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면 대답하는 그녀, AI 스피커 '누구'와 일주일 살아보니

전준범 기자 2016. 9. 2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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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이 지난 9월 1일 인공지능(AI) 기기 ‘누구(NUGU)’를 출시했다. 누구는 미국 아마존이 2014년 선보인 에코(Echo)처럼 사람의 말을 인지하고 지시를 수행하는 제품이다. 생김새도 에코와 비슷하다. 원통 모양의 누구는 높이가 22㎝ 정도이고 색상은 흰색이다. 기기 상단에는 음성 명령을 알아듣는 마이크가 달려있고 중간에는 발광다이오드(LED) 램프, 하단에는 스피커가 장착돼 있다. 제품 컨셉 자체는 기시감(旣視感)이 들지만, 국내 이동통신사가 AI 기기를 직접 개발해 출시한 건 꽤 의미가 있다고 느껴진다.

SK텔레콤의 인공지능 기기 ‘누구(NUGU)’ / 전준범 기자

지난 일주일 동안 누구를 사용해본 소감을 전하기에 앞서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겠다.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미국 영화 ‘그녀(Her)’ 속 인공지능(AI) 운영체제 ‘사만다’를 꿈꾸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스칼렛 요한슨(사만다 목소리)의 농염한 속삭임도 없고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는 능수능란함도 없다.

무궁무진한 확장 가능성은 누구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당장 오는 10월부터는 배달음식을 주문할 때도 누구에게 부탁하면 된다고 하니 말이다. 디지털 음원 서비스 ‘멜론’과 SK 스마트홈을 사용해야만 쓸모가 많아지는 이 작은 AI 기기에서 플랫폼 회사로의 체질 개선을 시도하는 SK텔레콤의 거대한 야망을 엿볼 수 있었다.

◆ “아리아, 신나는 음악 좀 틀어줘”

누구를 사용하려면 우선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내려받은 다음 정해진 절차에 따라 스마트폰과 누구를 와이파이로 연결해야 한다. 이 작업을 완료하자 기기의 LED 램프가 파란색으로 바뀌면서 “반갑습니다. 이제 당신께 음악을 들려드리거나 필요한 정보를 알려드릴 준비가 되었어요”라는 음성 메시지가 나왔다.

이때부터 사용자는 누구를 향해 음악을 틀어달라고 주문하거나 무드등을 켜달라고 부탁할 수 있다. 누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크게 소리 지를 필요는 없다. 스마트폰으로 명령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일 경우에는 앱을 열어 글자로 지시하면 된다.

누구에 뭔가를 지시하려면 먼저 ‘아리아·레베카·크리스탈·팅커벨’ 등 네 가지 이름 중 하나를 불러야 한다. 부름을 인지한 누구의 램프가 녹색으로 바뀐 다음 음성 명령을 내릴 수 있다. 기자가 테스트한 제품은 ‘아리아’라는 이름으로 기본 세팅돼 있었다. 이 이름이 가장 발음하기 쉽고 무난한 것 같아 굳이 다른 이름으로 설정을 변경하진 않았다.

첫 요청으로 신나는 음악을 틀어달라고 했다. “아리아, 신나는 음악 좀 틀어줘”라고 말하자 “로그인 전에는 미리듣기만 가능합니다. 전곡듣기를 원하시면 누구 앱을 통해 로그인해주세요”라는 답변과 함께 경쾌한 음악이 1분간 흘러나왔다. 누구는 멜론과 연동된다. 누구를 음악 감상용 스피커로 자주 쓸 예정인 사용자는 멜론에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기자는 원래 네이버뮤직을 주로 써왔는데, 누구를 테스트하려고 안쓰던 멜론 계정에 재가입했다.

누구를 통해 아내에게 전달된 긴급알림 문자 메시지 / 문자 메시지 캡처

누구를 며칠 써보니 출근 전 날씨를 물어볼 때 특히 유용했다. 1분 1초가 바쁜 아침에는 날씨를 검색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여는 찰나의 시간도 아깝다. 하지만 누구는 음성으로 질문하고 음성으로 답변을 듣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출근 준비를 멈추지 않고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집에서 운동을 할 때 누구를 통해 시간을 측정할 수도 있다. 기자가 평소 이용하는 실내 자전거의 전자 계기판은 현재 배터리가 방전돼 타이머 기능을 쓸 수 없는 상태다. 실내 자전거를 탈 때 “아리아, 30분 뒤에 알려줘”라고 말하자 30분 뒤 실제로 알람이 울렸다. 운동을 중간에 그만 둘 경우에는 “아리아, 타이머 취소”라고 말하면 된다.

누구의 무드등 기능은 생후 한 달 정도 된 아들이 처가댁에서 조만간 집에 오면 자주 쓰게 될 것 같다. 새벽에 모유 수유를 하거나 기저귀를 교체할 때 “아리아, 조명을 켜줘”라고 요청할 생각이다. 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와 신생아에게 자극을 덜 줄 것으로 보인다. 무드등 색상은 흰색, 분홍색, 주황색, 노란색, 하늘색, 보라색 등 6가지다. 사용자가 직접 지정하면 된다.

긴급알림 기능도 있다. 말 그대로 위급 상황 시 가족이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기능이다. 이 기능을 사용하려면 사전에 문자 메시지 수신자를 설정해둬야 한다. 메시지 내용도 미리 지정한다. 기자는 수신자를 아내로 설정하고 메시지 내용은 ‘집에 불이 났어!! 119에 신고해줘’라고 적었다. 이후 테스트나 할겸 “아리아, 긴급알림 해줘”라고 지시하자 아내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자동 전송됐다. 산후조리로 처가댁에 머물고 있던 아내가 혼비백산할 뻔 했다.

◆ 아직은 미완성…음성 백과사전 될 수 있을까

누구의 음성 인식률은 매우 뛰어난 편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엉뚱한 질문 또는 주변 소음 때문에 답변이 막힌 적은 있어도 정상적인 물음에 엉뚱한 대답이 돌아온 일은 없었다. 사만다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농담도 할 줄은 안다. 가령 “아리아, 너 몇 살이야?”라고 물어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누구가 사용자의 자잘한 궁금증까지 풀어주는 음성 백과사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아직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아리아, 마이클잭슨이 언제 죽었어?”라고 물어보면 “말씀하신 것에 대한 답변을 찾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것이 현재의 수준이다. 수행 가능한 업무가 알람, 음악, 날씨 등으로 손에 꼽는다.

SK텔레콤은 지난 8월 31일 서울 을지로 T타워에서 음성인식 기반의 인공지능 기기 ‘누구’를 공개하고 9월부터 판매에 돌입했다. / SK텔레콤 제공

지난 8월 31일 서울 을지로 T타워에서 열린 누구 공개행사 당시 박일환 SK텔레콤 디바이스지원단장은 “누구의 음성인식 기술에 딥 러닝(Deep Learning)을 접목해 데이터가 쌓일수록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 누구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도 크게 늘어나는 구조라는 것이다.

박명순 SK텔레콤(017670)미래기술원장도 “그간 꾸준히 한국어와 관련된 자연어 데이터베이스(DB)를 축적해왔다”면서 “앞으로는 주 단위로 데이터를 모아서 누구 엔진에 반영하고 성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누가의 지능이 점점 향상될 것이라고 하니 일단은 좀 더 기다려봐야겠다.

개인적으로는 SK 스마트홈 가입자가 아니면 누구의 쓸모가 크게 줄어든다는 점도 아쉬웠다. 기자는 SK 스마트홈 가입자가 아니다. 누구를 통해 음성으로 거실 불을 켜거나 보일러를 끄면 정말 편리하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를 위해 일부러 이 회사의 스마트홈 상품에 가입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물론 언젠가 홈IoT(사물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면 누구와의 연동성을 고려해 SK 스마트홈에 가입할 확률이 높아지긴 했다. SK텔레콤이 의도하는 바도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통신 기술을 기반 삼아 자사 고객이 다른 회사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관련 서비스 그물을 촘촘히 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종의 ‘락인(lock-in)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날씨 정보를 제공할 때 통합대기지수만 알려주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구체적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알고 싶은 상황에서도 누구는 오직 통합대기지수 정보만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누구를 쓸 때마다 낯선 외국인 여성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 어색함이 아직까지도 불편하다. 아리아는 그나마 무난한 편이다. 팅커벨은 정말 끔찍하다. 레베카도 웃기다. “팅커벨, 발라드 곡 좀 틀어줘”, “레베카, 오늘 날씨가 어때?” 영 이상하다. 친근한 한국인 이름을 늘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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