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만들어야.." 20여년간 닻 만드는 장인

이재은 입력 2016. 9. 2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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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못하는사람들 ②] 화수부두 '닻' 장인 한현수씨

[오마이뉴스 글:이재은, 편집:김대홍]

"누군가는 만들어야 돼요. 제가 안 만들어도 누군가는 만들어야 배가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으니까. 우리가 배구 할 때 보면 네트가 양쪽에 팽팽하게 있잖아요. 깃대라고 하는 깃발을 달아서 닻을 바다에 던지는 거예요. 배가 움직이면 그게 고정되면서 그물이 배구 네트 식으로 쳐져요. 꽃게가 바다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그물에 걸리는 거예요. 광어, 주꾸미 잡는 데 쓰는 닻도 있죠."

인천에는 섬이 많다. 인천 포구에 납품하는 닻은 대부분 한현수씨가 만든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닻은 배를 한곳에 떠 있게 하거나 멈추게 하기 위하여 줄에 매 물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쇠로 만든 갈고리다. 손맛에 따라 음식 맛이 다르듯 닻도 만드는 사람마다 모양과 길이가 다르다. 

'닻이 잘 먹는다'는 말은 바다에서 물살에 끌리지 않고 잘 고정된다는 뜻이다. 거리가 멀어도 맛있는 음식점이 있다면 찾아가는 것처럼 써본 사람들은 조금 비싸도 그의 닻을 선호한다. 소래포구를 거쳐 동구 화수부두에서 20여 년 간 닻을 만들고 있는 한현수씨(73)를 만났다. 

 시계와 세월의 한가운데 '닻' 장인 한현수 씨가 서 있다
ⓒ 이재은
"자녀가 1남 3녀인데 아들은 큰 회사에 다녀요. 금속공학을 했으면 했는데 안 하더라고요. 업을 이어주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아쉽죠. 아들이 하나이기 때문에. 지금은 서운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부모가 한다고 해서 무조건 이어받아야 하는 건 아니고 지금은 개성시대니까 자기 길을 찾아가는 거죠.

제가 올해 일흔셋인데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 한다고 봐요. 십 년 더 하면 팔십이 넘잖아요. 그 안에 누군가 내가 한 번 해보겠다하고 애착을 갖고 오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돈으로는 못 도와줘도 가지고 있는 기술은 다 넘겨주고 싶어요. 누가 하겠다면은. 그런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어요.

올해 1월에 OBS에서 촬영을 왔는데 방송 이후에 한 사람이 찾아왔어요. 지방에서 일을 하다가 방송을 봤대요. 이 근처에 살더라고. 정년이 돼서 쉬고 있는 중인데 지금은 일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받아줄 수가 없지. 기회가 되면 인연이 되는 거고, 아니면 안 되는 거고. 당장은 물려줄 수도 없고 용접을 맡아하는 직원도 있으니 일하라 소리도 못하는 거죠."

작업장이 아니라 고물상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녹슨 갈고리를 모아두는 창고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기웃거리는 사람은 많아도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적다. 누구라도 들어와 말을 걸면 성의껏 받아준다. 커피도 타 준다. 선반과 바닥에는 망치와 철근 천지다. 10년 전 액자도 먼지에 쌓여 있다. 곳곳에 바다 내음이 배어있는 듯 돌아보는 곳마다 짜고, 깊다. 올 여름 무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무척 더웠죠. 그거야 뭐, 땀 속에서 일을 했는데. 선풍기 두 대 틀어놓고 하는데, 이 안에 재료가 몇 톤 챙겨있어요. 쫙 깔아놓고 일을 하니까. 공간이 없으니까. 웬만한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일 못해요. 어차피 배 하는 분들은 물건을 써야 하고, 또 좋은 물건을 써야 하잖아요. 그만두고 싶어도 그동안 정이 들었잖아요, 선주들하고. 정이 들었으니까 그 사람들 위해서 (내가) 헌신하지 않으면 누가 하랴, 그래서 제가 힘닿는 데까지는 하려고 해요. 

공간은 비좁아도 나는 100평에서 작업한다 생각하고 하는 거예요. 보는 사람마다 비좁아서 어떡하느냐고 얘기하는데 공장이 넓다고 해서 일이 잘 되고 좁다고 해서 일이 안 되는 건 아니에요. 자기 공간을 얼마만큼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여기가 6.9평인데 나는 100평에서 일한다고 생각해요."

작업복 바지 아래 낡은 안전화가 눈에 띈다. 가죽이고, 발등 앞부분과 바닥에 얇은 철이 들어가 있는데도 작업하다보면 어느새 닳아 짧으면 3개월, 길면 5개월 주기로 바꿔야 한다. 신발코가 하얗게 변한 갈색 작업화는 늘 여러 쌍이다. 새 달부터 신을 거라며 그가 선반에서 꺼내 보여준 신발도 지금 것과 똑같이 생겼다. 

 십 여 년 전 한 사진가가 3년간 그의 작업장을 찍었다. 그때 전시장에 걸렸던 한현수 씨의 모습
ⓒ 이재은
추석연휴가 길었고, 서로의 일정이 바빠 주중에 만나지 못하고 일요일(18일) 오전 화수부두를 찾았다. 그림 그리는 고제민 작가와 함께였다. 몇 년 전부터 화수부두를 스케치하고 화폭에 담고 있다는 작가는 한현수씨의 작업장을 궁금해했다. 나와 함께 그의 삶을 듣고 싶어했다.

닻 만드는 장인은 쉼 없이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하며 오래된 사진을 보여주고, 쇠를 달굴 때 쓰는 석탄을 가리키고, 낡은 신발을 벗어주고, 굳은살 박인 손을 내밀었다. 우리의 질문과 요청에 불편한 기색 없이 응답해주었다. 인터뷰 하겠다고 쉬어야 할 일요일에 손님이 찾아오면 귀찮지 않을까.

"그동안은 1년에 딱 세 번 쉬었어요. 추석, 신정, 구정, 이렇게 딱 세 번. 지금은 그렇게 안 해요. 동네지킴이 동구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바빠졌어요. 등산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그러죠. 

얼마 전에도 닻 만드는 일이 생소하다고 찾아와서 방송에서 찍어갔어요. 끝마무리로 노래 한 곡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가사를 욀 수가 있나. 가끔 부르던 '용두산 엘레지' 맛보기로 조금 부를게요, 하고 불렀죠. 며칠 있다가 전화들이 오는 거야. 아니, 사장님 언제 인터뷰하고 노래까지 부르고 그랬냐고. 일하다가 들었대요. 그러면 반갑고, 기분이 좋죠. 소신껏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대답하면 되니까 귀찮은 건 없어요."

내 기준에서만 생각했다. "귀찮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은 일요일 오전의 인터뷰를 피곤하게 여겼던 속 좁은 내 마음의 반영이었다. 아버지를 잃고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어린 시절, 사글세를 전전했던 결혼 생활, 빠져나갈 구멍 없이 막막했던 사업실패 등과 관련된 상투적인 회고(?)에 잠깐 방심한 사이, 그는 나쁜 친구도 좋은 친구라는 말로 내 머리를 두드린다. 빤한 일반론을 뒤집는다. 

"예전에 어른들이 행실 나쁜 친구들과 못 놀게 한단 말이에요. 세월이 흐르다보면 그 사람한테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깡패들이요? 못된 놈 보고 깡패라고 하잖아요. 깡패들은 의리가 있어요. 의리가 있어서 걔네들은 가끔 도와줘요. 근데 좋은 친구들이요? 없어요. 극소수예요. 그래서 좋은 친구도 많아야 되지만 나쁜 친구도 많아야 된다, 이걸 또 아셔야 해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한 번에 다 하면 안 돼. 또 와야지." 아쉬워하신다.

"지역에 왔으면 그 지역 특산물을 맛 봐야 돼요. 옆에 가서 꽃게탕 들고 가세요. 이렇게 사는 거예요. 대화도 나누고, 좋은 데 가서 차도 맛있게 먹고, 경우에 따라서 탁발도 한 잔 하고…. 천국이 따로 없어요. 내가 천국을 만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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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천in'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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