇼월터의 말들이 의아하기 짝이 없다. 그런 혼란은 억측을 낳는다. ‘편견’이나 ‘차별’, 또는 ‘트레이드’ 같은 단어들이 오르내리는 이유다.

‘The Biggest’가 터졌을 때 덕아웃은 온통 난리였다. 환호가 터지고, 하이파이브가 난무했다. 그 속 쇼월터의 모습은 없었다. 아니 찾기 어려웠다. masn 중계 화면을 두어번 돌려봐야 했다. 간신히 찾았다. 어둠 속에서 아주 잠깐 무표정한 얼굴이 스쳐간다. 잠시 손을 내밀어 축하 인사를 건넨 게 전부였다.

중계화면에도 아주 살짝 비치는 쇼월터의 얼굴. 어둠 속에서 손을 내밀어 축하 인사를 건넸다.       mlb.tv 화면

경기 후 미디어들과 인터뷰에서도 무척 차분한 어조였다. 물론 내용은 칭찬 일색이었다.

“(김현수는) 이전에도 오수나와 좋은 승부를 했다. 그래서 대타를 내보냈다. 그가 우리 팀에 있다는 게 행운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좋은 선수임에 틀림없다.”

굳이 편견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는 싫다. 의도적으로 과소평가한다는 시각도 내키지 않는다.

쇼월터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정한 감독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최고 타율 타자를 제외시켰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한 것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쇼월터에게 동의할 수 없다. 그건 김현수가 타석에서 실현해낸 것들 때문이다.

주변의 평가는 늘 그의 능력을 한정시켰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돌파하고 앞질렀다. 시즌 초반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랬다.

그래서 쇼월터의 표정이 궁금했다. ‘The Biggest’는 분명히 모든 사람의, 특히나 그 자신의, 예상과 판단을 완전히 초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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