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 유독 '임금 절벽' 유탄 맞았다

김정남 입력 2016. 9. 29. 17:15 수정 2016. 9. 3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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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OECD 국가 중 2분기 단위노동비용 최저구조조정 여파..올 들어 노동임금 하락 영향"수출 이어 내수 무너지면 경제 둔화 불가피"
국내 최대 할인축제 ‘코리아세일페스타’가 시작된 29일 오후 서울 중구 두타몰을 방문한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가 행사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지방의 한 굴지의 조선업체인 A사는 올해 생산직 직원들의 성과급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임금 체계는 크게 기본급 상여금 성과급으로 나뉜다. 그런데 기본급과 상여금은 거의 고정적인 반면 성과급은 회사 경영과 직결돼있고 변동 폭도 크다.

이 회사의 한 50대 직원은 “몇년 전부터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여름과 겨울 1년에 두 번 받던 성과급을 제대로 못받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업이 호황이던 7~8년 전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신입 직원들도 연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성과급을 받곤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구조조정 여파로 급격하게 줄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성과급을 대신했다고 한다.

30대 중반의 한 직원은 “최근 희망퇴직자들이 많았는데 심지어 30대 후반도 있었다”면서 “회사가 어렵고 임금이 줄어드는 걸 몸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 건설사에 사무직으로 일하던 박모(35)씨는 지난해 말 회사를 나왔다. 그는 지난해 공채 7년차였다. 공채 6년차 이상 희망퇴직 설명에 그도 예외일 수 없었고, “힘들다” “어렵다”는 말을 반복하는 회사를 보며 결국 ‘새 출발’을 결심했다.

박씨는 “각종 처우가 점점 불안해지는 현실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면서 “더 늦으면 아예 기회조차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韓, OECD 국가 중 2분기 단위노동비용 최저

우리 산업계에 ‘임금 절벽’이 불어닥치고 있다. 전세계 주요국들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임금 하락은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조선업 해운업의 구조조정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 나아가 우리 경제를 먹여살려온 제조업 전반에서 일자리가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29일 이데일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노동 지표를 분석해보니, 올해 2분기 우리나라의 단위노동비용(Unit Labour Cost)은 전기 대비 1.2% 감소했다.

단위노동비용은 상품 한 단위를 만드는데 드는 노동비용을 말한다. 통상 임금이 오르면 단위노동비용도 상승한다. 임금이 하락하면 그 반대다.

-1.2%의 단위노동비용 증가율은 2분기 OECD 주요국을 통틀어 최저치다. 미국은 0.9% 증가했고, 일본은 전기 대비 변동이 없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의 단위노동비용 증가율도 각각 0.1%, 1.2%, 0.2%였다.

단위노동비용의 하락이 경제에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임금 상승률이 생산성 증가율보다 더 낮아지면 제품 경쟁력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당장 수출에 호재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다만 문제는 그 하락 폭이 급격하다는 점이다. 올해 1분기 우리나라의 단위노동비용 증가율은 1.1%였다. 웬만한 주요국들보다 더 높았다. 그러다가 한 분기 만에 2.3%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OECD 국가들 중 이 정도 하락 폭은 그리스를 제외하면 찾기 어렵다.

이는 임금이 급락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체의 월평균 1인당 세전임금은 지난 1월과 2월 각각 572만6000원, 604만4000원이었다. 하지만 3월부터 갑자기 월 400만원대로 내려앉았다. 특히 6월 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0.7% 하락했는데, 이는 2009년 6월 이후 무려 7년 만이다.

300인 이하 사업체 상황은 더 열악하다. 2월 당시 320만1000원의 월평균 소득을 기록하다가, 3월부터 200만원대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한 관계자는 “임금 수준을 모니터링한 결과 올해 임금은 지난해보다 더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면서 “경기 회복이 지연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OECD 자료에서도 이는 확인된다. 올해 2분기 우리나라의 1인당 노동임금은 전기 대비 감소했다. 우리나라보다 감소 폭이 큰 곳은 OECD 국가들 중 그리스 포르투갈 슬로베니아 정도에 불과하다.

◇“수출 이어 내수 무너지면 경제 둔화 불가피”

임금 감소는 앞으로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수출이 부진의 늪에 빠진 가운데 내수마저 무너지면 해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중장기적으로 경제에 도움이 되겠지만, 단기적인 고용과 임금 쇼크 역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수출이 어렵고 저유가 효과까지 점차 줄고 있다. 기업이 고용 증가와 임금 상승에 적극적이지 않다”면서 “코리아세일페스타 등 정부의 내수정책이 계속 나오긴 하지만 큰 흐름상 더 둔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경제 원로인 박승 전 한은 총재는 “지금은 과거처럼 수출이 수십%씩 올라서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면서 “정부가 가계소득 증가를 유도해 기업 매출을 늘리는 식의 소득 주도 성장론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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