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잠실] 챌린지와 ACL, 시청과 '직관'

홍재민 2016. 9. 2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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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홍재민(잠실종합운동장)]

멀리 그라운드에서 서울이랜드FC와 부천FC1995가 뛰고 있다. 치열하다. 눈앞 노트북 화면 안에서 전북현대모터스와 FC서울이 맞붙는다. 거칠다. 경기 내내 그라운드와 노트북 사이를 오가느라 고개가 까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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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저녁 잠실종합운동장이다. 이곳에 실재하는 축구는 K리그 챌린지 경기다. 한국 프로축구의 두 번째 단계에 속한 팀과 선수들이다. 이들 위에는 클래식 12개 팀이 있다. 팀이 12개이니 선수 숫자는 그보다 훨씬 많다. 서울E와 부천은 그곳에 합류하길 원한다. 부천의 송선호 감독은 “그것(승격) 하나 하려고 지금까지 고생했다”라고 말한다. 고생의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머리를 숙여 작은 창 하나를 본다. 안에서는 AFC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이 열심히 달린다. K리그 맞대결이지만, 201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소속 47개 회원국에 속한 모든 클럽 중에서 가장 강한 넷 중 둘이다. 전북과 서울이 더 오를 곳이라고는 FIFA클럽월드컵뿐이다. 한반도 너머 아시아 최정상 수준에 도달한 팀끼리 맞부딪치는 경기다.

지도 위로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전주월드컵경기장까지 가봤다. 200.2km 거리를 자동차로 2시간 21분 달려야 한다. 멀다. 심리적 거리는 더 멀다. 둘의 간격이 없어지려면 도대체 얼마나 걸릴까? K리그 클래식 승격, 상위권 진입, AFC챔피언스리그 출전과 호성적이란 단계가 빽빽하다. 중국 슈퍼리그의 ‘미친 돈’이 아닌 이상, 아무리 빨라도 5년은 족히 걸린다. 광년(光年) 단위를 동원해야 할지 모르는 거리. 고개만 까딱이면 되는 두 개의 축구가 떨어진 거리다.

수준, 실력, 재미, 흥미 모두 작은 화면 속 축구가 월등하다. 주세종의 만회골을 보며 “서울이 넣었어”라고 말하자 주위에 있던 서울E 직원이 웃으며 쳐다본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진 덕분에 온라인 상태만 확보하면 전 세계 어느 경기든지 다 볼 수 있다. 화면을 멈추거나 소리를 완벽하게 제어할 수도 있다. 클릭 몇 번으로 영원불명 데이터로 남길 수도 있다. 전북과 서울의 맞대결은, 그렇게 편하게, 노트북 화면 위에 뿌려졌다.

하지만 녹색 그라운드 쪽이 자꾸 고개를 끌어당겼다. 계속 소리가 났다. 공을 차는 소리, 주심의 휘슬 소리, 장내 아나운서의 외침, 함성과 박수와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걸걸한 욕설까지 또렷했다. 실재하는 축구를 소음(消音)할 방법은 없다. 거대한 잠실종합운동장의 희미한 밤안개를 걷어낼 재주도 없다. 있는 그대로, 벌어지는 그대로 내가 받아들여야 한다.

얼마 전 소셜네트워킹(SNS)에서 이런 해시태그를 봤다. ‘축구는 직관이지.’ 읽는 순간 공감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서울E와 부천의 챌린지 경기에는 소리조절 버튼이 없다. 주요 장면 다시보기 클릭도 불가능하다. 잠시 한눈팔다가 주민규의 헤딩 동점골을 도운 선수를 놓쳐 주위에 물어봐야 할 위험도 존재한다. 푸드트럭이 풍기는 향기도 피할 길이 없다. 추우면 오롯이 춥고, 더우면 고스란히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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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직관(경기장에서 직접 관전)’은 값어치를 한다. 화면 밖에 머무는 구경꾼이 아니라 실재하는 축구를 함께 만드는 참여자가 된다. 화면 속 축구도 얼마든지 흥미진진할 수 있겠지만, 내가 안에 들어가 있는 축구 쪽이 더 즐겁다. 수비수들의 콜플레이는 박진감을 보태고, 테크니컬에어리어에서 휘젓는 감독의 두 팔도 구경거리다. 서울E와 부천의 맞대결을 만드는 구성요소로서 내가 실재한다.

2016시즌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는 이제 대여섯 경기씩 남았다. 일상의 속도에 치이는 바람에 아직 경기장을 찾지 못하신 분들 많을 것 같다. 한 번쯤 K리그의 일부가 되시길 소망한다. 서울E와 부천은 1-1로 비겼고, 1,001명이 ‘직관’했다.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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